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증, 번아웃 이야기
나는 인생에 있어서 정상에 오르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열심히 했다. 열심히를 넘어서서 과도할 정도로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나는 위태로운 상태였나 보다. 모두가 나에게 입을 모아 말했다.
"인생은 마라톤이야.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고."
그렇치만 이때는 어렸고 달린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나만 좀 더 노력하면 평생을 이 속도로 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다. 매일이 전쟁 같았고 해야 하는 것들은 산더미였다. 그래도 이것만 끝나면 쉴 수 있겠지, 조금만 더 하면 되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살다 보니까 쉬는 방법도 노는 방법도 알 수 없었다. 쉴 수 있게 되어도 쉬는 내가 이상했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공부할 때 빼고는 한 번에 한 가지만 하는 것도 이상해졌다. 밥 먹을 때에는 책을 봤고 TV 볼 때도 가만히 TV만 보는 게 아니라 정리를 한다던지, 계획을 세운다던지 했고 심지어 양치할 때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한 마리의 하이에나처럼 계속할 일을 찾아 헤맸다. 할 일이 다 떨어지면 계속 새로운 일을 벌였다.
그러다 아무런 전조증상 없이 무기력이 찾아왔다. 갑자기 내 모든 열정이 사라져 버렸다. 무기력증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한 글자도 쓸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연필이라도 들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정상적인 생활조차 수행할 수 없었다. 씻는 것은 둘째치고 화장실조차 가지 못했다. 머리로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전원이 다 된 로봇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몸을 생각대로 조종할 수 없었다. 이건 쉬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큰일 난 것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나 무기력해서 움직일 수가 없어."라고 말한다면 침대에서 뒹굴뒹굴거리고 있는 사람을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진짜 무기력증을 겪기 전까지는 그랬다. 더 놀라운 것은 그냥 의지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상상 같았더라면 오히려 좋았을 것 같다. 무기력증은 수면 시간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게 했다.
나는 보는 사람들이 다 신기해할 정도로 스스로 수면 시간을 잘 조절하는 사람이었다. 단 한 번도 늦잠을 잔적이 없고 알람소리 한 번이면 바로 일어났다. 수면 양에 상관없이 잘 일어났다. 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어날 수는 있었다. 그런데 무기력증이 오고 나서는 누군가 나를 쫓아다니면서 몰래 밥에 약을 타는 줄 알았다. 알람 소리를 못 듣는 건 기본이었다. 원래 많이 자야 6시간이었지만 10시간은 기본으로 잤다. 추가적으로 낮잠도 잤고 이렇게 자도 하루 종일 잠에 취해 있었다. 이뿐만 아니었다. 잠에서 깨어있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정말 살기 위한 기본적인 행동들도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정말 이러다가는 큰일 날 거 같다 싶을 때 했다.
하지만 이겨내야 했고 나 혼자 해결해야 했다. 아무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벌여놓은 일들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정말 조금씩 원래 생활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처음단계는 '목마를 때 물을 마시자'였다. 평소에는 물먹는 하마 수준으로 물을 마셔댔다. 하루 평균 3L는 마셨다. 그런 내가 무기력증에 빠지고 나면 하루에 물이 1L도 겨우 마셨다. 두 번째는 '식사를 미루지 말자'였고 세 번째는 '제때제때 씻자'였다. 어떻게 보면 정말 기본적인 것들이지만 이런 것조차 나를 힘들게 했다.
그래도 다행히 며칠에 걸쳐 한 단계씩 성공해 나갈 수 있었고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번 아프고 난 이후에는 완벽한 회복은 없었다. 회복되었다고 바로 전속력으로 달리는 순간 나의 열정이 바닥을 보이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 뒤에는 또 무기력증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바보같이 무기력증으로 인해 밀린 일들이 회복된 이후에 한 번에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무기력증이 찾아오는 주기도 더욱더 짧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