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를 거부하다
나는 자녀라는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주 가까운 사이더라도 주식의 종목이나 매수매도의 시점은 참견하는 법이 아니다.
부모 자식 간이나 형제자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자매는 매번 주식 종목이나 매수매도 시점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사실 정보의 공유라기보다는 그래도 은행과 증권사를 다녀 영리한 개미 정도는 되는 그녀에게 하는 수시 보고에 가깝다.
나는 장렬하게 전사하는 동학개미이기 때문에, 매번 증권 계좌에 큰 변동이 있을 때면 신탁을 청하는 사제처럼 그녀에게 가르침을 청한다.
경기 둔화 우려로 미증시와 엔비디아가 급락한 날.
코스피 폭락장에 증권앱을 열어 본 나는 바로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아니, 반토막도 아니고. 세토막이다. 세 토막.
고등어야?
반문하는 동생의 카톡에 나는 잠시 무슨 소린가 했다.
고등어? 맞아. 고등어야!!!
고등어처럼 세 토막으로 동강 난 보유주를 확인하며 나는 너무 어이가 없기도 해서 그냥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나중에 회귀하면
무조건 코인
엔비디아. 테슬라. 2차 전지 업체... 등등
꼭 기억해라. 잊지 말고 기억했다가 회귀하면 꼭 써먹어.
나는 장난으로 그렇게 보냈다.
당연히 웃자고 한 말이었다.
그러자 문자에서도 거부가 느껴지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로 동생의 답변이 왔다.
됐어. 난 회귀 안 함.
회귀 안 할 거야.
농담에 묻어 있는 약간의 정색에서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거기에 담긴 뜻도.
나에게도 소름 끼칠 정도로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남편에게는 유달리 친하게 지내는 나이대가 비슷한 4~5명의 직장 동료들이 있었다.
우리 부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이가 있는 집이어서, 그들은 종종 부부 동반으로도 다 같이 친하게 지냈다.
어느 날은 부부 동반 모임에도 혼자 나오곤 하는 남편에게 나와의 동반을 요청하는 일이 생겼다.
그전까지는 내가 스케줄 근무를 하는 회사에 다녔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주말 모임 참석이 어려웠었다.
그때는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쉬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자연스레 동반 요청이 왔던 것이다.
남편들끼리 친하다곤 하지만, 사실 모두 아이가 있는 친한 부부들 사이에 갑작스럽게 초면의 딩크가 끼어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나는 매우 부담스러웠다.
그럼에도 시간 맞을 때 얼굴이라도 비추는 게 좋겠다 싶어 모임에 참석했다.
참석하기 직전까지 마음 한편에 묵직한 부담이 있었음에도,
모임 자리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하고 즐거웠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아이들은 신이 나서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적당히 기분 좋게 취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을 때.
여러 사람이 우리 부부의 모습을 부럽다고 하며 추켜세워 주었다.
처음 참석한 나를 편하게 해 주기 위한 배려였다.
"신혼 같네요. 아직도 연애하는 분위기예요."
"앞으로도 계속 신혼이겠죠. 부러워요. 너무 보기 좋아요."
아직도 알콩달콩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면서 이런저런 듣기 좋은 말들이 오갔다.
그러다 아내 분 중 한 분이 내게 물었다.
"다시 태어나도 또 남편이랑 결혼하실 거예요? 저는 또 남편이랑 결혼할 거예요."
모두의 입가에 걸려있는 미소, 명랑한 아이들의 웃음소리, 기분 좋은 분위기가 무르익은 밤이었다.
나는 로맨스를 묻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생이 이번으로 끝이었으면 좋겠어요."
"죽고 난 뒤에는 아무것도 없이 완전한 끝이길 바랍니다."
"무로 돌아가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웃자고 던진 질문에 죽자고 달려들었고.
상당히 로맨틱했던 질문과 분위기는 내 답변으로 순식간에 다큐로 변하고 말았다.
아...
파증불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돌아봐서 무엇하겠는가.
아무튼.
그렇다.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동생이 회귀를 거부했던 것처럼.
자녀로 경험했던 이 모든 경험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
이 생을 끝으로 모든 것이 완전히 없어졌으면 좋겠다.
온전한 끝, 무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또다시 이 모든 고통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소망의 발원인 것이다.
미숙한 어른의 미숙한 마음은
이런 찰나의 작은 대답에도 녹아있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는 마흔이 넘어서도 자녀라는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녀라는 찢기고 상처 난 역할을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다.
구질구질 온통 해진 그 역할을 놓지 못하고 꽉 움켜쥐고 있다.
자녀라는 입장이, 자녀라는 역할이, 언제나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비단 지금도 종종 일어나는 아버지의 난동뿐만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뉴스를 보면서도.
내 안에 자리한 자녀라는 마음가짐은 시도 때도 없이 강렬하게 제 존재감을 드러낸다.
