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안 이야기
대학평가로 하루 종일 정신이 없던 목요일이었다. 저녁 열 시쯤 일이 대충 마무리된 후 연구실로 돌아오니 휴대폰 메일이 와 있었다.
“안녕 엄마, 난 이제 퇴근하고 피곤한 몸 이끌고 회의하러 이동한다.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현명하고 멋진 여자 우리 엄마, 엄마 때문에 내가 여자를 만나기가 참 힘들어 그만큼 항상 존경하고 표현을 많이 하려고 해도 부족할 만큼 사랑해. 참 부족한 면이 많고 서 씨로 태어나서 정나미 없는 성격으로 살려니 항상 미안한데 그래도 남 앞에서 항상 자랑스러운 엄마 아들 되도록 노력할 게. 두리안 어제 보냈는데 배송이 좀 늦어지나 보네 맛도 없는 두리안 왜 먹는지 모르겠지만 내 사랑이 듬뿍 들어있으니 맛있게 먹어. 엄마 사랑해 알라뷰 아이시떼루... 아들이”
메일 첫 부분에 적힌 ‘안녕 엄마’라는 말을 보고는 누군가 잘못 보낸 메일이겠지 하면서 힐끗 보다 두리안이란 단어에서 문득 알게 되었다. 아! 오늘이 아내의 생일이란 것을... 몇 년 전에도 챙겨주지 못해, 미안했었는데 금년에도 또...... 나의 무뚝뚝함과 무관심에 아내도 이제는 적응이 되었는지. 아들이 보내준 메일을 내게 또 전달한 것으로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해인가 혼자만의 태국과 중국 여행에서 돌아와, 미안함을 대신하려는 의도로 두리안을 구입한 적이 있다. 한국사람 열이 면 아홉이 적응하지 못하는 냄새나는 과일 두리안을 아내는 맛있게 먹었다. 사실 과일의 황제라 하기도 하고 미식가들이 최고로 뽑는 두리안이지만 그 맛은 참 요상하다. 단맛, 담백한 맛, 약간의 신맛, 그리고 쾌쾌하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한 향기... 삭힌 홍어와 비슷한 냄새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외면한다. 그런데 맛있다고 달려드는 아내의 식성도 참 이상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태국 가족여행할 때에도 꼭 챙겨 먹던 과일이다. 마치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 옆에서 사진을 찍는 듯, 두리안 나무 앞에서 포즈를 취하던 아내다.
이틀 후 택배로 한 통의 두리안이 배달되어왔다. 그런데 아뿔싸, 아직 덜 익은 것이다. 작년에는 너무 익어 열매와 열매 틈새가 벌어진 것이더니 이번 것은 향기도 덜하고 당도도 훨씬 떨어지는 놈이다. 그래도 어쩌랴! 아들 성의를 보아서 그냥 먹으라고 권유할 수밖에는... 가시돌기가 가득 나있는 설익은 두리안을 쪼개느라 팔이 다 아프다. 아내는 고작 생일 선물이 두리안 한 통이냐고 툴툴대며 과실들을 냉장고에 넣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강남구의 모 IT업체에서 병역특례를 하는 큰 아들놈은 월급도 꽤 탄다.
큰 아이가 보낸 두리안이 배달된 그다음 날 택배가 왔다. 그런데 택배의 내용이 또 두리안이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혹 아내가 큰 놈에게 두리안이 안 익었다고 불만을 토로한 것은 아닌가? 그래서 다시 보낸 것은 아닐까? 돋보기를 찾아 쓰고는 발신자를 확인하는 순간...... 어! 군부대에서 보낸 것이네! 발신자 주소에 “상병 서 X”이라고 적혀있었다. 입대한 지 일 년, 상병을 달고 있는 둘째 아이가 보낸 것이다.
아내의 얼굴에 잠시 안쓰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감동해서 어쩔 줄 모르는 아내 앞에서 상자를 열자 진공 포장되어 있는 두리안 열매가 오묘한 향기를 풍기며 가득 들어있는 것이다. 둘째 놈은 전화통화에서 “껍질을 까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열매만 있는 것을 인터넷에서 신청했다”라고 말했다. 공부는 큰 아이보다 떨어지지만 마음 씀씀이는 늘 세심하고 착한 아이다.
아내는 내게 “둘째는 결혼하고도 우리와 함께 살아야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둘째의 마음이 선하고 세심하니 평생 효도를 받고 싶은 욕심 이리라. 나는 퉁명하게 “그런 생각 미리 하지 마라. 아이에게 짐이 될 테니까.”라며 응수했다. 생일날 선물하나 챙겨주지 못한 남편의 불편한 심기를 역으로 드러낸 것이다.
요즈음 우리 집 거실에는 두리안의 향기가 가득하다. 저녁마다 아내가 후식으로 먹기 때문이다. 향기롭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한 그 향기, 어쩌면 우리 사는 요즘 세상의 냄새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