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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향하는 거북이

느린 학습자가 되어

by 정인

자신을 동물에 비유해 그려보라는 연극 선생님의 말씀에 종규는 거북이를 그렸다. 쌍둥이 형에 비해 몸이 약했던 종규는 수업 중에도 따로 쉬어야 할 때가 있었고, 어릴 때부터 형에게 의지해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과제로 내 준 활동지는 아주 천천히 채워나갔다. 금세 해치우고 사라지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종규는 쉬는 시간을 다 할애했다. 느리고 뒤처진 동물을 상상해 본 결과는 거북이었다.


삶의 변곡점이 어떤 계기로 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종규는 어느 순간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깨달았다. 그리고는 한 해 동안 진행하는 프로젝트 활동으로 혼자 하는 여행을 기획했다. 혼자 전철 타고 버스 타고 몇 시간 돌아다녀보기, 그다음에는 시외버스 타고 더 멀리 다녀오기, 다른 도시에 있는 친구 집에서 하루 묵고 오기, 그리고 마지막에는 비행기를 타고 혼자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는 프로젝트였다.


나는 이 프로젝트의 지도교사를 맡았다. 들뜬 목소리로 종규를 독려하며 함께 여행의 순서를 의논하고 이런저런 도움도 주었다. ‘하면 되지!’를 입에 달고 살았던 나는 마음속으로 ‘어렵지 않은 일이니 별일 없겠지’ 하고 생각했다. 안 해봐서 그렇지 하면 다 한다, 해보면 별 것 아닌 것을 알게 되리니, 그런 마음이었다. ‘혼자 여행도 가고 얼마나 재밌는 프로젝트야!’ 이런 말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오만방자한 망발이었다.


하나하나 새로 배우는 과정이 종규에게는 쉽지 않아 보였다. 형을 따라다니는 것이 익숙했던 터라 낯선 곳에서 혼자가 되자 내려야 할 역을 한참 지나치고는 크게 당황했다. 휴대폰 배터리가 다 돼서 연락이 되지 않아 가족들을 걱정시키기도 하고, 이동하던 중에 몸이 안 좋아지면서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남들에게는 일상적이고 별 것 아닌 일들이 종규에게는 큰 도전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바다로 향하는 거북이’ 이야기로 만들어 글로 썼다. 드넓은 바다로 신나게 뛰어드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좌절과 두려움이 섞인, 하지만 그 안에 조그마한 성취감들이 알알이 박혀 있는 그런 이야기였다. 한발 한발 물가로 기어가는 거북이였던 것이다. 아마도 그 바다는 너무 넓어서 한 발의 의미가 그리 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 내딛는 일에 대해 공들여 써나갔다.


단상에 올라 발표를 하는 종규를 보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청소 시간에는 모두 강당에 모이는데 웬일인지 아무도 없다. 내가 공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게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 영어가 안 되는 학생 몇 명과 함께 서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어리바리 바라보고 있다. 예전에는 이호르와 나만 둘이서 청소를 하고 있다가 뒤늦게 모임에 간 적도 있다. 당시에도 다들 보이지 않아서 어리둥절 있는데, 뒤늦게 피어스가 말해줘서 알았다. 고마운 녀석.


“뭐 별 수 있냐. 어쩔 수 없지. 그냥 다른 학생들 하는 거 잘 보고 따라다녀야지 뭐.”

오래간만에 통화한 아빠가 쿨하게 말씀하신다. 언어는 잘 통하냐는 질문에 한 70% 정도만 알아듣는 것 같고, 그마저도 어떨 때는 전혀 못 알아듣기도 한다고 답했더니 하신 말씀이었다. 맞다. 일단 어떤 말이든 완벽하게 이해를 못 하고 그냥 대충 알아듣는다. 눈치껏 짐작해 판단하는 것이다. 눈치는 엄청 발달하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뭘 하는지, 어떤 표정인지, 어떤 기분인지 잘 알아차리지 않으면 혼자 다른 세상에 있게 된다.


