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잠행潛行
히말라야 여행기 2권, 중국 여행기 1권, 한국 작가의 신작 소설 3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3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 2권 등등… 지난주 금요일 대학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최근 구입한 책들이다.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을 지나 월요일까지 사흘 내내 비가 퍼부었다. 학교가 소재한 읍내가 침수되고 대학 정문으로 이어진 지하로는 황토물이 가득하여 월요일까지 금붕어처럼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장대비가 거세게 오전 내내 내리고 오후에는 잠시 순해진 듯하다가 밤이 되면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며칠씩 지속하는 빗속에서 할 일은 별로 없다. 혼자 방에서 텔레비전의 채널을 여기저기 돌려본다.
주말인데도 지상파, 종편의 채널들은 출연자끼리 떠들고 웃고 즐기는 프로그램이 다수다. 케이블은 관심 없는 드라마가 재탕 삼탕 되고 있다. 비 때문에 야구 중계도 없다. 그나마 간헐적으로 재방송되는 여행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잠시 눈길을 주다가 뉴스로 다시 채널을 돌린다.
둑이 터져버린 하천과 저수지, 산사태로 무참하게 쓸려간 집과 농장, 진흙만 가득한 농경지, 침수된 도로와 자동차들의 화면이 이어지고 문자메시지로 호우경보와 주의보를 연달아 발령하고 있다. 국내의 사건 사고가 끝나자 중국 싼샤댐의 위기설, 러시아와 유럽의 불볕더위, 호주의 한파, 일본의 화산 분출, 중국 윈난의 메뚜기 떼까지 난리다. 가뜩이나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뒤숭숭한데…
월요일 아침. “학교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출근하더라도 꼭 해야 할 일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그럼 집도 학교도 아닌, 갈만한 제3의 곳도 딱히 없다. 게다가 호우경보가 발령 중이다.
“웬만하면 집에 있어요!” 아내가 출근하면서 한 말이다. 비가 오지 않는다면 연구실에서 책이나 읽자고 슬슬 준비하는데 비가 쏟아진다. 아니 그냥 퍼붓는다. 어둑해진 주위, 마치 하늘이 화가 잔뜩 난 듯 고함을 치는 듯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장대비가 계속된다.
대학 정문 앞 침수되었던 지하로는 뚫려 있지만, 연구실이 자리한 건물 뒤의 주차장이 난리가 났다. 학교 뒷산과 연해 있는 언덕에서 쓸려 내려온 토사가 가득하다. 도로 옆 맨홀에서는 붉은 황토물이 역류해 낮은 지대를 가득 메우고 있다. 열흘이 넘게 수시로 쏟아지는 장대비, 서서히 다가오는 태풍은 나의 발목을 완강히 잡아매고 있다.
8월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 여름 방학. 불가능한 해외여행은 접어두고 그저 홀로 남해나 서해의 섬으로나마 다녀오겠다는 계획을 장맛비가 지워버리고 있다. 폭우와 산사태로 엉망이 되어버린 먼 길을 운전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우산을 들고 여기저기 다니고 싶은 의욕도 없다. 그렇다고 저녁마다 빈대떡 안주에 막걸리만을 마시며 지낼 수도 없지 않은가?
‘몸이 갈 수 없다면 마음만이라도 떠나자’는 생각으로 히말라야 여행기를 읽는다. 이미 여러 번 히말라야와 관련된 책을 읽을 적이 있다. 여행, 성자, 도보여행 등과 관련된 것이었고 소설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대부분의 서적은 히말라야의 산자락에서의 체험기들이다. 저자들은 갖은 고생 끝에 대면하는 히말라야 설산 앞에서의 눈물겨운 감동을 이야기한다.
30대, 대학 강사 시절에 입버릇처럼 한 말이 있다. “히말라야로 떠나고 싶다.”가 그것이다.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간접화법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 이후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히말라야 설산 앞에서 울기”가 되었다. 물론 그 울음은 감동의 눈물이지만.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서적도 뒤적이고, 몇 년 전에는 히말라야 끝자락인 중국 리장의 옥룡설산의 해발 4,680m의 전망대까지 올라서 고산증세에 대한 여부를 잠깐 테스트해 본 적도 있다. 사실 올여름에는 코로나 19만 없었다면 해발 3,000m에 있는 중국 샹그릴라에서 전지훈련쯤으로 열흘 정도를 지내면서 실현 가능성 유무를 보다 구체화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계획도 무산되어버렸다. 더 늦어지면 나의 건강과 체력이 따라줄지 의구심이 든다. 몇 년이 지나면 도보여행은 포기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그때가 되면 티베트나 네팔 유적 여행이라도 가능할까?
안나푸르나 도보여행에 대한 책을 읽다가, 국내 작가의 소설 한 권을 읽어치우고 다시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IQ84』를 읽는다. 198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내가 군을 다녀온 후 대학을 졸업한 해다. 50년대 초반에 출생하여 학생운동이 한참이던 70년대에 대학을 다닌 주인공 남녀의 사랑이 스토리의 근간이지만, 어린 시절의 소외와 상처, 성장한 이후의 고독과 방황, 예기치 못한 비현실적인 사건들과의 조우, 20년 만의 그 둘의 만남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루키의 경우 그의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노르웨이의 숲』에서부터 『해변의 카프카』,『어둠의 저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그리고 얼마 전의 『기사단장 죽이기』와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지만 『IQ84』는 건너뛰었었다. 그런데 마침 대학 도서관에서 이 소설 세 권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키의 소설은 국내에서는 가장 잘 알려진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에서부터 거의 전 작품을 일관하는 모티프 혹은 소재가 있다. 그중 하나가 음악이다. 클래식에서부터 재즈, 팝에 이르기까지 소설 속에서 세세하게 서술된다. 『IQ84』에서도 체코의 작곡가인 레오시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가 플롯에까지 관여하고 있다. 그의 다른 작품이 그렇듯 소설에는 음악 외에도 패션, 음식, 자동차에 대한 서술도 구체적이다. 등장인물이 입고 있는(대체로 명품) 의상의 종류, 브랜드, 색깔, 모자나 신발까지 상세하게 묘사되며 이는 자동차, 칵테일, 서양 음식, 섹스에 대한 사항도 마찬가지다.
