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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택 Dec 09. 2023

진짜가 나타났다

 2013년, 블록버스터급 프로그램이 MP에 떨어졌다. 회당 제작비 2억! 남녀 연예인 14명이 2인 1조로 팀을 이뤄 정글에서 우승자를 가리는, MBC 사상 최초 서바이벌 리얼리티 프로그램! 당시 SBS <정글의 법칙>의 대항마로 MBC에서 야심 차게 기획한 <파이널 어드벤처>라는 프로그램이었다.

  <TV 속의 TV>에서 무미건조한 연출 생활을 이어가던 난, 가슴이 뛰었다. 어머! 이건 해야 해! 그리고 <TV 속의 TV> PD님은 날 보내주셨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출처 MBC


 <성공의 비밀>에서 함께 굴렀던 중호와 나도, 여기서 다시 만났다. 그리고 MP에서 봤던 프리랜서 연출 선배 몇 명이 더 붙었다. 모두 '에이스'라 불리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당시, MP 인력들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당연했다. 이건 MBC 사상 최초니까. 그래서 경험 많은 외부 인력을 대거 수혈했다. 그렇게 팀은 작가 11명, 외부 연출 11명, 조연출 5명,  연출 4명으로 구성됐다. 매머드급이었다.

  게다가 대박인 건 <TV 완전정복>에서 만난 능력자, 성 PD님이 직접 편집팀을 꾸려 편집을 전담하신다는 소식이었다. 촬영과 편집의 분업화라니, 굉장하다. 우린 그저 촬영 준비 잘해서, 잘 찍기만 하면 되는구나. 편집이 진짜 힘든 건데 성 PD님이 맡으신다니 든든했다. 그리고 에이스 연출 선배들은 이미 해외 사전답사까지 끝냈다. 완벽한 판이다! 이건 안 될 수가 없어! 희망에 찬 우린 태국으로 떠났다.


<파이널 어드벤처> 1회 촬영 대본과 담당했던 타이틀 촬영 콘티 중.


 첫 촬영 장소는 태국 끄라비의 프라낭 해변이라는 곳이었다. 2인 1조, 7팀으로 구성된 출연자들이 레이스를 위해 모였다. 그 레이스란 것은 카누 타기, 암벽 타기, 맹그로브 정글과 동굴 탐험 등을 통해 아이템과 미션을 찾고, 보트와 차량을 이용해 40km 정도 떨어진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출연자에 맞춰, 계획대로 외부 연출 11명과 외부 촬영 감독님들도 팀을 짰다. 출연자 1팀에, ENG 촬영감독 1명 + 6미리 VJ 1명 + 6미리 외부 연출 1명 혹은 2명. 출연자 1팀에 총 3~4대의 카메라가 붙은 것이다. 놓칠 그림이 없겠어! 완벽해! 그리고 드디어, MC 김성주 님이 레이스 시작을 알리는 종을 쳤다.


 출연자들이 카누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미션은 '카누를 타고, 두 개의 섬에 세팅된 미션 가방을 찾아라!' 다들 의욕에 차 있었다. 출연자들은 너무 빨랐고, 우린 너무 당황했다. 그들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렇게 출연자들은 카누를 타고 바다로 떠나버렸다.

 우리는 닭 쫓던 개가 되어 해변에서 줌(ZOOM)만 땅겨댔고, 그렇게 땅겨대니 화면에 지진이 났다. 바다에 들어가니 와이어리스 녹음기도 채우지 않았고, 당연히 그들의 목소리도 딸 수 없었다. 그래도 섬 안에는 다른 카메라 팀이 있으니까 괜찮겠지... 카누에 고프로도 달아놨으니 괜찮잖아... 하지만 출연자들은 신기하게도 섬 안, 카메라가 세팅된 길을 요리조리 피해 미션 가방을 찾아냈다. 또 고프로들은 반 이상이 사라졌다. 머나먼 태국 바닷속에 수장된 것이다.


 카누 미션 다음은 '암벽 위에 세팅된 미션 가방을 찾아라!' 암벽 등반 미션이었다. 카누가 돌아온 지점과 암벽까지는 1km 정도 거리가 있었는데, 출연자들은 대단했다. 평소에 자기 관리를 어찌나 했는지, 카누에서 내리자마자 뛰는데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수색대에서 하루 8km 구보로 단련된 나였지만 하늘이 노래지고, 신물이 올라왔다. 특히, 줄리엔 강 팀은 플래시였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사라졌다. 우린 무전기를 통해 서로 줄리엔 강 봤냐며, 전쟁 통에 잃어버린 자식 찾듯 애타게 찾았다.


