애증의 공간 일터를 향한 마음
단단 두부. 친구가 나를 부르는 말이다. 사소한 일에 금방 눈물을 훔치고 쉽게 피로해 골골대는 꼴을 보고 있으면 물러 터진 게 금방 으스러질 것 같은데 또 잘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의미라나. 그러거나 말거나 두부는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특히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뜨끈하고 두툼한 손두부는 아무런 양념 없이 그저 한 입 턱 베어 먹어도 훌륭하다. 씹기도 전에 부드럽게 입 안에 퍼지는 고소함이란.
더 좋아하는 방법은 들기름을 두른 팬에 지져 먹는 것이다. 고소함이 배로 끌어 오른 겉바속촉 도톰한 두부 지짐. 원재료가 훌륭하다면 별 다른 노력 없이 기본에 충실한 이런 요리가 제일이다. 재료가 최상이 아니라면 약간의 기교가 필요하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두부 동그랑땡이다.
으깬 두부에 표고와 새송이 버섯을 넣고, 양파, 당근, 부추 같은 채소들도 넣어 버무린 뒤 달걀물을 씌워 부쳐낸다. 쉽게 으스러져버려 모양 만들기가 꽤 어렵지만 맛은 일품이다. 일단 입에 넣기도 전에 퍼지는 노릇한 향에 이미 합격. 가만히 있어도 풍요로워지는 명절의 향은 늘 좋다. 씹기도 전에 입에서 부드럽게 으스러지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일에 찌든 상태에서 도시락을 열면 때때로 젓가락질할 힘도, 입에 넣은 음식을 씹을 힘도 쥐어짜 내야 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입에 넣으면 알아서 엉겨주는 게 꽤 좋았다. 질척대지도, 와르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스르르, 그러니까 때를 알고 적당히 뭉개지는 게 좋았다. 당근, 양파, 버섯 덕에 씹는 즐거움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푸릇한 부추 덕에 색감과 함께 은근한 향도 갖추고 있다.
두부 동그랑땡이 자주 도시락 반찬으로 등장할 무렵 나는 7시가 되기 전에 출근을 했다. 아이들이 오프라인 등교를 시작하면서 할 일이 많아졌다. 온라인 개학만 진행했을 때의 폭발했던 콜센터 업무와는 질적으로 다른 정신없음이었다. 본격적인 생기부 서류 작업, 상담, 디테일한 수업 준비, 자잘한 학급 운영 업무 등등 할 일이 너무 많아졌다. 칼퇴를 하겠다는 욕심으로 출근 시간을 앞당겨 보았지만 야심한 목표는 결국 실패로 끝나는 날이 허다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열었던 문을 잠그고 나오는 날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단단 두부.
내 일이 참 좋았다. 아이들에게 사소하게나마 어떤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것도 큰 의미로 다가왔다. 수업을 준비하는 것도, 그 과정에서 공부를 해나가고 새롭게 배워가는 것도 좋았다. 공교육이 무너졌다고들 했지만 아주 미미하게나마 교육의 순기능을 믿기에 일하면서 느끼는 약간의 보람도 있었다.
그럼에도 너무 벗어나고 싶었다. 교직이 주는 답답함, 강자에게 한없이 굴욕적이고 약자에게 무한하게 함부로 대하는 그곳의 질서가 끔찍하다. 그런데 어스름한 새벽에 나가 처음으로 교무실 문을 열고 어둑해질 무렵 퇴근하는 나를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난 그 지긋지긋하고 혐오스러운 공간을 애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곳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 그들과 만들어간 시간이, 나도 모르는 사이 그 공간을 사랑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최상이 아닌 그곳에, 여러 가지 것들을 넣고 버무려서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일지도. 두부 동그랑땡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