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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험미 Sep 27. 2024

타임어택을 지켜보는 여자 3

부모를 객체화시켜라 

내기 맺어온 오랜 인연들에는 친구들이 제법 있고, 은사님도 두 분이 계신다. 

매년 두 번은 찾아뵙는데, 두 분 중 한 분과는 여전히 사제지간의 격식이 남아있는 편이고, 

이제 근 30년을 바라보는 한 분과는 스승과 제자 사이를 넘어 절친한 친구에 가까워졌다.   

    

나는 친구 A와 B에게 처음으로 내 가정사를 털어놓고 얼마 후 선생님을 찾아뵙게 되었다. 

이제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된 그 은사님이다. 

차를 마시며 근황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선생님께 질문을 던졌다.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겠다고 한 걸 알고 계시잖아요. 선생님은 오랫동안 저를 보셨으니까... 제가 왜 그런 결정을 했다고 생각하세요?"


질문에서 심상찮은 무언가를 느끼신 듯 선생님은 곧바로 진지한 표정이 되셨다. 


"내가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지."


정말로 그랬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그런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했음에도, 선생님께서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보지 않으셨다. 

삼십 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상대가 직접 말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선, 묻지 않으셨던 거다. 


"두 가지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어. "


놀랍게도 선생님이 짐작하신 두 가지 이유들은 모두 정확했다. 


"첫 번째 생각한 건, 네가 네 앞 날을 위해 자녀를 갖지 않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다고 생각했지. 그게 아니라면 두 번째는 가정에서 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내가 부모가 되는 미래에서 단 한 가지도 좋은 상상을 할 수 없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곧 재앙이었다. 

나와 내 자식이 될 아이에게 모두. 

나는 거의 열 살 때부터 조금 더 안정적이고 편안한 미래를 위해서 자녀는 없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나는 선생님이 언급하신 두 번째 이유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드렸다.  

지인에게는 두 번째로 가정사에 대해 털어놓는 순간이었다. 


폭력적인 가정환경에 대한 내 이야기를 들으신 선생님의 첫 반응은 친구 A(입양을 준비하는 여자)의 의문과 닮아있었다.   


"어머니는 왜 아버지랑 사시니? 왜 아직도 같이 사셔?"


나는 그 물음에 씁쓸하게 답했다. 


"한평생 뼈 빠지게 일하느라 고생했다는 인간적인 연민 아닐까요."


이 말을 할 때면 나는 엄마의 심장 안에 거대한 인류애적 사랑이 존재할 거라고 상상하곤 한다.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모르는 뭔가 이유가 있을 수도 있죠. 아니면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익숙해져서 그 관성대로 살아가는 걸지도..."


선생님은 이해하기 어려운 눈치셨다. 

말하는 나도 이해하기 안 되는데, 선생님은 오죽하시겠나. 


그러면서 나는 타임어택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특히 이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며, 나는 얼마간의 대리만족을 느꼈음을 고백해야겠다. 

선생님과 엄마는 2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선생님에게 털어놓으면서 부모에게 털어놓는 것 같은 대리 충족감을 얻었다. 

그 순간은 선생님을 온전히 은사님으로 보지 못했다. 

부모의 대신으로 여겼다. 

나는 꼭 타임어택을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시도를 하는 심정이었다. 

그 거짓된 시도는 흡사 예행연습 같아서 내게 기묘한 만족감을 선사했다. 


내 거짓 쾌락을 일깨우듯, 선생님은 상담사와는 거의 반대되는 답변을 주셨다.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건 너의 짐으로 남게 될 거야. 분명히."


선생님은 본인의 아버지에 대해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아주 화목한 가정이었어. 부모님처럼 사는 게 내 꿈이었지."


간혹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부모님처럼 사는 게 꿈이라는 글을 마주하게 되면 그 순간 말할 수 없는 부러움에 휩싸이곤 했는데, 그런 인물을 실제로 마주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아버지는 사랑이 넘치셨고, 아주 다정다감하셨어."


단란한 가족 구성원으로 둘러싸인 사랑이 충만한 가정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그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얼마나 보송하고 따뜻할까. 

나는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상상만으로도 온 신경이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아버지가 많은 사랑을 주셨고, 우리도 아버지께 잘해드렸지만... 그런 내게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짐이 남았어. 조금 더 표현할 수 있었다는... 더 잘해드릴 수 있었다는 그런 짐."


선생님은 한 마디를 더 보태셨다. 


"아버지가 폭력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지금 네가 그런 고민을 느끼고 있다면, 그건 분명 네 마음에 짐으로 남을 거야."


선생님은 굉장히 확신에 찬 어조였다. 

선생님의 장담처럼 시간제한 안에 클리어하지 못한 미션은 내게 영영 짐으로 남을까. 

이 타임어택에 실패한 나는 어떤 후회를 안고 살게 될까.

선생님처럼 아련한 눈빛으로 좀 더 잘해드릴 수 있었다며 후회에 젖게 되는 것일까.


