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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택 Dec 08. 2023

대혼란의 밤

 <해피타임> 팀에서 맡은 <해피타임머신>이란 코너는, 매주 추억의 MBC 프로그램 7편을 선정해, 총 10분 길이로 압축 편집해 보여주는 코너였다.


 좋은 기획이다. 당시 해피타임에 배정된 신입 정직원 조연출 후배가 기획한 코너였다. <해피타임>의 주 시청자층은 50~60대여서 옛날 프로그램에 대한 향수가 있었다. 그리고 MP는 MBC 자회사라서 수십 년 쌓여온 MBC 아카이브를 마음껏 쓸 수 있었다. 소재가 떨어질 걱정이 없다. 멋있다. 역시 배운 애들은 다르구나.


출처 MBC


 나는 다른 코너의 6미리 촬영도 하면서, 그 후배와 격주로 <해피타임머신>을 맡았다. 하지만 담당 작가는 한 명이었다. 담당 작가님은 고생을 많이 했다. 매주 40~50년간의 MBC 방송을 서치해야 했고, 괜찮겠다 싶은 방송들을 밤새 프리뷰해서 재는 부분을 골라내야 했다. 그렇게 고른 걸 코너 PD인 우리와 또 솎아냈다. 추려낸 방송들로 편집 구성안을 썼고, 메인 PD님과 메인 작가님의 컨펌을 받으면, 편집이 시작됐다. 우리만큼 작가님도 밤을 새웠다. 하지만 결과는 매주 달랐다.


 "다른 건 없니?"

 PD님이 말씀하셨다. 그 말은 '새 아이템으로,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하라는 말이다. 나와 담당 작가님의 충격을 목도한 메인 작가님이 황급히 커버를 쳐주셨다.


 "PD님, 전 괜찮은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이..."

 "대본으로 봤을 땐 괜찮았는데, 붙여놓으니까 재미가 없네요."

 재미가 없다. 며칠밤을 새운 우리에게 던져버린 이유가 그냥 '재미가 없다'구나.


 '그렇게만 말씀하시지 말고, 재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좀 알려주세요'


 하지만 역시 난 말하지 못했다. 이런 일들은 유독 내 담당 주에 많이 일어났다. 그 고생을 줄이고자 메인 작가님은, 다음부터 시사 전에 가편집본을 본인이 먼저 봐도 괜찮겠냐고 요청하셨다. 그런데도 이런 일들은 계속해서 반복됐다.


담당 작가님과 나눴던 '아이템 교체' 메일.


 "냉탕이랑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거 같아요." 담당 작가님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랬다. 시사의 온도가 달랐다. 후배가 맡은 주뿐만 아니라, 정우 형이 맡은 <명작극장>이라든지, 다른 코너들은 온탕이었다. 화기애애했다. 내 코너는 냉탕이었다. 싸했다. 그렇다면 이건 내가 문제가 있는 거다. 내가 정말 편집을 못 하나보다. 하지만 이상했다. 매주 가편집본을 미리 보시는 메인 작가님도, 담당 작가님도 만족했고, 코너 시청률도 내 담당 주가 더 높을 때가 많았다. 납득이 안 갔다. 그것도 아니면 시사 때 아부를 못해서 그런가. 아닌데. 정우 형도 그런 거 나만큼 못 하는데... 생각하자. 내가 고쳐지지 않으면, 이러다 다 죽어.


 하지만 문제를 모르니 답을 풀 수가 없었다. 괜히 위축됐다. 덩달아 같이 고생하는 담당 작가님에게도 미안했다. 그래서 시사 때 수정이 생겨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저 '알겠습니다'하고 수정 리스트를 적어나갔다. 괜히 거슬렸다가 수정이 더 많아질까 봐서였다. 그게 우리 모두가 사는, 문제를 몰랐던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담당 작가님과 밤새 고심해 만들어낸 편집본이 아작이 나면서, 최종본은 원래의 내 새끼가 아니게 돼버렸다. 나름 재밌게 해 놓은 거 재미도 없어지고, 보람도 없어졌다. 난 그저 월 160만 원 벌려고, 방송 경력 6년을 비루하게 이어가는 편집 기계가 된 거다. 그때도 시키는 대로 하는 로봇처럼 수정사항을 적고 있던 시사 날이었다.