못 알아듣고 뒷북치는 일들이 잦다. 아주 사소한 것도 물어보고 또 물어본다. 물어보면 뭐 하나, 돌아오는 답을 이해를 못 하는데. 얼굴 표정으로 ‘응?’을 지어 보이면 단어 하나하나 천천히 말해주는 친절한 친구들이 있기는 하다. 그제야 알아들었다..... 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고!! 그런 일들이 잦다. 그나마 영어가 조금씩 익숙해지나 했더니만 크리스마스가 지난 뒤로는 공지가 모두 노르웨이어로 바뀌면서 못 알아듣는 것이 더 많아졌다.


그룹으로 회의를 할 때가 가장 난감하다. 저들끼리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의견을 주고받는 동안 멍하니 앉아있다. 그러다 다른 애들이 결정한 일을 그대로 따른다. 잠자코 있다가 그냥 하라는 대로 한다. 적극적이고 리더십이 있던 내 모습은 먼 고릿적 이야기. 일단 내용을 전달받는 것부터가 일이다. 그나마도 정확하게 이해를 못 하면, 행동이 굼뜨고 생뚱맞은 행동을 하고 있게 된다. 입력과 다른 출력... 어색한 미소는 덤이다.


수업 중에 선생님은 나를 위해 한두 번씩 더 반복해 설명해 주신다. 또박또박 느리게. ‘이해했어?’하고 묻는 것을 잊지 않는다. 실습을 할 때는 전체 설명을 한 뒤, 나에게 다가와 한 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 손짓과 발짓이 섞인 열정적인 안내, 친절하고 따뜻한 미소. 내가 교사 일을 하며 소위 ‘느린 학습자’라고 불리는 학생들을 위해 했던 일들이다. 나는 선생님의 노고를 알고 있는 학생이므로, 이해한 것을 확인시켜 드림으로써 선생님이 답답한 마음이 들지 않게끔 배려한다.


나는 느린 학습자가 되었다.

느림과 빠름의 경계는 어디일까. 어쨌든 이곳에서 나는 느림의 영역에 존재하고 있음을 자각 중이다.


평소에 말을 너무 빠르게 해서 의식적으로 천천히 하는 연습을 하던 나였다. 말을 삼키기보다는 생각 없이 말하고 나서 후회하는 일이 많았다. 이곳에서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말로 옮기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대화 중에 끼어들기 같은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하고 싶은 말 그냥 해도 돼. 그게 아니면 다시 고쳐서 말하면 되지 뭐.”

말을 꺼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학생에게 내가 했던 말이다. 늘 조용히 앉아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만 하는 학생이었다. 뭘 물어보면 ‘아....’ 하고는 대답이 나오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답답한 마음에 어떤 것이 제일 걱정이냐 물으니 생각하느라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이 대답도 한참이 걸려 나왔다). 나는 그냥 툭 말해보는 연습을 해보라고 했더랬다.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일단 말을 구성하는 일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는 생각이 든다. 나불나불 떠들어댔던 내 주둥이를 때려주고 싶다.


적극성은 나의 주요 강점 중 하나였다. 하지만 괜히 나서다 온갖 일을 떠맡을 때도 많아서 ‘나대지’ 말고 자중하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런 내가 이곳에서는 말도 느릿, 행동도 느릿. 다른 학생들의 의견에 뒤늦게 따르는 일이 다반사다. 어느 날인가 아이벤이 ‘의견 없이 가만히 있는 학생들을 보면 가끔 너무 짜증 난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아니 내가 가만히 있다고 생각도 없는 줄 아냐?!’ 하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 말을 할 줄 모른다는 게 함정. 느리기만 하면 다행인데, 때때로 ‘틀린’ 행동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면 그렇게 절망스러울 수가 없다.


느린 학습자의 절망은 의도치 않은 곳에서 증폭되곤 했다. 삼탈레 그룹(samtale groupe. 8명 정도 그룹 지어 선생님 집에 가서 대화를 나누는 활동) 시간에는 미국 학생들의 속사포 같은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다 내 순서가 되어 한 두 마디 느리게 시작해 본다. 그런데 갑자기 저들끼리 눈을 마주치다가 킥킥 웃는 것이 아닌가. 당황해서 이유를 물으니 엄청 사과하면서 나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냥 저들끼리 눈이 마주쳤는데 표정이 너무 웃겨 웃음이 났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낙엽이 굴러도 웃는 시기인 건가. 하지만, 이미 마음이 상해버렸다. 작은 찡그림, 얼핏 보이는 웃음 같은 것에 상처를 받곤 한다. 여기에 ‘나를 무시하는구나’ 같은 자기 공격까지 더해지면 절망이 나를 바닥으로 잡아끌게 된다.




