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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Aug 31. 2024

노르웨이 할머니가 가르쳐주는 하이킹

강인함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힘


참 나이스하지 않니? 호호호


폴케호이스콜레마다 특징이 있는 것 같은데, 이 학교는 북극에 처음 발을 들인 정신을 이어가는 듯 아웃도어 활동 교육과정이 메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베이스캠프', '익스플로러' 등등 이름만 들어도 모험과 탐험이 넘쳐흐르는 메인클래스들이 있다. 이런 학교에서 내가 선택한 메인클래스는 매우 정적인 '크리에이티브'다. 다른 클래스가 아웃도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면 우리는 드로잉, 공예, 옷짓기, 우드카빙이나 목공, 도예 그런 것들을 주로 한다. 학급 모임 시간에 갔더니 아니다 다를까 아주 얌전하고 조용한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영어가 잘 안 되는 친구들이 모여 어쩔 수 없이 얌전한 상태들이긴 하다.)


아무튼, 다른 반이 산더미 같은 짐을 싸서 버스를 타고 출발할 때, 우리는 조용해진 학교에서 호젓하고 평화롭게 웃으며 밥을 먹었다. 지난주 전교생이 함께 하이킹을 갔을 때 노르웨이의 하이킹은 우리가 생각하는 거랑 차원이 다르다는 걸 이미 깨달았으므로(진짜 힘들었다), 크리에이티브를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크리에이티브 클래스 담당인 마리아 샘은 얼굴의 주름이 평화롭게 지어지는 사람이라고 묘사할 수 있을 것 같다. 늘 포근해 보이는 스웨터를 입고 나를 비롯해 영어가 잘 안 되는 우크라이나 학생들을 위해 아주 천천히 이야기를 해준다. 하나를 이야기 하면 항상 '알유 오케?'를 해서 이해했는지 확인하곤 한다. 나이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 학교에서 23년을 일했다고 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이 학교를 나왔으니 대대손손 이 마을 토박이로 살며 당신도 남은 여생을 이 학교에서 보내고 있는 셈이다. 학교에 젊은 교사가 있어야 하는데 늙은이가 아직 있다며, 젊은이들의 활기를 따라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 그런 분이 지금 우리를 끌고 산으로 바다로 다니고 있다. 하...




다른 학급의 버스가 떠나고 난 뒤, 마리아 샘이 우리 반을 불러 모았다. 다른 반은 멀리 가지만 우리는 가까운 곳에서 잠시 재밌게 보내는 짧은 여행을 할 거라고 했다. 학교 앞에서 카누를 타고 출발하면 인근의 섬에 금방 도착한다고 한다. 핫도그도 만들어먹고 재미있을 거라고 하며 그 특유의 평화로운 주름으로 미소 지었다. 그리고 가까운 산에 가면 오두막이 있는데, 거기서 하루 자고 내려올 거라고 했다. 경치가 정말 좋아서 아주 '나이스'한 곳이라고 했다. 말하면서 본인이 기대에 들떠 있는 것 같았다.


가볍게 떠나는 소풍 같은 것을 상상하고 있는 나에게 마리아 샘이 배낭이 있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한 50리터쯤은 되어 보이는 배낭을 빌려주었다. 그리고 한겨울 혹한기 특훈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엄청난 크기의 침낭도 던져주었다. 감이 좋지 않았다.


온갖 식재료와 장작을 나눠지고 카누를 타러 갔다. '카누'라고 했을 때 물 위에서 평화롭게 노를 저으며 떠 있는 것을 머릿속에 그렸었지만, 현실은 엄청 무거운 카누를 이고 물가로 끌고 가는 극기훈련부터가 시작이었다. 마리아 샘의 진두지휘에 따라 짐을 싣고 어찌어찌 출발했다. 물살은 우리가 가려는 방향과 반대로 흘렀다. 뷔라와 내가 노를 열심히 저으면 저을수록 사람들과 점점 멀어졌다. 그때 마리아 샘이 저 멀리서 군대 사령관 마냥 외쳤다. 컴온! 포워드-!!! 백워드-!!!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을 느꼈지만 배는 꿈쩍도 안 했다. 그러자 마리아 샘이 바람에 머리칼을 휘날리며 노를 저어 우리 쪽으로 왔다. 노르웨이 할머니의 저력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었다. 안심이 되기도 하면서 놀랍기도 한 장면이었다.


가려고 했던 섬에는 결국 가지 못했다. 가까운 물가에 정박해 이번에는 장작으로 불 피우기 시작. 주변의 돌덩이를 모아 바람막이를 세우고, 장작을 칼로 갈아 불쏘시개를 만들어 불을 피웠다. 다른 학생들은 주변의 나뭇가지를 잘라 소시지를 꽂을 긴 나무꼬지를 만들고 있었다. 마리아샘은 역할을 나눠주며 하나하나 몸소 보여주었다. 바람막이가 없어? 돌 주워와. 마트에 꼬지가 없냐? 그럼 만들어. 이런 식이다. 어디서 구하는 건지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험상궂게 생긴 칼을 잔뜩 준비해 와서는 하나씩 나눠주었다.


이끼가 무성한 바위에 앉아 엉덩이를 다 적시며 소시지를 구워 핫도그를 만들어먹었다. 그리고 다시 영차영차 카누를 저어 돌아왔다. 땀을 뻘뻘 흘리며 카누를 들어 옮기고 물이 빠지도록 뒤집어 놓는 것까지 해야 마무리. 핫도그는 이미 소화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여기서 다시 해맑게 '알 유 오케?' 하며 미소 짓는 마리아샘.