 "이 씬 빼라." PD님이 말했다.

 그 씬은 남주와 여주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달려와, 횡단보도에서 키스하는 씬이었다. 그들의 갈등이 해소되는, 시청자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긴 중요한 씬이었다. 이걸 날리면 이 드라마를 보여줄 의미가 없다. 나도 모르게 물었다.


 "PD님, 왜요?" 그리고 PD님이 말했다.

 "도로교통법에 걸리잖니."


 지져쓰. '도로교통법'이란 단어가 나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그럼 <명작극장>은? 거기 나오는 수많은 범법 씬은? 그건 되고, 이건 안 되고? 내 코너 할 땐 '전체 관람가'였다가 <명작극장> 할 땐 갑자기 '15세 이상 관람가' 되기라도 하는 건가?




 그날 밤 <해피타임> 형들과 술을 마셨다. 그리고 물었다.     


 "형, '도로교통법'이라니, 대체 왜 이런 거죠?"

다들 말이 없다. 출구 없는 이 상황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다시 물었다.

 "아니, 뭐가 문제예요?"

한 형이 말했다.


 "그게, 너 말투가 좀 사람 기분을 안 좋게 하는 거 같아."

 "!!!"


 생전 처음 들었다. 우물거리고, 발음이 뭉개져서 잘 안 들린다는 말들에 콤플렉스는 있었는데, 사람 기분 나쁘게 만드는 말투라니...


 "예? 아니, '알겠습니다'란 말만 하지, 대화도 별로 안 하는 거 아시잖아요."

그 형이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게 말투라기보다... 말 톤이 좀 낮잖아? 그래서 그런 거 같아."

 "!!!"


 이건 또 뭔 소리야. 말투가 아니라 말 톤이라고?! 목소리가 저음이라 기분이 언짢아진다고? 문제가 그거라고? 그럼 가수 김동률 님이랑 얘기라도 하면 분기탱천하겠네! 이어지는 혼란한 말들에 술이 다 깼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도 않지만, 그때는 '내가 고자라니'급으로 심각했다.


 '톤이 언짢다니... 그럼 방송을 떠나서, 인생 문제잖아. 어쩌지...'

대혼란의 밤이었다.


 11년이 지난 후, 난 이 형을 손절했다. 이 형은 이후에도 내게, 넌 말을 잘하지 못하니, 우리는 함께해야 한다. 너는 일을 하고, 페이 협상 같은 딜을 할 자리엔 본인이 대신 나서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게 다 너를 위해서라고도 했다. 고마웠다. 하지만 그 형은 본인이 못 나갈 땐 붙었고, 잘 나갈 땐 안하무인이었다. 행여 일에 의구심이 들어 물으면 소리쳤다. 넌 그냥 나만 믿고 따라오면 되는데 왜 그러냐고. 본인 혼자 살자고 하는 거냐고. 본인이 살아야 너도 사는 거 아니냐고. 길길이 화내기도 하고, 우쭈쭈 달래기도 했다.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었다. 하지만 정말 웃기는 건, 그 형에겐 그게 계략도 뭣도 아니고 진심이었다는 거다. 더 큰 문제다. 이런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해도 자신의 잘못을 모른다. 다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는 남 탓일 뿐이다. 난 머저리같이 그런 세월도 정이라고, 손절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들, 안 맞는 사람이 있으면 제발 빨리 손절하자. 인생 더 잘 풀린다.


 어쨌든, 이 술자리 이후로 말하는 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하던 말도 어버버 했고, 스태프들과, 특히 윗사람과의 대화를 피했다. 더 위축되고, 더 답답했고, 더 막막했다. 이렇게 생겨먹은 걸 해결할 수가 없잖아! 그렇게 <해피타임>에 들어온 지 11개월이 지났다.


 회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PD님과 메인 작가님뿐, 있어야 할 담당 작가는 보이지 않았다. PD님이 말했다.     


 "담당 작가는 나가기로 했어."

 "!!!"

 "메인 작가님이랑 상의해서 잘 끝냈다. 코너랑 잘 안 맞는 거 같기도 하고."


