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국화
작년 가을, 국화 화분 셋을 사 왔었다. 노트북 가방을 메고 카페 가는 길에 화원에서 내놓은 국화 화분이 앙증맞기도 하고, 안돼 보여서였다. 화원의 맨 앞줄에 나란히 놓인 키 작은 국화들은 마치 학교 조회시간에 맨 앞에 서 있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아이들 같았다.
국화 화분 셋을 나는 베란다에 나란히 놓아두었다. 흰 국화, 주황색 국화 그리고 자줏빛 국화 화분은 마치 머그컵에 심어진 것처럼 아주 작은 몸집에 꽃을 매달고 있었다. 그것들은 가을이 지나자 금세 꽃이 지고 말았다. 그리고 봄이 되자 시름시름 몇 개의 작은 가지만 돋아났다. 그러자 아내는 그 화분 셋의 묘목들을 하나의 화분에 옮겨 심었다. 빈 플라스틱 화분에 그들을 심고 베란다 한 귀퉁이에 놓아두었다.
봄과 여름을 지나면서 제라늄, 선인장, 작은 장미 화분이 꽃을 피우고, 출판기념회 때 받은 호접란과 양란이 화려하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랑할 때도 그는 베란다의 한쪽에서 우리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자신의 존재감을 스스로 증명하지 못하는 그는, 마치 투명인간처럼 있으나 마나 한 화분이었다.
11월 중순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 입동도 지났으니 가을이라고 하기보다는 초겨울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기온은 영상을 유지하고 있다.
작년 가을에 사 왔던 국화가 뒤늦게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인가? 염려스럽다. 작년에는 키는 작지만 줄기마다 나름대로 색깔이 선연한 꽃송이가 참 보기 좋았는데… 꽃이 지고 난 뒤 가지들을 잘라주었었고 올해는 전부 합쳐 10여 개의 가지만 듬성듬성 돋아나 있다. 올해 여름이 지나서도 그들은 작은 키만 유지할 뿐 꽃봉오리를 맺을 생각은 없는 듯했다. 내가 가끔 물을 주고 수액 영양제를 주어도 키는 늘 고만고만했고 꽃을 피울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10월 말이 되자 가을날의 꽃들은 모두 지기 시작했다. 동백나무만이 내년 봄을 기약한 듯 봉오리를 키워가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의 화단에 피어 있던 국화들까지 모두 자취를 감추어버린 11월에 그들은 쌀쌀한 바람 속에서 작디작은 꽃봉오리를 내밀었다. 아내는 콩알만 한 꽃망울이 맺힌 것을 보고 화분을 베란다 밖의 화분대에 내어놓았다. 11월 말 날씨가 영하로 하강했을 때 혹 얼어 죽는 것 아니냐고 들여놓자고 했지만, 그래야 꽃을 피운다며 영하의 날씨에도 안으로 들여놓지 않았다.
연약해 보이는 가지, 밑동의 잎들은 누렇게 말라가고 있는데… 들판에는 서리도 이미 내렸는데… 그들은 안간힘으로 꽃대를 밀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1년 동안 작은 화분의 토양 속에서 충분히 물도 마시지 못한 채 근근이 생명만을 이어오던 그가 마지막 불꽃을 피워 올릴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에게 물 초롱 가득 물을 담아 발목에 뿌려주었다. 목마름이라도 덜어줄 심산으로… 그리고 12월이 되었다. 초하루를 지나자 눈이 제법 오기 시작했다. 아내도 할 수 없이 국화 화분을 들여다 놓았다.
영하로 접어든 12월 어느 날 국화 화분이 꽃봉오리를 내밀었다. 자세히 세어보니 열두 송이다. 꽃봉오리는 마치 야생의 국화처럼 아직은 자그마하다. 하지만 꽃잎의 색깔만큼은 선명하다. 국화가 꽃을 피우자 작년에는 시름시름하던 게발선인장도 붉고 흰 꽃들을 마디 끝마다 매달고 있다. 작년에는 내가 물을 너무 자주 줘서 뿌리가 썩었던 것들이다. 아내는 하나의 화분에 흰색과 빨간색 꽃을 피우는 선인장을 합쳐 심어 놓았었다. 겨울이 가까워지자 국화와 선인장이 남아있던 생명의 혼을 끄집어내어 처절하게 꽃을 피워낸 것이다. 마치 손가락 끝에 불꽃을 매달고 있는 듯이…
그들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아파트 베란다라는, 온실 같은 인위적인 환경이 그들을 착각하게 만든 것일까? 겨울 람이란 시련이 생에 대한 본능을 이끌어낸 것일까? 시련과 고통은 언제나 삶을 저해하는 요건들일까?