출처 MBC


 이제 6미리를 든 촬영감독들은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암벽에 먼저 가서, 도착하는 그림이라도 따자!'며 지름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길은 '버뮤다 삼각지대'였다. 바닷물을 첨벙 대며 가로질러야 했는데, 바닥에 꿀 발라놨는지 다들 미끄러져 빠지고, 6미리는 침수됐다. 촬영 첫날, AS도 안 되는 태국에서, 7대가 넘는 6미리들이 재기불능 상태가 됐다.


 다음 스테이지는 맹그로브 숲이었다. 삐죽한 나무들과 뻘 같은 진흙 바닥으로 이뤄진 이곳은 버뮤다 삼각지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냥 '헬'이었다. 그나마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은 좁았고, 그 길은 출연자들이 갔으며, 우린 서로의 카메라에 걸리지 않기 위해 길이 아닌 곳에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빠졌다. 걸쭉한 게 거의 푸세식 화장실이었다. 그게 허리 높이까지 차올랐다. 6미리를 지키려고, 라이온 킹에서 원숭이가 심바 쳐들 듯, 머리 위로 6미리를 쳐들었다. 그리고 뭐가 찍히는지도 모르고 출연자 쪽으로 REC 버튼을 누른 채 탈출했다. 흡사 노르망디 상륙작전이었다. 하지만 이미 출연자는 사라졌다. 그리고 곧 소란이 발생했다. 그곳으로 뛰어간 난, 그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이불킥을 쓰리 콤보로 때리는, 그런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난 이본 님과 황인영 님의 팀을 담당했다. 그런데 인영 님이 다쳤다. 칼에 손가락을 베인 것이다. 피가 콸콸 났다. 큰일 났다.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해! 레이스고 나발이고, 의료진에게 가야 한다! 그리고 난 머저리 같은 조치를 취했다.     


 "저... 레이스를... 포기... 하시겠습니까?"


 "!!! 아니, 지금 그게 무슨..."

이본 님이 놀란 토끼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얼른 연락할게요!"


출처 MBC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저도 그때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병원엔 꼭 가셔야 하는데, 룰은 깨지면 안 되지 않나... 하는 어쭙잖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얼리티 물은 처음이라 제가 미쳤었나 봐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 두 분은 정말 좋으신 분들이었다. 인영 님도, 이본 님도, 내가 본인들보다 더 허둥대자 더 이상 말씀이 없으셨다. 그저 묵묵히 지혈을 하고 계실 뿐이었다. 하지만 출연자와 스태프, 모든 시선이 내게 쏠려있었다. 내가 연출이었으니까... 내가 해결해야 한다. 빨리 연락을 취하자... 하지만 맹그로브 정글은 나무가 빽빽해선지, 추격자의 하정우 집마냥 무전기도, 전화기도, 수십 통을 때려도 터지지가 않았다. 절망이란 말로는 부족하다. 그냥 순도 100% 패닉이 돼버렸다. 때마침 촬영감독을 태운 보트가 우연찮게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맹그로브 숲 사이를 돌아다니며, 촬영 서포트를 하기로 한 그 보트였다. 그 보트를 타고 인영 님은 무사히 치료받을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이후도 현장은 마가 낀, 아수라장이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사전답사 때 괜찮았던 물길이, 홍수에 떠내려온 나무들로 막혔다. 레이스 1등 팀과 꼴등 팀까지, 모두 그 앞에 옹기종기 모여 표류했고, 순위는 원점이 됐다. 또, 사전답사 때 점찍어 둔, 미션 가방 숨겨 보물찾기 하기 딱 좋았던 그 숲이, 촬영 땐 벌목됐다. 또, 탈 것들이 고장 나거나, 러시아워에 걸리거나, 그것도 아니면 태국 경찰의 검문에 걸렸다. 미션 성공과는 상관없는, 그냥 그들의 운으로 순위가 정해지는 일들이 허다했다. 굿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첫 촬영이 끝난 밤, 제작진 모두가 말이 없었다...기 보다는 말을 잃었다. 나라 잃은 백성들이었다. 그들을 뒤로하고, 혼자 첫 레이스 촬영본을 들고 한국에 돌아왔다. 내겐 미션이 있었다.  미션은 성 PD님의 편집팀이 1~2회 편집을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세팅하는 것이었다. 당시 일산에 있던 MBC 본사에 파이널컷프로 NLE 편집실을 마련하고, 그들을 지원다. 한국에 도착해 모든 미션을 완료한 난, 이런 아수라장도 편집이 될지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성 PD님을 믿었다.




