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독서모임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제가 예전에는 낯도 가리고 아주 내성적이었거든요…….”
그 말을 마치자마자 여기저기서 ‘네? 그럴 리가요?’하는 반응이 튀어나왔다. 내가 마치 턱없는 거짓말을 한 것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모두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 사람들보다 내가 더 놀라웠다. 그래도 조금은 수줍음이 남아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그럼 도대체 어떻게 보인다는 거지? 이 공간에서 그 동안 내가 너무 뻔뻔하게 나댔던 건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나도 결국 달라졌구나. 마침내 변했구나.
어릴 적엔 누군가에게 먼저 뭔가를 제안하는 게 가장 힘든 일이었다. 엄마에게 뭔가를 졸라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상대가 얘기를 꺼낼 때까지 기다렸다. 사회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꼭 필요한 일 이외에는 먼저 나서는 걸 꺼렸다. 두 번째 들어간 회사에서의 업무도 카피라이터였는데 인간관계의 스킬이 딱히 필요치 않았다. 일이 힘들다 해도 그저 촉박한 마감 때문이었지, 사람 때문은 아니었다. 그랬던 내가 천지개벽 같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다니던 회사의 부도로 직장을 다시 옮기면서부터였다. 출판사의 홍보담당을 맡게 된 것이다. 나는 이삼일이면 한 권씩 나오는 책을 언론사에 소개해야 했다. 이 일은 시작과 끝이 전화 통화였다. 아침에 출근해서 자리에 앉으면 심호흡을 크게 하고 언론사에 전화를 했다. 친구에게 놀러 가자는 연락도 해본 적 없던 내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를 주도해야 했던 것이다. 이런 업무를 해야 한다는 건 입사 전 인터뷰에서 분명히 들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울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어떤 기자는 건성으로 ‘네, 네, 네’ 했다. 어떤 기자는 퉁명스럽게 ‘알았어요’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자존심이 상해 눈물이 울컥 솟구친 적도 있었다. 가끔은 사무실 사람들이 내 통화를 듣고 있다가 ‘저렇게 밖에 얘기를 못하나?’ ‘저건 너무 비굴한 거 아냐?’ 하고 평가하고 있는 것만 같아 신경이 곤두섰다. 일은 전화로만 끝나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기자들을 만나서 친분 형성을 해야 했다. 주로 점심 약속을 잡았는데 솔직히 할 말이 별로 없었다. 어떤 기자는 진지하게 내게 이런 충고를 했다.
“그렇게 말수가 적어서야 이 일 하겠어요?”
자기도 만만치 않게 말이 없었으면서 정적의 책임을 내게 돌렸다. 물론 먼저 만나자고 한 사람이 나였으니까 그랬겠지만. 그런 조언조차 않고 나와 똑같이 입을 꾹 다문 채 식당 안에 켜 있던 TV만 보던 기자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일단 일을 계속해야 돈을 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첫째, 있을 것 같지 않던 내면의 변화가 보였다. 6개월 전보다 조금 나아졌다는 자각이 들었다. 수화기를 들기 전 쿵쾅거리던 심장이 점점 차분해졌다. 인당수에 뛰어드는 기분이긴 했으나 어쨌든 매번 수면위로 떠올랐다. 둘째, 열심히 하려는 의지를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어떤 분은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조 팀장이 쓴 보도자료는 뭔가 달라요.”
사실 전화로 급하게 읊어대는 홍보문구보다 문서로 작성한 보도자료가 더 중요했다. 그걸 인정받은 것이다. 그 말이 내가 내 글을 쓰겠다는 결심의 시발점이 되었다. 누군가는 내가 상대방 이야기에 집중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는 말도 해주었다. 나로서는 말을 잘하지 못하니 듣기라도 열심히 하려 했던 것이었다. 만화 홍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토로하자 어느 기자는 만화 칼럼을 쓸 수 있도록 내게 공간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셋째, 어느 새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즐거워졌다. 약속이 생기면 신이 났고 약속이 없는 날엔 좀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세상에, 내가? 어느새 기자들 외에 다양한 사람들, 작가들과도 친분이 생겼다.
그렇게 6년 만에 나는 확 바뀌었다.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상쇄해줄 만한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나를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밀어주었다. 서은국의 <행복의 기원>에 소개된 마이클 가자니가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결국 인간관계를 잘하는 것을 목표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같은 책에서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 역시 지구에서 살아남은 최고의 동물, 개미와 인간은 유별나게 사회적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스마트폰도 알고 보면 사람들과 연결되는 다양한 방식을 제공하는 기기이기 때문에 이토록 쉽게 우리 삶을 장악했던 것이다. 내성적인 줄로만 알았던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결국엔 다 인간관계를 잘 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는 인류라는 것. 반박하기 어려운 진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