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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택 Dec 07. 2023

곤조의 추억

 MBC <성공의 비밀>은 성공한 CEO들의 성공담을, 재연 드라마와 팔로우·인터뷰 같은 야외촬영물로 구성해, 알아보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야외촬영물을 담당했지만, 드라마 촬영일에도 지원을 나갔다.


출처 MBC


 '포스터 칼라'로 유명한 알파색채의 전영탁 회장님 편이었다. <서프라이즈>가 그렇듯, 우리도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하루에 모든 씬을 찍었다. 이를 위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폭풍 촬영을 했고, 아침부터 시작해, 빠르면 새벽 2시, 늦으면 새벽 4시에도 끝났다. 그런 현장에서 조연출과 FD의 능력은 '씬의 준비'였다. 준비라는 건, 다음 씬의 배우 세팅, 장소 세팅, 소품 세팅이었다. 그게 안 돼 대기시간이 생기면 촬영감독님의 불호령이 날아왔다. 그게 아니면 촬영감독님을 달래기 위해 선수 치는, PD님의 불호령이었다. 여하튼, 불호령이 떨어지긴 마찬가지였다.


 그날은 하필 촬영감독님들 중에서도, 가장 입이 거치신 분이 배정됐다. 일단 그분이 배정되면 모든 조연출들의 얼굴이 굳어지는, 그런 화끈한 화술을 가진 분이었다. 동현이와 나, 중호는 촬영 전날 밤, 전략 회의를 했다. 평소대로 현재 촬영 씬 케어는 동현이가, 다음 씬 준비는 내가 맡는다. 대신 복잡한 세팅이 필요한 씬의 준비는, 드라마 경험 많은 동현이가 맡는다. 그때는 내가 동현이와 교체한다. 중호는 양쪽을 오가며 지원한다.  셋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대본을 펼쳐가며, 큐시트의 씬 넘버마다 담당을 정했다. 마지막으로 수차례 소품 체크를 했다. 완벽해! 새벽 2시가 다 돼갈 무렵, 우리 셋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승리의 미소를 짓고, 수면실에 자러 갔다. 4시간 후면, 드라마 촬영의 출발 시각이었다.




 그날은 매우 추웠다. 전날 내린 눈으로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촬영이 진행됐고, 그러다 보니 조금씩 딜레이가 됐다. 우리의 전략은 유효했으나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천재지변이었다. 딜레이 되는 시간만큼 촬영감독님의 얼굴은 굳어갔다. 그렇게, 평소 같으면 촬영이 끝날 새벽 2시가 가까워져도 진행률은 70% 정도였다. 새벽 5시 퇴근 당첨이다. 문제는 그때 발생했다.


 다음 씬은 회장님 역의 배우가, 물감을 이리저리 섞어보며 연구하는, 간단한 씬이었다. 테이블에 팔레트를 펼쳐놓고, 이런저런 붓들을 올려놓고, 알파색채에서 지원받은 물감을 몇 개 열어놓으면 끝..?     


 "????? !!!!!"


 뭐지?! 이게 뭐지?! 왜 물감이 딱딱하지?! 야외세트장에 미리 가져다 놓은 물감이 얼어버렸다. 아니, 이게 얼기도 하나?! 물감통 뚜껑을 다 열었고, 다 얼었다. 이게 뭔 일이래. 당황했다. 녹이자. 녹여야 해! 하지만 그곳엔 물이 없었다. 꼬일 땐 다 꼬인다고, 챙긴 생수까지 다 마셔버렸다. 이거 어떡하지?! 물을 찾으러 가야 하나? 화장실은 겁나 먼데! 때마침, 동현이의 문자가 왔다.


'씬 촬영 완료'


 아씨, 이제 몇 분 후면, 전부 여기로 온다. 화장실에 가는 방법은 포기했다. 급똥에 화장실을 찾아 헤매듯, 고개를 돌려댔다. 물을 찾아야 한다. 물, 물을...


 눈이 보였다.


 대본을 보니 파란색을 많이 썼지, 파란색만이라도 녹이자. 파란색 물감통을 들고 눈을 집었다. 근데, 안 집혀! 눈까지 얼었어! 또 당황했다. 눈 위에서 탭댄스를 추며, 깨진 눈 몇 조각을 물감통에 넣었다. 하지만 '물감은 물감이요, 눈은 눈이로다'였다. 둘은 아무 케미가 없었다. 스태프들이 오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렸다. 와, 지져쓰... 장갑을 벗고 눈 조각을 손으로 쥐었다. 내 뜨거운 손으로 눈을 녹이자. 예상대로 녹은 눈은 손바닥을 적셨다. 옳지, 옳지. 그래 이거야. 소중한 물을 스포이드마냥 물감 위에 짜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물감을 후벼 팠다. 드디어, 베를린 장벽 같던 물감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래. 몇 번만 더 하면 모두 평화를 찾는 거야. 한 세 번만 더하면... 촬영감독님이 도착했다.


