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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Jan 28. 2019

나의 수영반 이야기

#08. 진도가 조금 느려도, 따뜻한

우리 동네에 문화 체육 센터가 생기고, 수영 강습을 들은 지 어느덧 7개월이 됐다. 강습 1,2개월 차에는 물에 대한 공포증도 있었고, 자유형도 제대로 못 하는 내 자신이 답답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늘어가는 실력 덕에 근래 느껴보지 못했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제는 안 되던 호흡이 오늘은 되고, 오늘 안 되던 박자 맞추기가 내일은 자연스레 늘어있다. 내가 정말 초보이기에 가능했던 일. 작은 배움 하나, 작은 성취 하나가 소중한 것은 초보들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우리 센터는 성수기의 워터파크마냥 물 속이 항상 바글바글하다. 자유 수영이든, 강습이든 한 레인에 열 대여섯 명은 넘게 있으니 말이다. 겨울에는 좀 주려나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다. 우리 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는지 몰랐다. 이렇게 많은 사람 덕에 여유롭게 내 템포대로 수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 원치 않아도 쉬어야 하거나 계속 수영해야 한다. 하지만 덕분에 한 박자 쉬어서 사람들을 관찰할 기회가 온다. 수영계 꿈나무가 될 아이들, 언제나 파이팅 넘치는 연수반 아주머니 분들, 묵묵히 갈 길을 가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까지. 가끔은 열심히 레인을 도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함께 여기서 돌고 있다는 사실에 소속감 내지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수영장에서는 낯선 분들이 말을 많이 걸어온다. 이렇게 적으니 조금 이상하다. 다들 주로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여성분들이시다. 아무쪼록 이런 경우들이 있었다. 물기 때문에 입기 불편해진 수영복을 가지고 끙끙대고 있으니, 샤워실 뒤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수영복을 마구 올려주신다. 누가 내 옷을 입혀준 건 가히 수십년 전인 거 같은데. 처음엔 놀라고 당황스러웠는데 이내 미소가 지어진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다는 일은 고맙고 마음 따뜻한 일이니까.


한 번은 내가 접영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이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힘을 짜내서 레인을 돌고 있는데, 옆 레인 여성분께서 말을 걸어왔다.

"접영 하시는 것 같은데 같이 해요."

나는 이런 데에 익숙하지 않아 당황하며 대답했다.

"아, 저도 아직 잘 못 해서..."

"괜찮아요, 우리 다 못 해요."

대화는 멋쩍게 끝이 났고, 결국 그 분들과 함께 수영을 하지 못했다.

나는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몸이 굳는 편이라 부담스럽기도 하면서, 함께 했으면 실력도 더 늘고 재미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니뭐니해도 내 수영 시간의 꽃은 우리반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하니 엄청 친한 사이인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그래도 서로 눈 인사는 하고 오랜만에 오면 반가워하는 사이. 몇 주만에 나갔을 땐 반 사람들 모두가 나를 반겨줘 속으로 감동까지 받았었다. 다들 따뜻한 분들인데 한 가지 단점이 있다. 다들 연령대가 높다는 것. 초반 몇 개월에는 20,30대로 보이는 사람들도 몇 명 있었는데 이제 나뿐이다. 사실 나는 단점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 하고 지내다가, 얼마 전 강사님과 상담을 하다가 깨달은 것이다.

"사실 이 반이 연령대가 높아서, 진도 빼기가 쉽지 않아요. 연습량을 높이기도 힘들고요. 젊은 사람들 많은 반 가면 실력이 더 늘긴 할 거예요."


우리반에 항상 꼴찌 자리에 서계시는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함께 수영을 배운 지 7개월이 넘었는데 아직 자유형도 제대로 하지 못하시는 할아버지. 내가 1등으로 서서 레인을 돌면 다시 돌아 만나는 할아버지.


문득 우리반 얼굴들을 떠올리니 따뜻함과 감사함이 밀려온다. 진도는 조금 느려도, 잘 웃고 밝으신 분들과 함께 무언가를 배울 수 있어서. 때로는 내가 앞에서 리드하고, 때로는 내가 뒤에서 봐드릴 수 있어서. 격렬한 연습이 끝나면 항상 일렬로 서서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시간을 갖는다. 차가운 수영장 락스물에서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지는 손길을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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