 PD님이 뭐라고 계속 말씀하셨지만, 들리지 않았다. 분명 담당 작가님은 나랑 계속하고 싶다고 그랬는데? 어제 그랬는데?? 그렇구나. 담당 작가님은 개고생만 하다가 잘렸구나...  때문에...  마음속으로 대사를 준비하며 PD님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 그리고 말했다.


 "저도 나가겠습니다."


 결국 난, 말투나 목소리라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말고, 진짜 나의 뭐가 맘에 안 드셨는지 듣지 못하고, 팀을 나와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이 놈은 아무리 똑같은 수정을 시켜도, 매번 지 하고 싶은 대로 편집하는구나'라는 마음에 그러셨던 거 같긴 한데... 어떡해요. PD님 편집, 전혀 따라 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긴, 이런 게 내 얼굴에 드러나긴 했겠지...




 여하튼 말이 힘든 건 사실이니까, 돈 30만 원을 내고 신촌에 있는 스피치 학원에 등록했다. 그곳엔 나처럼, 길 잃고 헤매는 이들이 모여있었다. 한 명씩 더듬더듬 자기소개를 했고, 모두 같은 아픔을 겪고 있기에, 자기소개가 끝날 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멋져! 그리고 내 차례가 됐다.


 "저는 PD로 일해서... 말을 해야 할 기회가 많지만... 겁이 나고 자신이 없습니다..."

"짝짝짝짝짝!!!!!!"


 이후 한 달간의 고된 트레이닝이 진행됐다. '깐 콩깍지 안 깐 콩깍지' 같은 미션을 시작으로, 스피치 동기들과 어깨동무하고 전방에 함성 발사, 서로 손을 맞잡고 눈도 피하지 않는 극악의 난이도인 강강술래까지 해냈다. 낙오자도 발생했지만 '중꺾마'의 각오로 살아남은 우린 하나였다.

 그리고 수료일. 각자 그동안의 소회를 발표하는 자리에는 연단에 오른 자신이 믿기지 않는 분, 차오르는 눈물로 먼 어딘가를 바라보시는 분, 시큰거리는 코를 두 손가락으로 쥐고 계신 분들이 계셨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그리고 서로 전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감정을 공유했다.     


'우린 환골탈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MP에서 콜이 왔다. '여수세계박람회 성공 기원 콘서트'를 도와달라고 했다. 그동안 나는 '비보이 대회' 등 MP에서 몇 번의 쇼와 콘서트를 경험한 경력자가 돼있었다. 비록 사람들 앞에 나서지를 못해 중계차 안에서 VCR 플레이를 했었지만, 그래도 본 건 많았다. 그날도 현장의 미비점들이 눈에 보였다. 그중 하나가 현장의 차량 문제였다. 스태프와 장비 차량을 미리 빼놔야 관객들이 입장할 때 혼선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ASAP! 지금이 바로 처리할 때! 평소 같으면 급히 연출부의 다른 누군가를 찾아 대신 말해달라고 했겠지만, 그날은 왠지 그랬다.


 '난 변했어! 내 뒤엔 스피치 강사님과 동기님들이 있다! 할 수 있!'

그리고 무대의 마이크를 집어 들고 말았다.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 지금 뒤에~ 스태프들 차 좀 빼주시면~'

아무도 듣지 않았다. 당황했다.


 '~ 여기 차가 많아서~ 차를 좀~'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이 목소리는, 흡사 시골 동네 이장님이 방송하는 목소리였다. 아니면 계란 장수의 '계란이 왔어요~', 그것과 같았다. 나를 본 몇몇 사람들은, 들었으나 듣지 않았다. 곧 고개를 돌리고 다시 본인들의 일을 계속했다. 이러면 나가린데... 듣다 못 한 정직원 후배가 웃으며 다가왔다.


“아, 선배님ㅋㅋㅋ”


 내게 마이크를 건네받은 그녀의 목소리는 차근차근, 또또랑, 구석구석 콘서트장에 퍼졌다. 그리고 10분도 안 돼, 홍해 갈라지듯 차들이 빠졌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에이씨, 30만 원 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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