"야, 이 개3끼야!"


 그 꼴을 본 촬영감독님은 분기탱천하셨다. 그 꼴을 본 PD님은 눈을 감았다. 그 꼴을 본 동현이와 중호는 말없이 생수를 집어 들고 내게 왔다. 그리고 새벽 5시가 넘어서야 촬영을 마쳤다.

 그 후 알게 됐다. 국산 물감 알파색채의 위대함을. 13년이 지난 지금에도, 몇 번을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다.


알파색채 대단해요!


 하루는 재연 드라마 촬영이 아닌, 회장님 팔로우를 하는 야외촬영 날이었다. 출발 전 메인 PD님과 식사를 했다. 박 PD님이 말했다.


 "영택아, 오늘은 너 혼자 나가라."

 "네? 오늘 ENG 촬영인데요? 혼자요?"

 "너, 혼자 말아올 수 있잖아."


 깜빡이 좀 켜고 들어오시지, 갑자기, 밥 먹다가 입봉을 해버렸다. 그렇다고 스크롤에 연출로 올려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 코너, 이제부터 너 해라'라는 거였고, MP에선 이미 많은 조연출 형들이 그러는 중이었다. 이젠 나도 포함됐다. 어쨌든, 식사 후 다시 한번, 이번에는 담당 PD의 마인드로 촬영 대본을 숙지했다. 하지만 오늘의 촬영감독은 내게 '개3끼야.'를 시전 하신 거친 화술의 소유자. 바로 그분이셨다. 출발 시각이 되어, 빳빳한 A4 지에 새로 촬영 대본을 프린트해 정갈하게 스테이플러를 박고, 촬영감독을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성공의 비밀> 팀의 정영입니다. 촬영 대본 가져왔습니다."

사무실의 TV를 보고 계신 그분의 책상에, 공손하게 대본을 올리고 기다렸다.

 "어, 오늘은 누가 나가냐?  PD가 나가냐?"

 "오늘은 제가 나갑니다."

촬영감독이 TV 보던 얼굴을, 천천히 내게 돌리더니 말했다.

 "내가 왜 너랑 나가."

 " PD님이 오늘은 제가 나가라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분이 소리쳤다.

 "그러니까 내가 왜 너 따위랑 나가냐고!"

 "!!!" 아이고...

 " PD 보고 직접 와서 얘기하라고 해!"


 순탄한 날이 없다. 메인 PD인  PD님에게 그 말을 전하러 가야 했다. 마치, 군대에서 타 소대 최고참이 '너희 소대 내 밑으로 다 데리고 와'라고 시킨듯했다. 우물쭈물하며  PD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알았어. 아휴, 그 형 또 왜 그래."

'끄응' 하며 무거운 몸을 일으킨  PD님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고, 나와 함께 촬영감독에게 갔다.     


 " PD, 입봉을 시켰으면, 메인 PD가 와서 촬영감독한테 얘기를 하는 게 순서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평소에 형, 동생 하는 거 알고 있는데, 촬영 감독이 사무적으로 나오니, 메인 PD님도 정중히 사과를 한다. 그리고 예상대로 얘기가 잘 끝났다. 옆에서, 괜히 고개를 숙이고 이 코미디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ENG 촬영감독이라는 권세에 쓸데없는 진을 뺐던, 2010년이었다.


<성공의 비밀> 야외촬영 VCR 편집 구성안.


 ENG 촬영감독의 권세는, ENG 카메라가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다. 너무 비싸서 방송국만 그걸 살 수 있었고, 방송국에 있는 촬영감독들만 ENG를 다룰 수 있었다. 특권 같은 거였고, PD들은 ENG 아니면 대안이 없었다. 그래서 촬영감독의 곤조가 생겼다.

 그런데 세월이 약이라고,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이 발전했다. ENG보다 훨씬 싸고 때깔 좋은 카메라들이 많아졌다. 싸니까 그걸 다루는 사람이 많아졌고, 그래서 촬영 감독 풀도 넓어졌다. 게다가 그들은 잘 찍었다. 넓은 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본인들을 갈고닦았다.