언제 어느 때 뉴스를 보더라도, 우리는 자녀를 괴롭히는 부모들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친부모에 의해 학대당하는 아이들의 뉴스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매번 비분강개한다.
그 자녀들을 대신해서 분통을 터트린다.
자식은 태어남과 동시에 강제적으로 그 환경에 놓이게 된다.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렇게 환경을 강제해 놓고,
모든 것을 원천 봉쇄시켜 놓고서.
저런 사람들은 도대체 왜 자식을 낳았을까.
저만한 고통을 주면서도, 자녀에게 그 어떤 마음도 들지 않는 것일까.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낳았단 말인가.
이런 강렬한 의문이 나를 뒤흔들어 놓으면.
나는 매번 상상해 보곤 한다.
만일 내가 자식을 낳았더라면... 하고 가정하게 된다.
각오를 하고 낳았더라도, 사람 마음이 사람 마음 같지 않고.
인생은 늘 예측불가로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으니까.
처음에 품었던 마음과 각오와 달리 상황에 휩쓸려 변하게 되는 걸까.
나라면... 그 마음이 변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라면... 올바른 양육자가 될 수 있었을까.
나도 뉴스에 나오는 저런 부모들처럼 되지 말란 장담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나라서. 나라는 인간이기 때문에.
보고 배운 게 그런 건데.
'네가 부모가 되면 뭐 다를 것 같아? 아니야. 너도 저렇게 뉴스에 나왔을걸.'
지옥 구렁텅이에서 기어올라온 것 같은 시커먼 의심과 상상이 손을 뻗친다.
한 번 시작한 끔찍한 상상은 대게 이 정도는 되어야 멈출 수 있다.
착잡한 마음을 내리누르며 질문을 던진다.
이 자녀라는 입장과 마음가짐은 언제쯤 버릴 수 있는 것일까.
아버지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일까.
내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일까.
설마 그 이후에도 무언가 있는 걸일까.
남편과 함께 했던 부부 동반 모임에서도 위에 언급한 것처럼 로맨틱한 질문도 있었지만,
아이가 있는 사람들이 흔히 딩크에게 하는 질문도 있었다.
"그런데 왜 안 낳으세요?"
"아예 생각이 없으신 거예요?"
남편의 지인들이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때보다 좀 더 명확하게 사실을 밝혀 솔직하게 대답했었다.
"남편은 아이를 갖고 싶어 했어요. 저는 남편을 만난 처음부터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어요. 남편은 아마 제 마음이 바뀔 줄 알았나 봐요. 한 2~3년은 그런 마음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러다 시간이 더 지나서는 완전히 포기했고요. 지금은 오히려 아이 없이 사는 게 좋다고... 앞으로도 낳을 생각은 없습니다."
남편은 분명 아이 없이 사는 게 훨씬 좋다고.
예전에 아이를 갖고 싶었던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절대 낳고 싶지 않다고 본인 입으로도 말했다.
하지만 내가 굳이 오히려 아이 없이 사는 게 좋다는 말을 붙인 것은 순전히 내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부모가 되지 못하고 늘 자녀인 채로 머무는 어리석은 아내의 남편이 된 죄로
다른 사람들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받게 된 남편이지만, 사실 행복해합니다.
아이가 없이도 우리는 잘 살고 있어요.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아니면, 남편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고 내가 믿고 싶었기 때문이거나.
어쩌면 진짜로 명확하고 솔직한 대답은 이랬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안 낳으세요?"
-마흔이 되도록 가정폭력이 심한 집에서 자란 자녀라는 마음가짐을 버리지 못해서, 선량하고 좋은 부모라는 입장이 될 수가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한꺼번에 두 개의 역할을 다 소화할 수 있는 깜냥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아예 생각이 없으신 거예요?"
-언젠가 이 마음의 짐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그때는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니요. 사실 그것도 다 핑계고요. 저는 선량하고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해야 할 그 많은 노력과 희생을 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랬다면 나는 그냥 던진 질문일 뿐인데 죽자고 달려드는 사람이 되어, 다시 한번 다큐를 찍었겠지.
그러나 현실은 다큐다.
동생은 당연히 회귀를 할 수 없고.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없다.
극렬하게 괴로웠던 일들이 다 흘러간 일일 뿐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다시 돌이킬 수 없고,
다시 한번 살아볼 수 없고,
이대로 흘러갈 뿐이라서 그래서 삶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잠시 로맨스가 아니라 다큐여도, 현실에 있으니 다행이란 감정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마주한 어떤 신이 회귀를 시켜준다거든,
난 회귀 안 함.이라고 당당하게 회귀를 거부해 보자.
그 쿨한 배포에 반한 신이 기어코 회귀를 시켜버리면, 코인은 꼭 기억하자.
피식, 어이없이 터져 나오는 찰나의 헛웃음도, 어쨌든 웃고 사는 거다.
매일 괴롭기만 해선 살기 힘들다.
웃고 살자.
헛웃음이라도 피식 웃고 나니 조금쯤 살만 해 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