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후보는 당연 화장실. 구석구석 살폈지만 딱히 문제있는 부분은 없어보였다. 그렇다면 물이 샐 곳은 딱 하나, 싱크대다.아니나 다를까, 싱크대 밑 수도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
“하....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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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에선 물이 새고, 내 입에선 한숨이 새어나왔다. 대체 넌 나한테 무슨 원수를 졌기에 물이 새는 거니, 난 널 만진 적도 없는데! 이럴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은 역시 초록 옷이 잘 어울리는 Dr.intelligence, 네이버 지식인을 켜서 검색어를 입력했다.⠀
“자취방 수도 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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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수도가 새는데 집주인이 저보고 비용을 부담하라네요ㅠㅠㅠㅠ어떡하죠?
A: 원래 집주인 맘입니다. 저는 반지하라 장마 때 집에 비가 찬 적이 있었는데, 제 돈으로 다 수리하라고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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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했지만 역시 비관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답변들에 점점 더 걱정이 깊어지는 건, 이게 전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
‘집주인 맘대로!’는 자취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법칙 아니던가. 저번 자취방 주인은 2년 계약이 만료되어 이사 간 내게 뒤늦게 전화해선 대뜸 이런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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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학생 방 지금 에어컨이 안 돼. 수리비를 줘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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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금은 3월이고, 저는 적어도 6개월 정도는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만-
6개월 넘게 사용하지도 않은 에어컨이 나 때문에 고장 났을 리가 없으며, 설령 에어컨이 고장 났더라도 계약서 상 나는 그걸 수리할 의무가 없음을 이해시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 ⠀
이렇게 몇 번 데이다 보면 월세살이 자취생에게 집주인은 참 어려운 존재가 된다.⠀
일단 호칭부터가 고민스럽다.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 주인님?은 웃기고, 아주머니?는 너무 격식 없어 보이고...... 하지만 더 이상 물러날곳이 없다. 나는 수도를 고칠 줄 모르고, 물이 새는 수도와는 살 수 없다. 결국 며칠간 고민하다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사는 ---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며칠 전부터 싱크대 밑 수도에 누수가 있어서요. 어떻게 해야 할지 여쭤보려고 연락드렸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전화벨이 울렸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 친절한 목소리가 내 마음을 울렸다.
“어휴 불편해서 어떻게 지냈어, 지금 갈게요!”
집주인 부부께선 정말 연락드린 지 30분도 안 돼서 내 방에 도착하셨고, 물이 새는 수도를 뚝딱뚝딱 고쳐주고 가셨다. 말끔해진 수도를 보고 감사한 마음에 드린 문자엔, 더 따뜻한 답변이 돌아왔다.
이렇게 좋은 집주인을 만난 게 행운이라고 느껴지면서도, 어쩐지 서글픈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계약이 만료된 전 세입자에게 정확한 날짜에 보증금을 돌려주는 것, 풀옵션 원룸에 고장난 가전을 수리해주는 것, 모두 별도의 계약 사항이 없으면 임대인이 당연히 해 줘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선 이런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은 않는다. 대학 기숙사 건설에 극구 반대하던 ‘생계형 건물주’ 중 과연 몇이나 이렇게 당연한 임대인의 역할을 당연히 수행하고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