나는 그런 의문을 품으며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혼자 남으신 어머님도 연세가 많으셔서, 나는 요새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를 대비하고 있어. 최대한 마음의 짐을 남기지 않기 위해선 엄마와 나를 완전히 객체화시켜서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어."              


상담사분과 선생님. 두 분의 시선은 정반대였지만, 해결 방안의 거의 비슷했다.  

부모와 나를 떨어뜨려서 완전히 하나의 객체로 보는 것이다.     


"언제든 끝이 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면서. 엄마는 엄마의 인생. 나는 나의 인생. 이렇게 서서히 분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지."

             

연관되어 있지만 연관되지 않은 존재.      

그들의 인생은 그들의 인생으로,      

나의 인생은 나의 인생을 사는 것으로, 그것으로 되는 것이다.  

아주 가까이에서 평행하여 달리는 두 개의 선, 그렇게 서로 완전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완전히 분리해서, 객체화시켜야 돼."   


아흔이 된 노모를 바라보며 생각하게 된 것들을 선생님은 하나씩 꺼내놓으셨다. 

            

"언제나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마음을 떼어 놓는 작업을 해. 충격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고, 마음의 짐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지."

"분리시키고 나서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 하고 마는 거야. 그럼 언제 끝이 오더라도, 우리는 최선을 다 했으니까."               


나는 그동안 나를 괴롭게 하는 아버지의 모든 것들을 너무 필요 이상으로 깊게 내 인생에 엮어 받아들이고 있던 게 아닐까.

나와 주변 사람들의 인생을 거대한 하나의 인생으로 동기화해 가면서.


선생님과 상담사분의 말씀을 듣고 나는 한 가지 생각에 이르렀다. 


상대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변해야 한다.       

변하지 않는 상대를 나와 온전히 분리해서 객체화시킨다. 

상대의 언행과 상관없이, 나는 나의 말과 행동을 바꾸어 본다. 

      

말을 해본 다는 자체, 행동을 변화시켜 본다는 자체로 나는 내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가진 타임어택과 관계없이, 나는 내 미션들을 조금씩이라도 시도하면서 짐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짐이 줄어들면 그만큼 편안해진다. 


고로, 내가 변해야 내가 편해진다.


어쩐지 궤변 같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그렇다.


결국 모든 것은 나에게 달린 것이다.  


'눈물은 아래로 흐르고 밥숟가락은 위로 올라간다'라는 말이 있다. 


타임어택이 종료되면, 어느 쪽이든 한쪽만 살아남게 될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은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라며 생을 이어나가게 것이다.  

어쩌면 그런 타임어택이 있었던 것조차 잊어버린 채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들은 그 후에 일이다.

우리가 나중에 어떤 마음가짐일지,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지금, 오늘의 내가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 해보는 것뿐이다. 

상대를 객체화시킨 후에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딱 그만큼만 시도해 보는 것이다. 


사소한 행동을 바꿔보고, 말투 하나를 바꿔보고. 

나는 그렇게 나만의 미션을 수행해 나가면서, 내 타임어택을 해결해 나가면 된다. 

내가 브런치에 이런 글을 쓰는 것 또한 그 이유에서다. 


내 행동을 바꿔 본 것이다. 

내가 하지 않던 행동 하나를 해 본 것이다. 

나는 여전히 타임어택을 지켜보고 서 있지만, 최소한 뒷걸음질 치던 것은 멈췄다. 

주춤거리며 그 자리에 마주 서 있는 걸 택했다. 

부족하더라도, 아주 작은 것이라도 변화를 시도했다는 것 자체에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싶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칭찬받을 일이 적어지니 스스로라도 꼭 칭찬을 해 주자.


아마 그런 이유 때문 에라도 내가 선생님을 계속 만나 뵙는 건 아닐까.


선생님은 요 몇 년간 만날 때마다 그 말씀을 하신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제자를 가르쳤겠니. 나를 거쳐간 학생이 정말 수 만 명일 거야. 그런데 그 많은 아이들 중에서 네가 가장 특별했어. 정말 빛이 났어. 정말 똑똑하고 특별하고 또 특이했지."

  

감사한 마음뿐이었지만, 마흔에 듣기에는 너무 민망한 이야기였다. 

해서 '선생님, 제발 지금 제 모습을 직시해 주십시오' 하고 읍소드렸더니.     


"너는 지금도 빛이나. 내가 어떤 이상한 감이 있는데, 너는 꼭 빛날 거야. 아직 그때가 아닌 것뿐이지. 나는 이상하게 너에 대한 그런 확고한 믿음이 있어."

     

나는 처음으로 선생님 앞에서 울었다. 

그것은 꼭 상담실에서 부지불식간에 쏟아져 나오던 그 울음과 같았다.           


미숙한 나를 조금씩 다독여 가며, 

매번 자신에게 가장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지 말고, 

한 번씩 잘하고 있다고 칭찬도 해 가면서. 


그렇게 나를 변화시켜 보는 거다. 

아주 작은 한 걸음이라도.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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