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꽃밭
내가 사는 103동 옆에 꽃들의 잔치가 열렸습니다.
푸른 날개를 펴 든 붉은 입술의 칸나, 콩자반 모양의 씨앗을 소담스럽게 담고 있는 듯한 흰색 분홍색의 분꽃들, 씨앗들을 한 입 가득 물고 선 봉숭아, 술 취한 듯 바람에 흔들리는 대궁까지 붉은 맨드라미, 꿀물을 가득 물고 있는 샐비어, 금잔화, 과꽃 그리고 내가 이름을 모르는 것들까지... 한바탕 꽃들이 피어납니다.
나무들만 몇 그루 우두커니 서 있던 아파트 공터에 할머니는 꽃들을 심고 매일 물을 주었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꽃들은 서로의 모양과 색깔을 뽐내듯 피어나고 또 집니다.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꽃들이 황량한 아파트 한 구석에서 잔치를 엽니다. 즐겁고 아름다운 꽃들의 축제입니다.
나는 할머니를 잘 모릅니다. 다만 우리 동에 홀로 사시는 분이시고 곰같이 생긴 다 큰 손자 하나가 있다는 것을 알 뿐입니다. 수년 전인가, 그 손자가 내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모 학과에 입학하였다고 인사시키러 왔었습니다. 총명하거나 성실해 보이지 않았던 그 손자는 한 학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자퇴를 하였고 지금은 그냥 빈둥거리며 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층에 살고 있는 나는 아직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아파트 복도나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면 남들에게 피해가 될까 봐, 남들이 백안시하는 눈으로 처다 보더라도 할머니의 꽃밭 근처의 잣나무 그늘 아래에서 담배를 피웁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인근 숲 비탈에 선 갈참나무, 아카시아 나무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먼 산의 구름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즈음엔 꽃들을 하나 둘 유심히 봅니다. 깔깔거리며 피어난 앙증스러운 채송화에서부터 툭 건드리면 까만 씨앗을 훅 뱉어낼 것만 같은 봉숭아, 땅을 향해 나팔을 펼쳐 든 에인절 트럼펫 등을…
할머니는 해가 뜨기 전에 물 양동이를 가져다 골고루 물을 줍니다. 매번 꽃밭을 습격하는 잡초들도 뽑아주고, 잘 자라라고 김을 매주기도 합니다. 언젠가 늦은 오후 석양의 햇살이 나직하게 비추던 때, 할머니는 나에게 말을 하셨습니다. “이때가 꽃이 제일 아름답다.”라고 그러나 나는 할머니의 말에 수긍할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침 햇살을 받을 때 수목들의 생동감이 최고조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전, 서쪽으로 베란다가 놓인 아파트에서 살 적에는 꽃과 나무들이 잘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동향의 베란다가 설치된 지금의 아파트에서는 화초들이 잘 자라고 꽃들도 잘 피어납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이야기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루의 시간을 사람의 삶과 유추해보면 아침은 탄생이고 석양 무렵은 아마 할머니 연배쯤일 테지요. 생기 넘치는 아침 햇살이 아닌 저물녘의 햇빛을 받으며 피어있는 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꽃들과 할머니와의 교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할머니는 늘 꽃들에게 말을 건넵니다. 그리고 꽃들도 할머니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건넬 것이라 생각합니다. 할머니는 늘 물을 주면서 “예쁘구나.”, “잘 자라라.”등등의 칭찬과 격려의 말들을 틀림없이 해주셨을 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또한 103동 옆 이 작은 화단은 어쩌면 할머니의 유일한 즐거움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해봅니다. 그리고 꽃들에게서 할머니는 손자, 손녀의 재잘거림과 재롱을 발견하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여러 할머니들은 참 부지런합니다. 자투리땅이라도 나면 상추, 고추, 무, 배추, 아욱 등을 열심히도 가꿉니다. 아침 일찍 김도 매고 지지대도 설치하고 남 들어가지 못하도록 울타리도 만듭니다. 작은 밭에서 일하시는 허리가 굽은 할머님들이 어떨 때는 안타까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목청이 걸걸한 이 할머니만큼은 그런데는 관심이 없으신 듯합니다. 남이 버린 화초나 꽃들은 모두 가져다 이곳에 심지만 채소는 한 포기도 없습니다. 꽃들이 피어날 때마다 늘 지켜보시는 할머니는 어쩌면 그곳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극락이나 천국 같은 세계를 보시는지도 모릅니다. 남들이 버린 화초 화분을 나무에 엮어 달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시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할머니가 심었던 꽃들이 다시 씨앗을 뿌리고, 지난해의 구근에서 잎과 꽃을 피워 올리던 어느 봄날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새로 선출되고 부임한 동 대표와 관리소장이 가끔 꽃밭에 거름과 물을 주는 것만 볼 수 있었다. 평소 안면이 있던 관리소장에게 나는 할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그는 자신도 자세히는 모른다고 말문을 연 뒤 ‘작년 겨울엔가 이사를 하셨다.’고 했다.
할머니가 황폐했던 아파트의 한구석에 꽃밭을 가꾼 뒤에 아파트의 살림을 이끌어가는 동 대표들과 관리소 직원들은 동 곳곳의 유휴지마다 꽃밭을 만들었다. 관리소 옆에 묘목을 기를 작은 비닐하우스도 만들고 갖가지 꽃과 야생화 묘목을 아파트 공터 이곳저곳에 심었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화초들이 곳곳에서 자라나 꽃을 피워댔고 103동 경비 아저씨는 어디에서 구해왔는지 여러 개의 돌들도 수석처럼 세워놓았다. 그리고 몇 달 뒤에는 도청인가 시청에선가 공모하는 “아름다운 아파트 만들기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꽤 많은 지원금도 받았다고 플래카드를 걸어놓았다.
할머니가 우리 동을 떠나가신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그러나 할머니가 처음 보잘것없는 아파트 옆의 잡풀 밭에 꽃씨를 뿌리고 묘목을 심은 뒤 꽃들은 연이어 피어나 10월에 접어든 지금도 금잔화, 코스모스는 물론이고 바이올렛, 맥문동의 보랏빛 꽃들까지 다투어 피어난다. 꽃밭 가꾸기에 탄력을 받은 동대표들은 작년 겨울인가 아파트 남쪽 옹벽 아래에 포도나무들을 옮겨 심었다. 그리고 나무들 중 여럿은 잘 익은 포도송이를 매달고 있다.
할머니가 심었던 한 포기의 한 포기의 꽃들이 작은 꽃밭을 열고 그 꽃밭이 아파트 전체로 번져가 늘 꽃을 볼 수 있음은 행복한 일이다. 할머니가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아무런 대가도 없이 열어놓았던 꽃밭이 봄이 되면 늘 그곳에서 다시 열린다. 나는 꽃을 보며, 살아계신다면 팔순을 넘기셨을 시원스러운 성격의 그 할머니를 기억한다. 그리고 할머니가 새로 이사하신 그곳에도 또 다른 꽃밭을 가꾸어놓았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