 그리고 본사에서, 1회를 시사하는 날이 됐다. MBC 사상 최초 서바이벌 프로그램답게, 대회의실에 본사 각 부서 책임자들이 스무 명 넘게 앉아, 함께 1회를 봤다. 그리고 첫 촬영이 끝난 밤의 우리처럼, 그들도 모두 말을 잃었다. 신랄한 비판도 없었다. 그들 중 몇 명이 조용히, 어쩔 수 없이 서로 감상평을 나눈 후, '갈수록 더 나아지겠죠'란 말을 남기고, 해산했다.


 촬영도 그랬지만, 편집도 총체적 난국이었다. 인터뷰가 너무 많았다. 잘 찍힌 것도 별로 없었지만, 그나마 찍힌 것도 좀 볼만하면 인터뷰가 치고 들어왔다. 맥이 탁탁 끊겼다. 상황에 대한 출연자의 설명과 감상. 한 시간이 그렇게 채워졌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나를 포함한 제작진 모두가 '집중이 깨진다', 그것밖에 문제를 몰랐다는 것이었다. 분명 다른 문제들이 있어 답답한데도, 모두가 설명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안도 없었다.

 그래. 그랬었으니까. MP에서의 시사는 '집중이 안 되는데. 자연스럽지 않은데. 재미없는데'가 다였으니까. '왜 재미없을까?' 그런 토론은 안 해왔으니까. 그래서 수정은 그저 인터뷰 몇 개 더 빼는 것에서 그쳤고, 시청률은 1회부터 곤두박질쳤고, 성 PD님의 편집팀은 3회를 끝으로, 나가게 됐다.


 그리고 한 젊은 여자가 왔다. 마르고, 똑단발에, 외모는 시크했고, 복장은 엘레강세미정장 원피스였다. 편집감독이라고 했고, 나와 동갑이라고 했다. 종편감독도 아니고, 편집감독? 드라마 편집감독은 봤지만, 예능 편집감독은 그때 처음 봤다. PD랑 다른 게 뭐지? 처음엔 그냥 NLE 편집자인 줄로만 알았다. 그 여자 감독은 조용히 1회부터 3회까지를 모니터 했다. 그리고 메인 PD님과 우리에게 입을 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동기가 없어요. 그리고..."


 그녀가 말을 잇는 동안, 방송을 했던 10년간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나와 동갑인 이 여자 감독은 편집자가 아니라, '진짜 감독님'이었다. 어떤 PD님들도 하지 못한, 이 변기에 빠져버린 쥐 같은 프로그램을 구해낼 조언을 쏟아내고 있었다. 꺼져버린 불씨를 살릴 '출연자들이 왜 이런 개고생 레이스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동기'부터 시작해서, 뼈대를 세우기 시작했다. 제작진에게 현장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기승전결 구조로 스토리를 잡아, 캐릭터가 돋보일 에피소드들을 배치해 나갔다.


 그동안 방송쟁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과 일하며, 영상에 대한 이런 식의 접근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영상에 대한 자기 생각에 확신이 있었고, 그래서 당당했다.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에게 변명이든 뭐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 구구절절 맞는 말만 하니까. 문제점을 알게 되니 속이 시원했다. 멋있었다. 경외심이 들었다.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그 자리 후, 모두 그녀를 깍듯이 대했으니까.




 그리고 난, 편집감독님과 함께 편집을 시작했다. 단지, 편집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외부 연출들은 모두, 본인들은 촬영만 계약했다며 빠졌고, 사실 나도 원래는 그랬다. 하지만 프리랜서라도, 난 어쨌든 MP 사람이었다. 팀 내에 NLE인 파이널컷프로를 다룰 수 있는 사람도 없어서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게 첫 리얼리티 물 편집을 하게 됐다.


 일할 땐 언제나, 아래 회색 츄리닝으로 환복 했던 편집감독님은, 달랐다.

 "영 피디님, 지금 이 구다리는 이 팀과 저 팀이 갈등 생기기 전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약간 미묘하게 쎄한 분위기를 살려줘야 해요. 그다음 갈등 터지는 씬은 제가 할게요. 다 되면 넘겨줘요. 제가 합본할게요."

    

 그녀는 단순히 분량만 나눠서 던지지 않았다. 내가 지금 편집해야 하는 씬이 어떤 내용이고, 각 씬이 어떻게 연결될 것이며, 그걸 보고 시청자가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할지 알려줬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내게 그냥 '로봇 팔 조립하세요'가 아니라, '모두 다 조립하면 이런 로봇이 완성될 거예요'라고 완성도를 보여주는 격이었다. 그러니 '로봇 팔'만을 조립하고 있어도 보람이 됐다. 쉽고, 기댈 수가 있었다.

