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책방주인이 되었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꿈꿨던 걸지도

by 정민

기대하고 기대했던 문경 한달살이 프로그램은 허무하게 끝났다. 도착한 지 닷새 만에 코로나에 걸려 집으로 돌아갔고, 자취방 이사까지 겹쳐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다시 문경에 돌아왔을 때는 남은 시간이 고작 10일 남짓이었다.
살아봤다기엔 그냥 조금 긴 여행에 가까웠다.


아쉬움이 남았다.

귀촌에 대한 고민은커녕, 내가 지내고 있는 이 동네도 다 알기 어려운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던 중 다음 기수를 모집한다고 했다. 운영진은 다음 기수에 또 신청해도 된다고 했지만,

더 머문다고 해서 '여기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어!' 하는 극적인 심경 변화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자꾸 마음에 걸렸다. 혹시라도, 이번엔 조금 다른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요-만큼의 기대가 지워지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언니, 나 다음 기수 신청할 거예요. 그냥 한번 해보려고요.”
가장 빨리 집으로 돌아갈 것 같던 룸메이트가 남아 보기로 했다는 그 말에,
결국 마감 3일을 앞두고 나도 신청하겠다고 말해버렸다.


문제는 프로젝트였다.

처음에 신청했던 기수와 달리 다음 기수는 각자 프로젝트를 해야 했는데, 나는 아무 준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청서와 사업계획서를 함께 내야 한다기에 여러 가지 아이템들을 떠올렸지만, 나도 모르게 예전에 회사에서 하던 프로젝트 아이템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런 걸 하면 지역에 도움이 되겠지, 하며.


그러다 고민 중인 아이템들을 운영진과 나눌 기회가 있었고, 듣던 운영진 중 한 명이 물었다.
“좋긴 좋은데..... 그거 진짜 정민님이 하고 싶은 거 맞아요?”

그는 참여자 본인들이 정말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를 하는 게, 지역의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말에 웃고 말았지만 속으로 답했다. '아.... 제가 하고 싶은 거 아닌 거 같아요.'

그 순간 새로운 걸 해보겠다고, 내가 원하는 삶을 찾아보겠다고 여기까지 와서

또 관성으로, 회사원 마인드로,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해야 할 것 같은 일을 반복하려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다시 처음부터 생각하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것. 재밌게 할 수 있는 것.

그러다 머리에 스친 것이 책방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으로 떠올린 건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대단한 다독가도 아니고 책을 고르는 특별한 안목도 없으니까.

다만 여행을 가면 늘 그 지역 독립서점을 먼저 찾았다. 책방 주인의 시선과 취향으로 채워진 공간을 좋아했다.


그렇게 책방을 하겠다고 하루 이틀 만에 허겁지겁 계획서를 완성해서 제출했다.

이전에 냈던 아이템처럼, 이번에도 누군가는 말렸다.

이전에 참여했던 참여자들도 그렇게 책방을 하고 싶다며 시도했지만, 다들 망하고 떠났는데 도대체 왜 다들 그걸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


그러나 이번에는 확신이 있었다.

책이 잘 팔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어떤 식으로든 내가 가장 원하는 새로운 경험이 될 거라는 확신.

그리고 그 확신은 근거 없는 게 아니었다.

그 후 책방 프로젝트를 하며 다시 보게 된, 회사에 다니던 시절 썼던 메모장 곳곳에 책방 이야기가 있었다.

여행지에서 들른 작은 책방에서 받은 짧은 인상들, 언젠가 나도 그런 공간을 꾸려보고 싶다는 단상들.

그땐 그저 막연한 상상이라 여겼지만, 아마 이미 오래전부터 내 안에서 조금씩 자라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 해 름과 가을, 두 계절동안 책방인 듯 책방 아닌 책방 같은 책방의 주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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