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도시, 락 11화

건강한 나를 위한 한 끼, 가지 애호박 엔초비 파스타

무례함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노력

by 정담아

“결혼을... 했었나?”

친밀감의 토대 없이 사적 영역으로 훅 들어오는 그들의 비매너에 둔감해진 나는 적당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럼 그들은 거침없는 태도로 두 번째 질문에 돌입한다. 본격적으로 나의 사생활에 참견질을 하겠다는 선언이랄까.


남자 친구가 있냐는 물음에 ‘내가 남자 친구가 있을지, 여자 친구가 있을지 네가 어떻게 아나요?’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하고픈 말을 눌러냈다. '왜 없냐?'는 물음엔 번역기를 돌렸다. ‘당신들이 일을 하도 많이 던져줘서 여기 처박혀 있는데 무슨 연애겠어요? 연애할 시간 있으면 잠이나 더 자겠네요. 피곤해 죽겠다고!’를 ‘시간이 없어요.’라는 짧은 문장으로 뱉어냈다. 상대는 주책없이 한 발짝 더 다가왔다. 같은 공간에 있는 미혼 남녀를 뽑아서 짝짓기를 시작한 것이었다. 더 이상은 표정관리가 어려웠다. 그때, 다른 이가 팔을 잡아당기며 말렸다. 한 명이라도 눈치가 있어 다행이었다.


이후로도 내 사적 영역은 불쑥불쑥 침범당했다. 주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왜 연애를 하지 않느냐, 왜 밥은 식당에서 먹지 않느냐, 도시락은 누가 싸 주냐, 반찬은 뭐냐 등등... 가끔은 내가 직장에 온 건지, 친목 동호회에 나온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왜 남의 사생활이 그렇게 궁금한 건지, 일이 없어서 그런 것들을 궁금해할 시간과 에너지가 남아도는 건지 문득문득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의미 없는 대화의 시간을 줄이고 싶은 마음이 더 컸으니까.


당시 결혼과 연애에 큰 관심이 없었다. 새 직장을 구한 뒤 나의 관심은 오직 그곳에 잘 적응하고, 내게 주어진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에 있었으니까.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는 죽지 않고 잘 살아남는 게 최대 목표가 되긴 했지만 내 사생활에 대해서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불만은 직장 생활에 있었다. 불합리한 업무 분배와 같은. 하지만 내게 불만 거리를 던져준 이들이, 종종 나의 만족스러운 영역에 대해 딴지를 걸어올 때가 있었다.


내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나를 부족한 사람으로 낙인찍는 게 싫었다. 기혼자는 그냥 기혼자인데 싱글은 골드미스와 노처녀로 나뉘는 것도 싫었다. 그러면서도 특급 함량 미달 도장이 찍히는 게 싫어서 철저한 자기 관리 필요성에 현혹되는 내가 싫었다. 가뜩이나 싫은 것 투성인 직장에 싫은 것들이 더 늘어나서 싫었다.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그들의 시선을 따르는 게 싫었지만 결혼 ‘못’하고, 연애도 ‘못’하는 사람 취급을 받기 싫어 덜 먹고 운동도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생각대로 되는 생각은 단 하나, ‘아, 이러다 살찔 텐데.’ 뿐이었다.


관리는 개뿔. 밀려오는 스트레스 속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먹고 먹고 또 먹었다. 낙인이고 매력이고 다 필요 없고 생존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양심으로 ‘건강하게’ 먹기로 했다. 그래서 준비했다. 가지 애호박 엔초비 파스타.


여리한 연둣빛 애호박을 반달 모양으로, 가지도 길쭉하게 듬성듬성, 양파와 고추도 썰었다. 올리브 오일을 두른 팬에 마늘을 달달 볶고,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향이 올라올 때쯤 잘라둔 채소들을 모두 넣고 볶았다.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 엔초비 소스! R이 존맛탱을 외치며 선물한 소스를 써보기로 했다. 팬에서 뒹굴고 있는 재료들에 소스를 넉넉히 부은 뒤 뒤적였다. 불과 시간의 힘을 빌어 맛있어 지길 바라며. 적당히 익은 양념 속에 삶은 면을 넣고 볶아낸 뒤 도시락 통에 남았다.


살짝 식었지만 여전히 풍성했다. 연하고 진한 색감도, 엉성하게 엉켜 있는 면도. 한 입 먹었다. 입 안에서 바다와 들판이 만났다. 채소의 달큰함과 엔초비의 짭조름함이 올리브 오일 안에서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적당히 익어 단단한 식감이 살아 있는 면은 양념이 벤 부드러운 건더기와 찰떡궁합을 자랑했다. 쌉쌀함이 묻어나는 오일이 조금 느끼할라 치면 고추의 알싸함이 치고 나왔고, 매운맛에 혀가 얼얼해지기 전에 가지의 촉촉함과 호박의 보드라움이 다가왔다. 몇 번 젓가락질을 한 것 같지도 않은데 금세 바닥이 났다.


넉넉히 싸온 덕에 남은 양념에 비상 무기, 빵을 꺼내 들었다. 유연하게 빵을 움직이며 구석에 맺힌 소스 한 방울까지 싹싹 긁어 입 속에 넣었다. 행복의 맛이었다. 아주 천천히 음미했다. 그 기쁨을 오후 내내 기억하기 위해. 그 기억으로 무례한 사람들로부터 나를 보호할 힘을 만들어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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