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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험미 Sep 20. 2024

타임어택을 지켜보는 여자 2

타임어택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타임어택이란.

시간제한이 걸린 미션.

시간 안에 최대한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나는 타임어택을 지켜보고만 있다.                

손을 놓고 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상담을 받았던 때가 언제였더라 하고 날짜를 차근히 짚어봐야 할 만큼 시간은 빨랐고. 

나는 켜켜이 쌓여만 가는 문제에서 뒷걸음질 친 채로 우두커니 서 있다. 

그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유구한 세월 동안 침전하여 쌓인 퇴적층을 바라보는 것처럼 까마득해진다.     


사실 최대한 빠르게 해결한다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시간 안에만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뿐이다.                

이 미션은 시간 내에 해결하지 못하면 그대로 끝이다.      

재도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부모와 나 사이의 타임어택이란 누군가의 죽음이므로.     

      

부모님과 나 사이에 응어리진 문제는 넓게 생각하면 하나의 문제라서, 언뜻 단 한 번의 시도로 해결이 될 것 같은 착각이 일기도 한다. 

그런 욕심과 핑계가 치솟는 것이다. 

언제고 시도만 한다면, 입 밖으로 내뱉기만 한다면 모든 문제가 스르르 사그라들 것 같은.          


그러니 타임어택 내에 시도만이라도 해보자, 시도만 해도 내 도리는 다 한 거라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버티고 있다. 

그 얄팍한 마음에 기대어 타임어택을 넋 놓고 지켜보고 있지만.

 

진심은 알고 있다.      

그것은 정말 말 그대로 착각일 뿐, 살아가는 과정 순간순간 많은 굴곡들이 끊임없이 발생한다는 걸. 

과연 이 모든 것이 해소 가능한 것일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아버지와의 관계가 파행이지만, 아니, 파행이기 때문에 더욱 나는 이 화두에 사로잡혔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가끔씩은 숨이 턱 막힌다.        

이 타임어택은 어느 날 부지불식간에 강제 종료될 게 분명하니까. 


아버지와 우리 자매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문제의 퇴적층에는 무수히 많은 침전물이 쌓이고 있지만, 두 가지 사건만 적어보고자 한다.           


내가 한참 심리 상담을 받고 있던 어느 날.      

그때 아버지의 큰 형, 우리에게는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큰아버지도 아버지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큰아버지도 술 마시면 난동을 피우는 사람이었다. 

(이 집안의 피일까. 

유전적 요인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혹은 그들도 보고 배운 게 그것뿐이라, 불행이 똑같이 프로그래밍되어 그런 것인지.)


하지만 큰아버지 집과 우리 집 사이에는 매우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자매로 딸만 둘인 우리 집과, 아들만 둘인 큰아버지의 집.                

장례식장에서 사촌 오빠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떻게 큰아버지의 성질이 누그러졌는지 물어보게 되었다. 

                

"어느 날 술 취한 아버지가 여느 날과 똑같이 난동을 피우셨는데, 아버지를 침대에 눕히고 버둥거리지 못하게 몸으로 누르고 있었다."


큰 아버지도 체격이 좋은 편이지만, 사촌 오빠들은 정말 건장하다 못해 기골이 장대한 축에 든다.   

나는 쉽게 그 상황을 상상할 수 있었다. 

건장한 아들들이 비교적 나약해진 아버지를 육체적으로 압도해 버린 그림을. 


"지치실 때까지 그렇게 있었더니, 그 뒤로 조용해지셨다."

      

그랬다.     

아들들이 장성해서 아버지보다 현실적으로 위협적인(?) 존재가 되니 아버지가 드디어 조용해진 것이다. 


남편에게도 사촌오빠들과 똑같은 경험이 있었다.   

어머님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에게 남편이 주먹다짐을 했고, 아버님은 그 뒤로 완전히 기가 죽었다고 했다.

남편은 그때 그래도 한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의 기를 너무 눌러버린 것이 지금에 와서는 아주 조금 후회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이와 비슷한 종류의 사연을 때마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어야 했다는 그 부질없는 가정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어릴 때부터 쭉 했던 가정이었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그랬다면 나도 성인이 된 어느 날 사촌 오빠들처럼 아버지를 제압했거나     

혹은 청소년기의 내가 제압 그 이상의 결과로 뉴스에 나왔을 것이라는 상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촌 오빠는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병간호를 형제가 다 했다면서. 

마지막 두 달간 생업도 제쳐놓고, 정성으로 아버지를 돌봤다고 했다.           

마지막에 사랑한다고 말해 드리면서 지극정성으로 해드리고 돌아가시니, 

아버지도 편히 돌아가셨고, 자신들도 편해졌다고 했다.       

         

"너희도 작은 아버지(나의 아버지)께 잘해드려. 살아 계실 때, 잘해야 한다."               


그 장례식장은 여러모로 나를 심란하게 만들었다.  


큰아버지는 아들들이 성인이 되자 조용해(?) 졌고, 우리 아버지는 우리 자매가 마흔이 되었어도 여전하기만 한데,

우리 자매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아버지에게 잘해드려야 하는 것이다.      

안 그래도 부담스럽기만 하던 타임어택에 천근 바윗덩이가 더 얹어진 기분이었다.                


그 외 또 다른 사건은.                


동생에게 있었던 일이다.     


부모님은 살고 있던 민간 임대 아파트에서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준비하던 참이었다.      

임대 아파트 보증금을 빼야 하는데, 계약 만료일은 꽤 남아 있었고 계약을 이어 줄 계승자는 구해지지 않았다.       

마침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던 동생이 자신의 전세 보증금을 빼서 집을 사는 데 보태고,      

동생이 계약이 만료될 때까지 그 집에서 살기로 했다. 

