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도시, 락 12화

부드럽게 강한, 시금치 코코넛 커리

씁쓸한 조직을 부드럽게 하는 '사람'의 힘

by 정담아

카레도, 커리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한 솥 가득 끓여주었던 카레의 향은 늘 매력적이었다. 큼직하게 들어간 돼지고기, 감자, 양파와 함께 노란 국물을 밥 위 얹어 쓱쓱 비벼 먹곤 했다. 칼칼한 김치 하나만 있으면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노오란 자국이 남은 빈 그릇만 아쉽게 바라보다 결국 밥통과 냄비 뚜껑을 한 번씩 더 열곤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 맛 본 인도식 커리도 좋아한다. 온갖 향신료의 조합이 만들어낸 맛. 알싸하고, 쌉쌀하며, 고소하고 달큰한, 한 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오묘한 맛에 바로 빠져들었다. 특히 폭신하고 뜨끈한 난과 함께 먹으면, 커리가 남긴 그릇이 너무 작아 보일 지경이었다.


그 인도 커리에 한 때 푹 빠진 적이 있었다. 식당에서 먹는 것으로 성이 안 찼다. 이색적인 맛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었다. 온갖 유튜브와 블로그를 검색하면서 커리 만드는 법을 보았다. 같은 요리여도 각기 제시하는 레시피가 달랐다. 원래 정확한 계량과는 거리가 먼 편이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공통적인 향신료들을 하나씩 사모으기 시작했고, 원데이 요리 클래스도 들어보았다. 그들이 제시한 레시피를 완벽히 따라하진 못했지만 대략 비슷하게 만들어보았다. 대실패. 이국적인 향신료의 향과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한 탓이었다. 간을 보면서도 당최 뭐가 부족하고, 뭐가 과한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맛이라도 넘치면 결국 씁쓸함만 남기고 만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 후로도 여전히 정량을 투입하는 정확한 요리법을 익히진 못했지만 욕심 내지 않는 법을 배웠다.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과한 걸 싫어했다. 겉바속촉, 츤데레라는 별명도 그런 성미와 결을 같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겉으로 충분히 표현하는 걸 지양하다 보니 겉으로 보이는 것에 비해 속은 덜 까칠하달까. 근데 어쩌면 그건 너무 넘쳐나는 의욕과 욕망, 감정을 눌러내다 보니 자연스레 터득한 삶의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흠뻑 빠져들어버리는, 자제심을 잃을 정도로 애정을 쏟아부어 버리는 몹쓸 과잉병에 대한 방어기제로 발달시킨 자체 오바자제령이랄까. 감정과잉을 싫어하면서도 종종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이상고온 감정을 발견할 때마다 화들짝 놀라곤 한다.


인도 향신료를 만났을 때의 내 반응도 그와 유사했다. 마음에 꼭 드는 인연을 만난 듯이 신이 나서 마구 뿌려댔고, 과한 나의 애정에 쓴 맛으로 남겨진 결과물을 보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조금씩, 적당히 즐기는 법을, 다른 것과도 어울리는 법을 터득해갔다. 그리고 이때 가장 큰 도움을 준 건 코코넛 밀크였다. 도저히 해결책을 찾기 어려울 때 코코넛 밀크를 넣으면 생명력을 불어넣는 느낌이었다. 밋밋한 흑백 컬러에 강렬한 포인트 하나를 넣어 엣지를 살리는 맛이랄까. 그날의 킬링 포인트 역시 코코넛 밀크였다. 몇 가지 향신료와 양파, 마늘, 생강을 볶다가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시금치 페스토와 코코넛 밀크를 부었다. 그리고 그날, 직장에서 코코넛 밀크 같은 이들이 나타났다.


“아우, 진짜 고생이 많다.”

이 상투적인 말에 울컥했던 건 여러 요소가 만들어낸 하나의 마음 때문이다. 진정성. 내게 비슷한 문장을 건넸던 모든 이들에겐 공통점이 하나도 없었다. 나이, 경력, 성별, 직급, 나와의 친분이나 업무적 유사성까지도. 그럼에도 그들이 내게 보여줬던 표정과 목소리, 혹은 글자 속에 담긴 마음이 너무도 따뜻해서 차분했던 마음이 일렁거렸다.


어쩌면 한동안 조직 안에 있는 다양한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내게 그 맛을 강하게 드러내는 몇몇 때문에 균형감을 잃고 전체를 쓰디쓴 실패작으로 바라봤던 건 아닌지. 뭐 어차피 조직이라는 게 한두 가지의 문제로 전체가 흔들리기 마련이지만. 여전히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가진 수많은 향을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최상의 맛을 낼 수 있길, 내가 맛 본 코코넛 밀크 같은 존재들이 그 힘을 발휘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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