 PD들은 이제 언제라도, ENG보다 때깔 좋은 카메라로 잘 찍는 촬영감독들과 일할 수 있게 됐고, 곤조 부리는 ENG 촬영감독을 견디며 굳이 일해야 할 이유도 없어졌다. 만약, 외부 촬영감독이 곤조를 부리면, 넓은 풀 안의 다른 인성 좋은 감독과 일하면 그뿐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방송국 본사 PD들마저, 인성 좋고, 실력 좋은 외부 촬영감독과 함께 일하는 시절이 됐다.

  그리고 이 시절, '개3끼야'의 불호령이 있었던 십 년 후, 우연히 현장에서 그 거친 촬영감독님을 마주쳤다. 그분은 말 그대로, 공손해지셨다.

 

 "아이고, 잘 지냈어요?" 고개도, 허리도 숙이고, 악수를 건네셨다. 얼떨결에 악수를 하고, 인사를 했다.

 "아, 예, 안녕하셨어요. 저 기억하세요?"

 "그럼요, 그럼요. 알죠, 알죠. 이런 훌륭한 프로그램도 다 하시고, 고생이 많아요~"

 사람 좋게 웃으며, 내게 존댓말을 하는 그분을 보면서, 적응이 안 됐다. 과거와 현재의 간극이 너무 컸다. 늙어서 변한 걸까, 상황이 변해서 그런 걸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 '곤조'라는 건 비단 촬영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은 아니었다.     


 복귀 후 바로 내게 맡겨진 건 예고였다. 의욕에 차 있었고, 잘 해내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오기 전, 다른 팀 조연출 형이 만들었다는 <성공의 비밀> 예고를 보니 대단했다. 내용은 그렇다 쳐도 '아니 이런 고퀄 CG를 종편실에서 했다고?! 이건 NLE로 해야 되는 건데?!'


 "형, 이거 어떻게 하셨어요?"

 "아, 이거. 여기 NLE 종편실에서 했어."

 "역시!"


 2009년, 드디어 MP에도 NLE가 들어왔다. NLE는 넌리니어 에디팅(Non Linear Editing). 프리미어 같은 컴퓨터 편집이라는 걸 뜻했다. 아직 가편은 1대 1 편집을 하고 있었지만, 종편에 NLE가 도입된 모양이었다.     

 "형이 이 디자인하고 모션 같은 거 다 설명해 주신 거예요?"

 "아니, 감독님한테 콘셉트만 말씀드리면, 알아서 잘해주셔."

 

 대단하신 분이다. 예고 가편본을 들고, 부푼 마음으로 NLE 종편실을 찾았다. 인사를 드리고, 예고 콘셉트를 말씀드렸다. 얘기를 듣던 종편감독님이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네?" 당황했다.

 "모션을 어떻게 주라는 거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빠지시면..."

 "그러니까 그 왼쪽이 몇 시 방향이냐고. 오른쪽은 어디까진데. 다 생각해 왔어야지!"


 잘해주신다고 했는데, FM을 요구하신다(친해지니 잘해주셨다는 건 함정!).

맞다. 내가 잘못했다. 처음부터 AM을 요구한 내가 너무 안이했다. 컴퓨터가 들어왔어도 이곳은 필드였다. <TV 완전정복> 시절, 외부 리니어 종편실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감독님, 여기 디졸브 좀 부탁드립니다."

 "여기 왜 디졸브를 쳐! 컷으로 가도 되는데. 꼭 편집 못 하는 놈들이 효과로 쇼부 보려고 한다니까!"


 그 종편감독님은 곤조가 대단했다. 프리미어에선 수없이 쳤던 디졸브인데, 여기선 그거 하나를 안 해줬다. 하지만 심기를 거스르면 그 순간, 그날 나의 요청은 끝이었다. 종편은 끝내야 하고, 나로서는 그분의 기분을 풀어드릴 화술이 없으니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잘 보이려고 종편 시작 전마다, 그분이 즐겨 피우시던 담배 한 갑을 사서 상납했다. 그런데도 그분은 쉽게 화가 나셨다.


 웃기는 건, 정직원 PD님들이나 성 PD님의 요청은 모두 OK였다는 점이다. 그렇게 사람을 가렸지만 확실히 실력은 있었다. 그래서 고난도 종편이 필요할 때, MP에서는 언제나 이 종편감독님께 일을 맡겼다. 종편실 벽에 붙어있던 그분의 스케줄표는, 한 달 내내 MP와의 일로 늘 빼곡했다. 하지만 그게 지속되니 MP로서는 외부 지출을 줄이기 위해, 내부에 NLE 종편실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일이 끊겼다.