등장인물은 대체로 어릴 적 콤플렉스나 트라우마를 지닌, 즉 상처를 안고 있으며 직간접적으로 자살 혹은 타살이란 극단적인 사건을 겪기도 하며 성장한다. 『IQ84』에서도 이러한 성향은 이어지고 있고 『기사단장 죽이기』에서와 유사한 모티프로 ‘리틀 피플’이라 불리는 소인들이 등장한다. 현실이란 기반 위에 환상이 가미되며 현실과 다른 시공 속에서 사건이 전개되기도 한다. 일본인이면서도 서양 문학과 문화의 세례를 받은 그의 소설이 젊은 세대의 환호를 불러일으킨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교묘하게 직조된 현실과 환상이 혼재하는 플롯이 있고 미스터리 한 추리 소설적인 요소와 그만의 감성적인 문체도 있지만, 요즈음 젊은 세대가 관심이 있거나 욕망하는 것들(패션, 자동차, 음식, 음악, 섹스)이 집중적으로 묘사되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욕망의 대리 충족을 가능하게 하는 이러한 요소들이 나이 든 작가와 젊은 독자가 소통할 수 있는 코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하다 보니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은 원로 교수(노교수?)가 되었다. 자식들보다 아래 세대인 학생들과 소통하기가 쉽지 않다. 몸은 늙더라도 마음이라도 젊게 살자고 근 20년 동안 정장에 넥타이 차림은 강의실에서조차 삼가 왔지만 사고의 패러다임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젊은 세대가 흔히 이야기하는 ‘꼰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고의 경직을 면하고자 책이라도 늘 읽지만, 고집은 여전할 것이다.
하루키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거의 나와 비슷한 세대의 인물들이다. 이른바 50년대에 출생하여 70년대에 대학은 나오고 80년대의 이념적 혼란을 겪은 것이다. 그러나 그의 소설의 주인공들은 나보다는 오히려 오늘날의 젊은이들과 닮았다. 앞서 이야기한 적 있지만, 패션에 민감하고 음악과 요리와 자동차를 좋아하고 성(性)에 대하여 자유분방한 모습이 그렇다.
나의 70년대 대학 시절(‘꼰대’의 전형성을 보여주는 대목이지만) 이른바 명품 혹은 브랜드의 패션에 관심이 있던 대학생이 몇이나 될까? 음식도 질보다는 가격과 양이 우선이었고, 자동차는 상상해본 적도 없고 가끔 음악다방에서 커피를 시켜놓고 팝송이나 듣는 것도 호사였다. 여름 방학이면 해외여행이 아니라 국내 여행도 능력 있고 용감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8월이 되면 에어컨 없는 방구석에서 책을 읽는 것으로 피서 아닌 망서(忘暑)하며 지냈다.
숨이 헉헉 막히는 8월의 무더운 저녁이면, 집 근처의 만화책방에서 무협 소설 한 무더기를 빌려와 형제들 모두가 선선한 새벽이 되도록 읽은 기억이 거의 전부다. 그때 만났던 인물이 대만의 작가 와룡생이었다. 『군협지』를 필두로 『무유지』, 『비룡』 등 번역본 소설들을 읽으면서 무덥고 답답한 현실을 떠나 환상의 세계로 접어들곤 했다. 무협 소설의 신필로 불리는 김용의 소설들은 내 기억으로는 80년대에 『영웅문』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된 『사조영웅전』 이후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었기에, 70년대에는 그의 소설을 접할 수가 없었다.
얼마 전 타계한 김용이란 작가의 중국에서의 영향은 막대하다. 『사조영웅전』, 『소오강호』, 『천룡팔부』, 『녹정기』, 『화산논검』 등을 위시한 그의 소설의 거의 대다수는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사조영웅전』, 『소오강호』 등은 몇 년마다 다시 만들어져 국내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김용의 소설은 중국 무협 영화와 무협 드라마의 기반이 되었다. 그는 상상과 환상의 세계를 인간의 세상으로 이끌어 낸 것이다. 요즈음 방영되는 중국 드라마는 김용의 소설과는 달리, 과장이 심하지만 그가 없었다면 이런 드라마도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중국 드라마를 가끔 보는 것을 아이들이 이상하다고 여기지만 그 이유가 다 있다.
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가 시작된다. 코로나 19도 더욱 극성이다. 국내에 소개된 와룡생과 김용의 소설은 이미 거의 다 읽어서 서적 또는 여행 다큐멘터리에서나마 남쪽의 운남, 대리, 귀양, 소주 등에서 북쪽의 감숙성, 청해성, 서장, 천산 등으로 간접 여행을 떠난다. 숭산, 무당산, 화산, 태산, 천산산맥 등 소설 속의 무대가 되었던 곳을 화면으로나마 감개무량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내가 밤늦게까지 환상과 상상의 세계 혹은 화면 속의 중국이나 히말라야 산기슭에서 잠행할 때, 맞은편 둘째 아들 방의 불도 꺼지지 않는다. 그는 새벽이 되도록 온라인 슈팅 게임에 몰두한다. 그쪽 게임계에서는 고수(상위 1%)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