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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시인 Jan 28. 2020

일상에서 만나는 아름다움과 기쁨. 6

전주 한옥마을에서

     1 전통한옥에서 하룻밤


    “이 모과나무도 근 백 년은 되었을 거예요.”

    전주 한옥의 주인이 일러준 말이다. 나보다 열 살쯤 위로 보이는 초로의 남자였다. 내가 묵은 한옥의 주인장은 ‘이 집이 올해로 93년이 되었고 지붕과 대들보, 마루도 집을 지을 당시 그대로’라고 일러주었다.

작은 정원이 있는 한옥

    모과나무의 둥치는 제법 든든하다. 모과도 튼실히 달려있다. 다만 잎들만 벌레들이 갉아먹었는지 군데군데 상처들이 보인다. 주먹만 한 모과는 아직 풋사과처럼 푸르다. 아마 조금 지나면 노랗게 익을 것이고 집안 가득 모과 향이 번질 것이다.

    오 교수와 함께 간 전주행, 동행(同行)이 동행(同幸)이란 어느 책의 구절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을맞이를 나섰다. 가는 길에 휴대전화의 숙박업소 검색 애플리케이션으로 예약을 하고 현지의 시인들과 어울려 막걸리 골목과 길거리 맥줏집에서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하룻밤, 푹신한 침대가 아니라 얇은 요 위에서의 잠은 불편했다. 그러나 아침나절 한옥 마루에 앉아 아담한 정원을 바라보는 것은 한동안 아파트에만 살아온 나에게는 오랜만의 옛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막걸리 골목에서 첫번째 상

    소나무 향기가 은은히 풍기는 마루, 아침 햇살이 가득한 나무와 돌과 잔디로 꾸며진 소박하지만 오밀조밀한 정원, 가을이라서 그런지 더 눈길이 가는 과실수들… 모과나무, 석류나무, 대추나무, 감나무까지 정원의 안팎에서 오밀조밀한 열매를 매달고 있는 과실수들이 내게 가을임을 알려주는 것 같다.

    모과나무와 함께 눈길을 끄는 것은 석류다. 나무 문짝으로 만들어진 대문 바로 곁에 있는 석류나무도 모과나무 못지않은 연륜을 보인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굵은 둥치를 지닌 석류나무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담한 나무의 잎새 사이사이에 이미 붉어진 열매들이 쉽게 눈에 띈다. 화분에 심어진 석류만을 보던 내게는 신기하기만 하다. 언젠가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우리 돈 천 원쯤에 석류 주스를 사서 아내와 함께 마신 적이 있었다. 길 주변 상점에 수북이 쌓인 내 주먹보다 큰 붉은 석류 열매가 경이롭던 기억처럼 한옥의 석류나무도 내게는 놀라웠다.     

      2 한옥마을로 산책을


    오 교수와 둘이 콩나물해장국으로 쓰린 속을 달래고 한옥마을로 산책을 나섰다. 토요일 오전이라선지 한산한 거리를 지나자 방문객들이 부산한 양쪽으로 상가와 길거리 음식점이 늘어선 거리가 이어진다. 우리는 여기저기를 산책하다가 최명희 문학관에 들렀다. 장편소설 『혼불』 집필 이후 50대 초반에 생을 마감한 그녀의 열정의 편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생의 모든 열정을 다 쏟아부은 소설 집필 이후 세상을 달리 한, “아름다운 세상, 잘살고 간다.”는 그녀의 마지막 유언이 왠지 쓸쓸하다.

    한옥거리 끝자락에서 만나는 130년이 되었다는 전동성당, 붉은 벽돌과 첨탑들이 지난 세월과 역사의 풍상을 그대로 안고 있다. 어둑한 내부로 들어서자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답게 빛난다. 그곳에 놓인 헌금함에 놓인 봉투에 아무것도 기재하지 않고 약간의 헌금을 담아 넣었다. 성당에서 영세를 받았지만 냉담자의 상태이어서 마음속으로 성호를 긋고 그저 ‘감사합니다’ 한 마디만 기도하고 돌아섰다. 무릎을 꿇고 그동안의 잘못을 참회하고도 싶은 분위기였으나 그러하지 못했다. 아직도 다 씻어내지 못한 오만함과 의혹이 남아서일까? 

전동 성당에서 가을 하늘

    성당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뒤편에는 성모 마리아 상이 입구 쪽에는 예수님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을 하늘과 구름을 배경으로 한, 흰색 석상들이 잘 어울린다. 오 교수와 나는 연이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성당 옆에 붉은색 꽃을 풍성히 달고 있는 배롱나무도 한 컷 담았다. 먼지 없고 티끌도 보이지 않는 짙푸른 하늘에 마치 수채화 붓으로 그린 듯 가녀린 흰 구름, ‘가을이 왔다.’ 나는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한옥과 돌담과 능소화, 배롱나무… 한복을 입은 젊은 선남선녀, 이국인들… 산책하다 만나는 사물들, 나무들, 사람들까지 아름다운 날이다. 나는 마음속에 하늘 한 자락, 구름 한 포기를 옮겨 놓는다. 그리고 글 속에 가을의 선선한 바람 한 자락을 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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