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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Feb 11. 2021

두 눈 질끈 감은 출근길에 만난 검은 새

너의 그 아름다운 본성이 누군가에 의해 무너지지 않길

공휴일에도 출근해야 하는 운명을 지닌 나는 설에도 출근길 버스에 올랐다. 매일 보는 풍경이 오늘따라 어찌나 더욱 지겹게 느껴지던지, 순간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이렇게 지겨워해도 되나, 이렇게 열정도 욕심도 보람도 없이 살아도 되나 싶었다. 언젠가는 새벽에 갑자기 잠이 깼는데 문득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이 갑자기 찾아왔다. 무언가 계시를 받은 듯 한 깨달음이었지만, 그 깨달음은 이내 공허한 메아리로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내겐 별다른 해답이 없었다.


이전에는 사람들을 만나며 먹고 마시고, 또 그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쇼핑을 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았더랬다. 한 달에 한번 정도 사람들을 만나고 또 쇼핑을 나가는 정도로도 충분했다. 게다가 내겐 여행이 있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즐기는 것에 큰 방점을 두는 나는 해외여행이 가장 큰 삶의 낙이었고, 국내 여행도 꽤 좋아했다. 여행을 계획하고, 여행을 가고, 또 여행을 반추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일 년이 가있었다. 이 정도면 지겨운 직장 생활도 그럭저럭 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위의 것들이 모두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 삶에 오롯이 남은 것은 먹고사는 일 그리고 가족뿐이 남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게 되었다. 누군가는 일만 남은 일상을 지겨워했고, 누군가는 일조차 사라진 일상에 버거워했다. 여기에 더해 가족이란 존재는 힘이 될 때도 있지만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많았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서로 좋은 말을 할 때보다 서로 안 좋은 말을 하는 시간이 늘기 태반이었다.


반면 일이라는 것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집중하는 계기도 되었다. 일은 내게 돈 버는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몇 년째 비슷한 업무를 반복하고 있었고 일에 보람도 크게 없었다. 하지만 그 ‘돈을 버는 수단’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항상 잊지 않고 살았다. 돈은 쉽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쉽게 느껴지겠지만, 쉽게 번만큼 쉽게 사라진다는 것은 어렸을 때 딱지치기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나는 한동안 돈이 참 없는 환경에서 자랐고 그렇기에 안정적인 수입이 주는 의미를  확실히 인지한다. 일이라는 것이 내게 주는 돈, 이 돈으로 나는 소소하지만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따박따박 들어오는 이 미약한 월급으로나마 비로소 미래의 나, 내 가족을 위한 준비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침 출근길 질끈 감은 눈을 어쩔 수 없이 다시 떠보았다. 눈을 뜨지 않고 어떻게 앞으로 나아간단 말인가.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는데 이름 모를 검은 새가 전주 위에서 사방을 살피면서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앞뒤, 좌우, 상하 모두 꼼꼼히 살피는 그 모습이 꽤나 흥미로웠다. 넌 무얼 하는데 그리 분주하니? 마치 측량을 나온 전문 기사 같기도 했다.  그 새가 내 쪽을 바라보았을 때, 새 입에 물려있는 나뭇가지가 눈에 띄었다. 집 지을 곳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너도 설 연휴 아침부터 보금자리를 마련하느라 분주하구나. 그 작은 입으로 나뭇가지들을 하나둘씩 물어 나르며 네 몸 쉬일 곳을 착실히도 만드는구나. 갑자기 이유 모를 눈물이 핑 돈다. 내 처지와 비슷한 것 같아 연민의 감정이 밀려온 것일까. 아니면 고유의 윤기 나는 검은색 깃털로 바람을 가르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네가 그저 아름다워서였을까. 너도 이 빌딩 숲에서 네 집 마련하기 쉽지 않겠다. 그래도 네가 지은 집은 부디 누군가의 욕심으로 인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의 그 아름다운 본성이 누군가에 의해 처참히 무너지지 않고 영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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