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여지책은 궁여지책

불완전했지만 내 삶을 바꾼 씨앗

by 정민

책방의 이름은 궁여지책.


어떤 이름이 좋을까 하다가 책이 내게 어떤 의미인가 생각해 보니, 그야말로 궁여지책이었다.

어릴 땐 누가 시켜야만 책을 읽었는데, 커서는 내가 궁하니 책을 찾게 되었다.

막막할 때, 답답할 때마다 지푸라기라도 잡듯 펼친 책은 완벽한 해답은 아니어도 버틸 힘이 되어주곤 했다.

그냥 내게 그러하였듯, 누군가에게 궁여지책이 될 책들을 공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책방을 ‘책방답게’ 시작하는 건 불가능했다. 프로젝트 지원을 받았지만 공간을 마련할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이 궁여지책으로 택한 방식은 이동식 책방이었다.


아이디어를 기획할 당시엔, 문경새재에서 책을 팔고 싶었다.

문경새재가 머물던 곳과 가까워 나는 종종 산책을 하다 그곳에서 책을 읽었는데, 초록색으로 우거진 나무 그늘, 시원한 물소리 속에 책을 읽으면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책방 이름 후보 중엔 산, 책도 있었지...)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도립공원 한복판에서 상업 행위는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가 빌려준 픽업트럭에 책들을 싣고 문경에서 하는 플리마켓을 돌아다니거나, 기회가 되면 카페 마당에서 책을 팔기도 했다. 책방을 한 지 석 달쯤 되었을 땐, 프로그램 운영진의 도움으로 기념품샵 한 켠을 빌려 책방을 운영할 수 있었다.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책방을 '내 이야기로 채우는 일'에 집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영업자로서의 마인드가 전혀 없었던 것도 같다.)

그래서 내게 궁여지책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내가 책을 고르고 그 책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이야기하는 공간이 되었다.

회사를 다니던 동안 내게 있었던 크고 작은 변곡점들, 책을 바짝 읽었던 그 시기들을 주제로 삼았다.
일을 잘하고 싶었던 때, 그러다 자존감이 떨어졌던 때, 그걸 극복하기 위해 나를 다시 알고 싶었던 때, 그러다 새로운 도전을 꿈꾸게 되었던 때. 주제를 정하니 어떤 책을 고를지는 금방 정해졌다.
어려운 건 그다음이었다. 주제와 책에 대한 설명을 내 이야기와 섞어 글로 표현하는 일. 여태껏 보고서만 써오다 내 이야기를 글로 쓰려니 어색하기만 했다. 몇 안 되는 문장을 적는 데도 며칠이 걸렸다.


그러나 그렇게 서툴러도 내 이야기를 담았던 궁여지책이었기에, 누군가 그걸 알아봐 주고 응원해 주었던 순간들은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처음으로 지인이 아닌 손님이 찾아와 책을 고르고 “고민의 흔적이 구석구석 보인다”라고 말해주었던 날,

플리마켓에 나갈 때마다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나중엔 주문 구매도 하셨던 모자를 파시던 선생님,

서울에서 놀러 온 친구가 “책방이 진짜 너 닮았다”라고 말해준 순간,

바람이 심하게 불던 카페 마당에 외롭게 앉아 있던 나를 위해 30분 넘게 차를 타고 찾아왔던 탐사대 동기들,

룸메이트가 '정민님, 자요?'하고 말을 걸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원하는 삶에 대한 대화가 날이 새도록 이어졌던 밤들,

낯선 이들과 서로의 궁여지책을 나눴던 첫 독서모임 순간까지.


무엇보다 어디서든 야외용 테이블 하나와 노란색 초록색 컨테이너 박스 여섯 개가 전부인 그 작은 공간에 앉아

혼자 보낸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씨앗이 되었다.

노래가 제목을 따라간다는 말처럼 궁여지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어느 것 하나 완벽한 것 없이 불완전하고 임시방편 같았지만, 그 궁여지책 덕분에 나는 내 삶을 돌아보고, 내 이야기를 꺼내고, 모든 걸 오롯이 내가 정하는 과정을 겪으며 내가 원하는 삶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정말로 궁여지책은 나한테 궁여지책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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