동생이 그런 결정까지 한 데에는 전원주택에 살면서 자신의 취미 방을 갖는 것이 아버지의 평생소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떼쓰는 아이를 달래는 마음으로, 아이가 가장 바라는 장난감을 손에 쥐어주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동생이 임대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던 어느 날 새벽이었다. 

동생은 엄청난 고함 소리에 잠에서 깼다.      


평일 새벽 3시였다.      

아파트 여기저기서 불이 켜졌고, 

술에 취한 남자가 아파트 잔디밭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다. 

남자는 단지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계속 욕설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부모님이 이사한 전원주택과 임대 아파트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동생은 낯익은 목소리에 소름이 끼쳤다.       

남자의 고함은 술에 취해 수십 년 동안 되풀이 되었던 아버지의 레퍼토리와 똑같았다. 

그에 동생은 확신했다.               


아버지라고.                


남자의 욕설과 악에 받친 고함을 들으며 동생은 치를 떨었다.     

남자의 주정이 극에 달했을 때, 경찰이 왔다.      

다만 경찰이 왔을 때만 잠시 조용해지고, 남자의 난동은 새벽을 지나서도 이어졌다.      


남자의 주정이 이어지는 동안 동생은 엄청난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내려가 볼까, 하는.                

동생은 결국 내려가지 않았다.      


그리고 아침에 출근 시간이 되자마자, 내게 연락했다.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아파트 단지 내 커뮤니티가 그 사건으로 난리였다고.       

평일인데 새벽에 난리 친 통에 정말 힘들었다.     

경찰 왔는데도 왜 계속 시끄러웠냐.     

사는 게 힘드신 분 같은데, 그래도 이건 아니다... 등등.               

아파트 커뮤니티의 반응을 전하는 뉘앙스로 동생은 질문을 던졌다.      


그 사람이 정말 아버지였을까? 하는.      


어쩐지, 동생의 그 연락이     

새벽에 종종 날아오곤 하는 아버지의 욕설이 뒤섞인 카톡 메시지보다 나를 더 심란하게 했다.                


나는 오전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오후가 되어 엄마에게 연락했다. 

괜찮냐는 식의.      

그리고 사실 관계를 확인한 결과 그 남자는 아버지가 아니었다.      

다행히도.                


그리고 며칠 뒤 이런저런 일이 있었는데 그날 그 사람이 아버지인 줄 알았다는 동생의 오해는     

엄마에게로, 다시 그 말은 엄마에서 아버지에게로 전해졌다.      


아버지의 기분이 집안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그날 아버지의 컨디션은 좋았던 것이다.           


"그렇담 내가 다음에 진짜로 아파트 단지에 가서 술 마시고 주정을 부려야겠다."     


동생의 오해에도 기분이 상하지 않고 오히려 농담 거리로 여긴 아버지는 그런 말을 던졌다.      

이에 동생은 그게 무슨 재미난 일이냐고 그걸 농담이라고 하냐고 정색했고.

아버지는 농담으로 한 건데 왜 농담으로 못 받아들이냐며 화를 냈다.      


"인생을 도대체 어떻게 살았으면, 자식이 그런 착각을 하겠어.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 정도조차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무지한 거야."   


동생의 정색에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급발진했다.      

좋게 좋게 넘어가면 좋지 않았느냐는 엄마의 말에,    

 

"무식한 부모가 자식 학대하는 줄도 모르고 있고, 그 수준이랑 똑같으니 그러고 사는 거야.”     


동생은 매우 드물게도 엄마에게도 모진 말을 던지고 부모님 댁을 나왔다. 

그 일로 집 안에 한바탕 태풍이 몰아쳐 버렸다. 

                     

나는 이런 일들을 상담사에게 말했다. 

타임어택을 바라보는 내 초조함과 늘어가는 짐의 무게에 대해 상담사님은 이렇게 답해 주셨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아버지가 도움을 주셔야 하실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 아버님 행동이 어떠시죠? 아버님은 전혀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고 계시지 않아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온전히 아버님의 몫입니다."      


비단 이 타임어택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이 시간제한이 걸린 미션은 나뿐만이 아니라, 부모님도 똑같이 갖고 있는 것이다. 

(본인이 미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내담자분이 노력해 보시는 건 내담자분의 의지지만, 그걸 짐으로 가져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부모는 부모, 나는 나라고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하고 사셔야 합니다. 부모님은 부모님의 인생을, 나는 나의 인생을. 모두 각자의 인생을 사는 거라고 분리하세요."

     

장례식장을 다녀온 후 소란스러운 내 마음에 대해 상담사분은 이것이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하셨다. 

상담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이런 큰 이벤트(?)가 일어난 것은 상담을 심도 있게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이고, 이런 사건들을 통해 성장할 기회를 얻는다고 말해주셨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겐 후합니다. 죽고 난 후에는 나쁜 점 보단, 좋았던 점만 남아서 그렇습니다.      

그건 내담자분의 짐으로 남는 게 아니라, 아마 아버님이 돌아가시는 그 순간에 그분의 짐으로 남을 겁니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약간은 매정하게 들린 그 말이... 좋았다. 

이 일이 나의 짐이 아니라, 아버지의 짐으로 남는다는 것이.      


동생의 말처럼 무지한 아버지이기에 그런 자각이 전혀 없을까.

아니면, 나처럼 인지하고 있지만 그저 타임어택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일까. 

혹은 그런 자각이 없이 살다가, 정말 최후의 순간에 그 어떤 후회를 갖게 되실까.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 타임어택이 과연 나만의 타임어택인 것인지. 

쌍방인 것인지. 


그리고 이 타임어택의 끝에서 누가, 어떤 후회를 하게 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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