 그래도 첫 리얼리티 물이라 컷은 쉽게 붙지 않았다. 망설였다. 하지만 방송일인 금요일 밤은 다가오고, 초조했다. 쎄한 분위기라... 쎄하게... 쎄하게... 에라, 모르겠다. 그냥 만화처럼 붙이자. 그때 난 조석 작가의 웹툰, '마음의 소리'에 빠져있었는데, 그 웹툰의 컷처럼 붙여나갔다. 조석이 애봉이한테 시비 건다. 조석 원샷 붙이고, 다음에 애봉이 표정 클로즈업 샷 붙이고, 애봉이가 조석에게 다가간다. 집안 풀샷 붙이고... 그런 식으로 붙이고 감독님께 넘겼다.


 "영 피디님, 괜찮은데요? 처음이시라면서요."

 "!!!"


 맙소사. 칭찬을 받았다. 솔직히 고백하면, MP에선 칭찬을 들어도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에이스네 어쩌네, 메인 PD님들의 인정을 받아도, 1도 기쁘지가 않았다. 우선 나는 인성이 건방졌고, 둘째로는 그분들의 기계였기 때문이었다. 그냥, 그분들이 원하시는 대로 촬영하고, 편집하고, 돈 챙겨가는 편집 기계라서, 기계는 감정이 없으니 기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잊고 있었다. 그 감정을. 기뻤다. 너무 기뻤다.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편집은 고됐다. 한 시간 방송을, 그것도 수십 대의 카메라로 찍은 촬영본을, 두 명이서 편집한다는 건 역시 고된 일이었다. 감독님의 인정 때문인지, 피로 때문인지, 둘 다인지, 나의 편집 분량도 점점 늘어났다. 두 달 동안 9kg이 빠졌다. 방송일을 제외하고는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제발 편집자 좀 구해달라고 사정했지만, 소문이 났는지 편집자는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선배들은 모두 본인들은 NLE를 할 줄 모른다, 돕고 싶어도 돕지 못한다, 방해만 되는 것 같다며, 방송국엔 있었으나 편집실엔 오지 않았다. 한 선배는 그렇게 본사 어딘가에서, 스마트폰 게임 '모두의 마블'에 몰두해 지역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9kg이 빠진 내게, 좋다고 보여주기도 했다.


 방송 후반에는 중호와 외부 연출 한 명이 더 붙어, 함께 편집을 이어갔다. 그래도 편집은 방송 전날, 혹은 방송 당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편집감독님과 우린 늘 빈사 상태였고, 한주, 한주가 다급했다. 당시 색작업실과 녹음실은 상암에 있었는데, 20~30분 분량의 가편집이 완료되면, 우선 그것부터 작업을 맡기기 위해 일산에서 상암으로 달렸다. 내 마티즈를 타고 자유로를 시속 140km로 달렸다. 그렇게 밤이든, 새벽이든 두세 번을 왔다 갔다 했다. 시사할 시간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종편실에서 자막을 넣고 믹싱이 완료되면, 바로 본사 주조정실로 넘겼다. 그리고 잠시 후 본방송이 나올 때, 중호와 함께 상암의 막걸릿집에 앉아 시청했다. 그곳은 기쁨과 보람의 한잔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그저 한숨 돌리는 자리였다. 그러면서 막걸리를 따라놓고 하는 짓은, 서로 시청자 게시판이나 실시간 댓글들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가뭄에 난 콩보다 없었던 선플을 발견하면, 중호와 내 입은 찢어졌다. 비로소, 막걸리 한잔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일산으로 돌아갔다. 그 패턴이 종영까지 이어졌다. 12회 예정이었는데, 역시나 10회로 조기 종영됐고,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골로 갈뻔했다고.




 <파이널 어드벤처>는 많은 관계자에게 영향을 미친 프로그램이었다. 한 선배는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20년 가까이해왔던 방송을 접었으며, 다른 선배는 이 프로그램 이후, 모든 게 안 풀린다며 개명까지 했다. 또 다른 선배와 얘기를 했을 때는,


 "<파이널 어드벤처> 다시 편집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재편집해서 어디 팔 수는 없을까요?"

 "그 얘긴 꺼내지도 마라." 그분은 언급조차 꺼렸다.


 어찌 됐든 이 프로그램은 내겐 고마운 프로그램이다. 진짜 실력자를 만날 수 있었고, 그녀 덕분에 난, MP라는 알 속에서 10년을 병아리로 지냈을 뿐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정작 그 알을 깨트린 건,


한 선배의 빡치는 말, 그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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