 그 후 2015년, 뜻하지 않게 그분을 뵀다. 특집 프로그램의 코너 PD로 알바하게 됐을 때였다. 회의하러 외주 프로덕션 사무실에 갔는데, 흘깃흘깃, 계속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렸더니 구석 작은 방에 그 종편감독님이 계신 게 아닌가!     


 "아! 안녕하세요." 먼저 말을 걸었다.

 "아... 정 PD... 맞죠?"

알린 적도 없는데, PD란다. 전에는 '편집 못 하는 놈'이었는데. 아니 그것보다 이분도 존댓말을 하신다?!


 "아... 예, 저 맞습니다. 영택이예요."

 "아! 난 또 긴가민가해서. 잘 지냈어요?"

감독님이 내 두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아니, 우리 이럴 사이까진 아니었는데... 말씀 놓으시라고 한 후, 근황을 물었다. 일이 줄어 그전 종편실에선 나온 지 꽤 됐고, 이번엔 당분간 이 프로덕션에 있게 됐다고 하셨다. 그리고 요즘엔 애펙을 배우고 있다고 수줍게 고백하며 덧붙였다.

 "지나가면 좀 들~ 심심해 죽겠어~"


 격세지감이다. 말이며, 행동이며, 예전과 다르게 상당히 힘이 빠지셨다. 그래도 노력은 하고 계시는구나. 평생 종편기만 끼고 사실 것 같던 분이, 새로운 걸 배우고 계셨다. 이미 애펙 새로운  아니었지만.


 며칠 후, 코너 종편을, 거의 10년 만에 그 감독님과 함께했다. 예전 종편기 위에서 날아다니던 손이, 지금은 장님 코끼리 더듬듯 애펙을 다뤘다. 애처로웠다. 하지만 일은 해야 했고, 다른 종편실에서도 그렇듯 몇 번의 요구를 반복했다. 그리고 보고 말았다. 그 눈빛을. 잠깐이지만, 10년 전 그때의 눈빛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10년 전, 종편 내내 계속 그 눈빛을 살폈던 나는 알 수 있었다. 감독님은 화가 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구나. 지금은 감추지만, 상황이 괜찮아지시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시겠구나'


그분과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도 누군가를 통해 소식을 듣지 못했다. 잘살고 계시겠지.




 PD라는 직업도 용가리통뼈는 아니다. 사실 그들보다 더 위태위태하다. UCC 열풍으로 시작됐던 게, 유튜브 시대가 됐다. 누구나 영상을 기획하고, 찍고, 편집한다. 바로 그게 PD다. 그래서 PD 풀은, 촬영감독이나 종편감독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어졌다. PD는 언론고시나 현장의 도제 시스템을 통해서만 만들어진단 건, 촌스러운 옛날 괴담이다.


 그래서 PD는 거의, 언제나, 대부분 상황에서 다른 누군가로 대체 가능해졌다. 그렇다고, '대체 불가한 뭔가를 갖자!'라는 얘기는 못 하겠다. 그건 '노오력! 하면 됩니다'란 말과 똑같이 들린다.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20년 넘게 열심이던 나도, 아직 그 '대체 불가한 뭔가'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정말 극소수를 제외하곤, 지금까지 '이 바닥'에서 본 PD들은 자기 자신만의 뭔가도 없었고, 실력도 비슷했다. 한마디로 그놈이 그놈이었다. 정말 못되게도, 그게 위안이 됐다.


 그리고 그들을 겪으며 가늘고 길게, 롱런하는 방법도 알게 됐는데, 바로 '곤조'라는 걸 부리지 않는 거였다. 그건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요구에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웃으며 참고, 나는 을이기 때문에 받아주는 노예로 살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저, 유치원 때, 초등학교 때 배운 대로 살면 된다. 우린 그때, 나도, 남도, 아프게 하지 말라고 배웠다.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하지 말고,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요구로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은 그저 연을 끊으면 된다. 그럼, 지금 당장 굶어 죽을 것 같아 몹시도 불안하겠지만, 신기하게도 잘 산다.


 다른 직업들도 비슷할 것 같은데, 그놈이 그놈이기 때문이다. '이 바닥'도 그놈이 그놈이란 사실은 모두가 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 그놈이 그놈이니 그냥 계속 같이 간다. 그리고 그걸 '인맥'이라고 부른다. 딱딱하고, 때론 까칠하고, 사회성 없는 나도 그렇게 지금까지, 근근이 달리고 있다.


지금, 이 행운이 실력도 아니고, 지금, 이 행운이 영원한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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