“한국에 있었으면 절대 배울 수 없는 걸 배우고 있네.”

엄마는 교과서에 나올 듯한 말을 해주었다. 말 잘 듣고 모범생으로 지내며 남들보다 빠릿빠릿 ‘잘 해내던’ 내가 정작 배우지 못한 것. 쉴 새 없이 말하는 동안 듣지 못했던 것. 정신없이 달리는 동안 보지 못했던 것. 그런 것들을 지금 여기서 새로 접하며 배우고 있다.


교육 관련 책에서 문장으로 접했던 학생들의 모습을 교실에서 실제 마주했을 때의 그 난감함을 기억하고 있다. 내가 ‘이해해야 할’ 학생들의 모습은 지금 내 이야기가 되어 실제 상황으로 펼쳐지고 있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당사자가 되니 세상이 달리 보인다고 해야 할까. 어쩔 수 없이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이 곧 내 세상인 것이다.


내가 학생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준답시고 별 것 아니라고 했던 것들이, 사실은 꽤나 별 것들이었다. 이제는 그 용기 북돋는 일을 나 자신에게 해야 하는데, 그저 말을 던진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다만, 자책하고 닦달하는 것이 자신을 얼마나 괴롭히는 일인지는 매 순간 깨달아가고 있다. 그야말로 속도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좌절하면서 못 알아들었다면, 지금은 좌절하지 않으면서 여전히 못 알아듣는 정도?”

생활에 많이 적응했냐는 질문을 듣고 웃으며 대답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거의 일 년 가까이 걸린 것 같다. 그동안 언어실력이 크게 향상되었는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은 것 같고, 내 모습이 크게 달라졌는가 하면 딱히 그렇지는 않지만, 그저 내 모습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은 조금씩 편안해졌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내가 스쳐 지나갔던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조금 더 너그러워지기 위한 시간이었다. 다른 이들에게도 나에게도.


문득, 종규의 글이 생각났다. 오랫동안 묵혀둔 폴더를 오래간만에 뒤져보았다. ‘바다로 향하는 거북이’는 실수가 많고 느린 자신을 길게 묘사해 놓았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남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걱정하고 눈치를 많이 보게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바다를 향해 조금씩 움직이는 바다거북이처럼 종규는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을 것이다. 그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며 마치 내 이야기인 듯 공감이 간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종규의 마음에 닿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시절의 종규가 지금의 나에게 말한다.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은 없고 그저 남과 비교하고 있는 내가 뿐이라고. 자기를 응원하며 자기 속도로 가는 거라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바다거북이가 지금의 나에게 지도교사가 되어있다.





“나는 많이 안 해본 탓에 그만큼 남들보다 속도도 느리고 실수도 많다. 하지만 그래도 항상 열정적으로 스스로 하려고 노력해 왔다. 누구나 자신의 속도가 있다. 남들보다 뒤처지기 싫어 억지로 속도를 높이려고 하는 것은 자신을 해치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나는 잘 못한다’라고 하기보다는 ‘나는 할 수 있다’라고, ‘나는 내 속도대로 가면 된다’라고 생각하면서 나 자신을 더 응원하고 사랑하는 내가 되고자 한다.” - 꽃피는학교 고등과정 김종규


바다로 향하는 거북이.png


덧)

동의를 얻어 종규의 글과 그림을 함께 싣습니다.

오래간만에 종규와 통화하며 공감을 나누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

우리는 모두 성장하는 중입니다.






대안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뜬금없는 도전으로 노르웨이 폴케호이스콜레의 학생으로 지내다 왔습니다. 그냥 기록하고 싶어서 일기 쓰듯 남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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