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는 시골, 내 맘 같지 않은 시작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던, 문경에서의 시작

by 정민

삼십 대의 시작,

돈을 벌지 않고 나를 탐색하는 1년을 살기로 하고
“하고 싶은 걸 닥치는 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침마다 운동을 다니고, 뜨개질을 배우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제과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그동안 일을 핑계로 놓친 다른 일상을 보상받고 싶은 듯,

내키는 대로 선택했고 대부분의 선택은 충동적이었다.


그 충동적인 선택들로 채워지는 내 일상은 이전에 느껴본 적 없는 또 다른 부류의 즐거움과, 무언가를 '경험했다'는 뿌듯함을 남겼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당시 내게 '곁다리' 같은 것들이었다.

운동은 필요하니까 해야 하는 것이었고, 뜨개질, 커피는 내 삶을 조금 더 재미있게 만들어 줄 취미, 제과는...... 앞으로 내 인생에 음식을 만드는 일은.....없..아니 쉽지 않겠구나 하는 확신을 안겨준 것이었다.

그때 내가 찾고 싶었던 건 '업業'이 될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잘하는 일이었기에 여전히 뭔가 중요한 게 빠진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퇴사 전부터 마음속에 품어왔던 단 하나의 계획, 오랫동안 기다리던 한 달 살아보기 공고가 드디어 떴다.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만들기 지원사업으로 운영되는 “문경 달빛탐사대”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공고가 뜬 시점은 내가 제과학원을 다니던 때로, 1기 일정과 애매하게 겹쳐버려서 결국 2기를 선택했고, 내가 문경에 발을 디딘 건 6월이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 느낀 건 단순했다. '드디어 시작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시골에 잠깐 살아본다고 당장 하고 싶은 업을 찾을 수 있을 리 없는데, 그땐 다른 환경에 놓이면 극적으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것 같다.


첫날 개구리 떼창과 함께 잠들고, 새소리에 일어나며 ‘아, 이제 진짜 도시가 아니구나’ 하는 걸 실감했다.

오기 전 가장 큰 걱정은 일을 쉬면서 낯가림이 심해져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였는데,

룸메이트를 비롯하여 참여자 몇몇과 금세 친해졌다. 수학여행 온 것처럼 웃고 떠드는 날들이었다.


정작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먹고' 사는 일.


부모님이 데려다주셨던 날, 읍내에서 숙소까지 10분 정도 차를 타고 올라오며 엄마가 말했었다.

“읍에서 꽤 먼데? 니 이래가꼬 한 달 동안 굶는 거 아이가”


그 말이 농담만은 아니었다.

운전을 할 수 있으니 프로그램에서 빌려주는 공유 자동차를 타고 읍내로 나올 순 있었지만 끼니마다 내려갈 수도 없을뿐더러, 식당도 많지 않았고 그 마저도 저녁에는 문 닫는 곳이 많았다.

그렇다면 대안은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서 요리하는 것뿐인데, 할 줄 아는 요리라곤 날것을 익히는 정도인 내가 환경이 바뀐다고 없던 요리 실력이 생길 리 없다. 햇반, 라면 같은 인스턴트 음식과 시리얼, 바나나, 우유, 달걀로 언제까지 돌려먹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문경에서의 한달살이로 수도권을 벗어난 삶을 실험해 보자고 생각했을 땐,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게,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일로 발전할 수 있는 좋아하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게 나름의 미션이었는데, 와보니 욕심도 그런 욕심이 없었다.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이 매 끼니를 집에서 해 먹던 건 단순한 낭만이 아니라는 걸 몸으로 이해한 순간이었다.


문경에서 생활을 시작한 지 3일 만에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한적한 곳에서 혼자 굶어 죽지 않으려면 외식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는 걸, 자급자족까지는 아니더라도 끼니를 해결할 정도의 요리는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걸.

서른이 넘어 내 손으로 밥을 못한다는 게 부끄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이참에 요리에 재미를 붙이면 되지!'라며 억지 긍정 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그렇게 적응해 보려던 찰나,

문경에 간 지 5일 만에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 사람 많은 도시에서 회사 다니고, 지하철 타고 다녀도 2년 동안 안 걸리던 코로나를 하필 그때 걸려버린 거다.

keyword
토, 일 연재
이전 02화누군가의 목표가 아닌, 내 삶의 목표를 찾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