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목표가 아닌, 내 삶의 목표를 찾기로 했다.

갭이어의 시작

by 정민

서울에서의 나는,

꽤 오래 남의 일을 대신하는 것 같다고 느끼며 살았다.

내가 만나는 지역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나름의 사명감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했지만,

어느 순간 그저 누군가의 계획을 대신 집행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5년 넘게 지역개발 컨설턴트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다니며 프로젝트를 했다.

행안부, 농림부, 국토부… 사업마다 주관 부처는 달라도 일은 비슷했다.

지자체가 지역의 활성화를 위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고, 그 예산의 계획을 세우거나 실행하는 일.


철원부터 남해까지, 늘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시골이 나의 일터였다. 일주일 꼬박 출장만 다니기도 하며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자주 시골을 접했고, 다행히 그게 좋았다. 주민들과 지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초록이 많은 풍경도, ‘없는 게 많아 오히려 할 수 있는 게 많은 곳’이라는 가능성도.


하지만 아무리 애정을 쏟아도 나는 언제나 외부인이었다. 3~4년 차가 되자 그 사실이 견디기 어려워졌다. 내가 아무리 밤새워 일해도, 지역에서 보내는 시간이 내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길어도, 모든 프로젝트에는 끝이 있었으니 사람들은 언제나 날 “곧 떠날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았다. 아무리 머물러도, 나는 그곳에서 손님 이상은 될 수 없었다.


그러다 번아웃이 찾아왔다. 직급이 오를수록 일은 늘었고, 내 마음은 점점 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그리고 그 시기에 유난히 지역의 청년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눈을 반짝이며 자기 꿈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자기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누군가의 목표를 대신 실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부러웠고, 동시에 내 마음은 더 확실해졌다.


‘아, 이제 그만해야겠다.’


퇴사를 말했지만 실제로 첫 회사를 나오기까지는 1년이 걸렸다. 회사는 쓰지 못한 연차를 몰아서 쓰게 해 주고, 부서를 바꿔주고, 내 팀을 꾸려주기도 했다. 누군가는 1년을 더 버틴 내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고 묻기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간이 변곡점이 됐다. 한 번 바닥을 찍으니 내 삶을 돌아보게 됐다. 몸은 더 바빠졌지만, 틈날 때마다 자문했다. 내가 뭘 좋아하지? 뭘 잘하지? 뭘 하면 재밌을까?

그 와중에 얻은 단 하나의 확실한 답.

“나 다른 건 몰라도 시골은 좋아해.”


일 때문에 드나드는 시골 말고, 살아보는 시골은 어떨까. 그 생각이 퇴사 후 유일한 계획이 됐다.

퇴사 날짜를 받고 나서도 돈을 벌지 않고 나를 탐색하는 1년을 살겠다고 마음먹었을 뿐, 별 다른 계획이 없었다. 그런 내 유일한 계획은 ‘프로젝트로 가지 않았던 시골에서 한 달 살아보기’.

그렇게 나는 6개월 뒤 문경으로 향했다.

일 때문에 가는 시골이 아니라, 살아보는 시골을 처음 겪어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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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