우리의 삶은 때로는 고통스럽다. 때때로 찾아오는 견디기 힘든 시련은 우리의 가냘픈 생을 위태롭게 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런 시련과 고통을 회피하고자 한다. “안녕하시길…” 혹은 “평안하시길…”과 같은 말처럼 우리의 삶이 순탄하고 안락하기를 희구한다. 하지만 우리의 생은 바라는 대로 그렇게 늘 안녕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참기 어려운 시련과 고통 속에서 흔들리고, 눈물짓고, 절망하기도 한다.
태어날 때부터의 숙명일까? 유전적으로 타고난 체질일까? 아니면 어릴 적부터 시름시름 커온 탓일까? 늘 온전하지 못한 몸은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때로는 나의 의지로서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시련은 겪게 하기도 했다. 절망은 나를 삶의 밑바닥으로 끌어내렸고, 때로는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참혹한 대지에서 다시금 일어서야만 했다. 자질구레한 병에서부터 죽음의 그림자가 비치는 종양에 이르기까지 몸의 고통은 늘 내면의 트라우마로 자리했다. 그렇기에 반대급부적으로 어릴 적에는 약에, 커서는 운동에 매달려 살아온 세월이 벌써 수십 년이다.
늘 두려워했고, 도외시하고 싶었던 시련과 고통도 내 생의 일부라고 언제부터인가 희미하게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그것들도 삶의 또 다른 단면임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고… 그 고통과 시련도 이제 껴안고 남은 길을 걸어야 한다고…
하기야 삶이 늘 조용하고 안락하다면 무슨 재미가 있으랴? 그런데도 우리는 늘 그런 삶을 소망한다. 가장 재미없는 이야기는 – 가장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왕자나 공주로)/가장 좋은 학교에서 훌륭한 선생에게 배우고/가장 아름답거나 잘생긴 배우자를 만나 세상에서 가장 잘난 자식을 키우고/가장 맛있는 음식과 옷을 입고 살다가/가장 행복하게 죽었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를 선망하기도 한다. 금수저로 태어나 잘났거나 돈 많은 집안의 배우자와 결혼해 귀족처럼 호화롭게 사는 주인공의 막장 드라마를 보면서 대리 만족하기도 한다. 그러나 잠깐의 드라마가 끝나면 우리는 다시 도외시할 수 없는 나 자신으로 돌아온다. 끊임없이 지속되는 신경통, 두통, 현기증 등과 마주해야 한다.
누구도 바라지는 않지만, 시련과 고통은 때로는 우리에게 잠재된 힘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12월 겨울바람을 맞고 꽃을 피우는 그들처럼 삶의 시련은 느슨했던 마음을 다시 팽팽하게 긴장하게 만들기도 하고 보다 굳건한 마음가짐을 가지게 한다. 그렇다, 누구나 평안함을 꿈꾸고 안온한 삶을 희구하지만 우리들의 생은 언제나 고난과 고통으로 얼룩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러한 얼룩을 자신만의 아름다운 생의 무늬로 새겨가야 한다.
12월 초부터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하더니 중순으로 접어든 엊그제는 제법 예쁜 꽃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자줏빛 꽃대 하나는 바람결 때문인지 꺾여 있었다. 테이프로 고정해주었더니 탈없이 꽃잎을 펼쳐 보인다. 처음에는 보라색 국화가 활짝 피고 그다음은 황국화가 그리고 흰 국화는 맨 마지막에 꽃잎을 펼쳐 든다.
1월 중순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은 아파트 베란다를 환히 빛내주고 있다. 나는 가끔 그들에게 물을 주며 ‘예쁘다’, ‘오래 피어 있어라’고 말해준다. 늦었지만 얼마 전에는 물비료도 챙겨주었다. 아내도 “죽을 것 같더니, 꽃을 피웠다,”고 신기해한다. 그리고는 “아마 집안에 좋은 일이 생기려나 봐요.”라고 말한다. 믿기지는 않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비좁은 한 화분에서 피어난 세 가지 색의 겨울 국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시 구절 하나가 떠오른다. 쭈그리고 앉아서 그들에게 말을 건네자 그들도 한마디 거든다.
겨울 국화
너 참 예쁘다.
예쁘게 보아주는 당신의 눈이 더 아름다워요.
-졸시 미발표작 <겨울 국화> 전문
국화 옆에서 게발선인장도 나도 예쁘다며 꽃을 피워낸다. 그리고 두 주가 지나자 동백이 꽃봉오리를 활짝 열어 보인다. 국화가 꽃을 피우자 그들도 덩달아 꽃 피운 것일까? 아니면 시샘이라도 하는 것일까?
싸늘한 바람 덕분에 개화한 국화처럼 오늘의 고통과 힘듦을 견디자. 그러면 언젠가는 우리만의 꽃을 피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추고(2021년 12월에 덧붙이다.)
제멋대로 자라난 그들은 2021년 가을부터 겨울까지 아파트 베란다를 국화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잘 자라서 고맙고 꽃 피워줘서 고맙다. 너희들 참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