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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강 Nov 03. 2018

혼자도 괜찮다는 거짓말

혼밥, 혼영, 혼행이 요즘은 참 흔하다. 카페나 식당, 극장과 여행지 어디에서나 혼자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내겐 오래 전부터 익숙한 일이지만 한편으론 뜻밖의 광경이다. 나는 나처럼 이상한 인간이나 어쩔 수 없이 택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중 내가 가장 먼저 시작한 건 혼영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지 한두 달 지났을 때였다. 같은 수업을 듣던 다른 과 2년 선배가 강의실을 나오던 나를 붙잡고 노트를 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노트를 돌려줘야 하니 내일 모 카페로 나오라고 했다. 별 생각 없이 나는 노트를 건넸고, 다음날 그 카페로 나갔다. 그는 내게 노트는 핑계였고 내가 마음에 드니 사귀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럴 마음이 전혀 없던 나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전 싫은데요.”

“네? 내가 왜 싫어요?”

그는 내게 화를 냈다. 사귀고 싶다던 여자애에게 금방 화를 낼 정도로 관계에 서툰 사람이었다. 나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리고 혼자 강남역의 한 극장으로 들어갔다. 하필이면 다니던 대학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 속 다혜와 민우의 기구한 운명에 공감하며 눈물을 닦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덧 저녁이었다. 기분은 좀 나아졌다. 얼떨결에 혼자 영화를 보는 ‘대단한’ 일도 해냈다. 하지만 나는 이 용감한 혼영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런 날엔 혼영보다는 친구를 불러내서 하소연을 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판단이 내 안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급작스럽게 시작한 혼영에 비해 혼밥은 직장을 다니고도 한참 뒤에 시작되었다. 그만큼 혼밥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랬던 내가 어느 날부터인가 깜찍한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약속이 있어서……’, ‘다른 볼일이 있어서……’ 그래놓고 좀 외진 곳의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 밝은 조명 아래 뭇 시선들을 받는 건 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부서 사람들과 매일 같은 식당에 가는 일은 더 힘들었다. 나는 관계의 불편함 대신 혼자 있는 긴장감을 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혼자 하는 일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혼자 여행을 하게 되었다. 프라하로 떠난 것은 완벽한 혼행이었다. 비행기와 호텔을 예약한 후 8월말의 어느 날 밤 프라하 공항에 혼자 내렸다. 5박 6일간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충실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피하지 못한 실수가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나는 호텔 근처의 역에서 트램을 타고 시내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매표기가 작동을 하지 않았다. 이때 동반자가 있었다면 ‘뭐야? 이거 고장인가 봐! 다른 데로 가자.’ 했을 것이다. 혼자였던 나는 맹목적으로 매달려서 계속 동전을 넣으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한 시간을 허비했다. 포기를 하고 그곳을 떠날 결심을 하고 나서야 모든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매표기가 완전히 녹슬고 버려진 기계임이, 한 시간 동안 트램이 이곳에 한 번도 정차하지 않았음이, 결국 그 역은 오래 전에 폐쇄된 역임이. 물론 나 이외의 여행자도 보이지 않았다.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사람은 이렇게 시야가 좁고 판단력이 떨어질 수 있었다. 소름이 끼쳤다. 그날의 일은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던 내 자만심에 제동을 걸었다. 인간은 혼자라는 이유만으로 완벽하게 불완전할 수 있었다.      

     

물론 혼밥이나 혼영, 혼행에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문제는 그런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요즘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다. 정말 혼자가 좋아서일까, 아니면 내가 그랬듯 관계 맺기에 대한 스트레스와 부담감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선택이었을까.  

솔직히 혼자 밥 먹는 게 신나고 좋을 리는 없다. 아니, 재미도 없고 맛도 잘 모르겠다. 자청해서 혼밥을 하던 나도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수도 없이 생각했다. 오죽하면 재벌가 자제가 같이 밥 먹어주는 비서를 채용했겠는가. 혼밥을 죽어도 못하겠다는 사람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주구장창 혼자서 식당가를 떠도는 모습도 을씨년스럽다. 시간이 없어서, 상대를 기다리기 싫어서, 대화가 불편해서, 내 취향대로 먹고 싶어서, 더치페이가 귀찮아서 등등 이유는 많지만 혼밥은 어떤 이유에서든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혼밥하는 모습을 셀카로 찍어 SNS에 올렸을 때 모두가 ‘좋아요’만 누르는 것도 이상하다. 아무도 ‘너 왜 혼자 밥 먹었니?’라고 묻지 않는다. 그가 정말 혼자이고 싶었다면 그런 걸 SNS에 올리지 않았을 텐데 누구도 더 깊은 이유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현대인은 더 이상 외로워해서는 안 되고, 혼자서도 강한 척 해야만 ‘세련된 개인’으로 인정받는 모양이다. 그러나 괜찮은 표정으로 괜찮다고 하는 말이 사실은 괜찮지 않을 수 있다. 일주일까지는 괜찮았는데, 8일째 혼자 먹는 게 너무 속상할 수도 있다. 그런 이들의 마음을 한 번 더 들여다봐줄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편하긴 해도 어쨌든 외로운 것, 그것이 혼밥, 혼영, 혼행의 참모습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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