잠시 쉬었다가 배낭에 다시 새로운 짐을 싸고 이번에는 산으로 출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후드득 왔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개는 것이 노르웨이 날씨이지만, 장맛비처럼 내리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다시 특훈이 시작된 것이다. 다들 고어텍스 쟈켓으로 무장하고 배낭의 허리끈을 질끈 묶고 출발했다. 몇 걸음 걷자마자 안경에 물방울이 한가득 붙어 앞이 안 보이고, 바지며 신발이며 방수의 의미는 사라졌다. 질퍽대는 산을 오르면서 헉헉대는데, 앞장서 있는 마리아샘이 또 온화한 목소리로 '알 유 오케?' 하신다.


여기 오기 전에 학생들에게 지리산 종주를 제안했던 것이 떠올랐다. 몇몇 적극적인 학생들이 잔뜩 기대하며 동참하겠다고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성사되지 못하고 나는 이곳에 오게 되었다. 그때 아이들한테 '엄청 고생하는데 재밌어' 하며 깔깔 웃으며 이야기했었던 것이 생각났다. 여름 지리산은 늘 비와 함께였다. 아웃도어 제품들도 마땅치 않았던 때는 비닐로 된 비옷을 입고 올랐다. 몇 시간도 안되어 비닐옷의 이곳저곳이 찢어지고 결국은 온몸이 젖은 채로 산을 올랐다. 산장에 도착해 젖은 옷을 비틀어 짜면 물이 주루룩 떨어졌다. 서로 바라보며 '이에 웬 사서 고생이야' 했다.


바로 딱 그 심정이다. 이게 웬 고생이야.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꼭 오늘이어야 했을까. 꼭 산에 있는 오두막이어야 할까. 우리는 아웃도어가 메인인 클래스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별별 생각들이 떠오르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학생들하고 지리산을 같이 갔다면 애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를 원망했을까.


한참을 올라 이러다 숨이 넘어가 죽겠다 싶을 때 드디어 오두막에 도착했다. 오두막 안에 불을 피울 수 있게 해 놓았는데, 우리는 밖에서 잤다. 차양막을 만들어 놓아서 비만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냥 마리아샘이 '너 아웃사이드에서 자본 적 있니? 처음이니? 호호호' 이렇게 너무 행복하게 물었기 때문에 '왜 밖에서 자요?'라고 할 수 없었다. 학생들에게 따뜻한 코코아 한잔씩 하라며 엄청나게 큰 보온병을 한 개도 아니고 두 개나 꺼내시는데, 그걸 보고 힘들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이 무거운 걸... 고맙습니다...'만 했다. 그러자 마리아샘이 또 웃으며 '대신 내려갈 때 가볍잖아'라고 했다.


빗방울이 들이치는 곳에서 코코아 한잔씩 하고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안 되는 영어로 몇 마디 나누다가 자리를 펴고 잠자리에 들었다. 정말 한숨도 못 잤다. 밤새 비가 내렸고 벽이 없는 곳이니 얼굴로 분무기를 뿌려대는 듯이 비가 들이쳤다. 침낭의 입구를 봉쇄하고 그 안에 고치를 튼 것처럼 웅크려 있었지만 찬 기운이 온몸으로 들어왔다. 나 스스로 웬만큼 불편한 곳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마음속에 '아, 정말 힘들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주름이 자글한 할머니 뒤를 쫓아다니며 나이 탓을 할 수도 없다. 산이 높으면 높은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호호호 웃으며 앞장서고는 '나이스' 하지 않냐고 물으면, 나의 대답은 늘 헉헉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아.. 예.. 예.. 나.. 나이스 하옵니다.'와 같이 되어 버린다.


학생들을 인솔할 때면 나조차도 내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했다. 나서서 끌어야 하니 내 역량을 넘어설 때가 있는 것이다. 애를 쓰고 기를 쓰는 일이 되면 꽤나 지쳐버리게 된다. 하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는 마리아 샘의 발걸음은 선생님으로서 '인솔'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늘 해왔음을 보여주었다. 강인함이 축적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걸 가르치지 않으면서 가르치는 중이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나약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불평하고, 투덜대고, 뒤로 물러서고, 걱정하면서 스스로를 불가능의 덫에 가두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예전에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나면, 힘들었다는 소리를 낄낄대며 하고는 다음 해에 어김없이 또 그 무리에 끼어 종주에 동참했다. 다음번 종주는 덜 힘들었던가. 그렇지 않았다. 역시나 고생고생 오르며 힘들었지만 덜 걱정하고 덜 겁냈던 것 같다. 아마도 이곳에서 학생들이 얻는 것은 그 나약함의 껍질을 하나씩 벗어내고 마리아샘처럼 자연스럽게 채워진 강인함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금요일이 되어 멀리 캠핑을 갔던 다른 반 학생들이 돌아왔다. 장소가 어디였든 다들 비를 엄청나게 맞고 고생을 하고 온 모양이다. 여학생 한 명은 완전히 지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그럼에도 '너네 반 여행 어땠어?'를 물으면 각자의 고생담으로 시끌벅적한 모양새가 나쁘지 않아 보였다.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하는 나의 짧은 영어가 아쉬울 뿐이다.


비에 젖은 옷들을 세탁하느라 세탁실의 모든 세탁기가 정신없이 돌고 있다.

옷이 뽀송해지면 또 새로운 곳으로 떠날 것이다.


대안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뜬금없는 도전으로 나이 마흔세 살에 노르웨이 폴케호이스콜레에 학생으로 왔습니다. 그냥 기록하고 싶어서 일기 쓰듯이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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