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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택 Dec 08. 2023

정말 좋아합니다

 <성공의 비밀>이 종영했다

 

 당시, MP는 리즈 시절이라 특집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늘 인력이 부족했고, 그래서 다행히도 바로 백수를 면했다. 3개월간, 조연출로 4개의 특집 교양·다큐 프로그램을 하게 됐고, 이때 알게 됐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생각하게 됐다. '어떤 연출을 하고 싶은지'


'LG 싸이언 비보이 챔피언십' 브릿지 VCR 대본


 처음 투입된 건 '대회'이자 '다큐'였다. 당시, LG전자에서는 'LG 싸이언' 브랜드 홍보를 위해 'LG 싸이언 비보이 챔피언십'이란 대회를 기획했다. 그리고 대회와 다큐 제작을 MP에 맡겼다. 다큐는 'MBC프라임-비보잉을 사랑한 아이들'이란 제목이었는데, 대회를 준비하는 비보이들을 취재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우리나라 비보이들은 세계 최고였다. 세계의 각종 비보잉 대회들을 휩쓸고 다니며,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나 같은 조연출 나부랭이 혼자서, 세계 최고란 사람들을 만나도 되는 걸까...'

그들에게 사실 궁금증과 기대보다, 부담을 느꼈다. 그래도 일은 해야 하니까, 혼자서 6미리를 들고, 내가 맡았던 '갬블러크루'의 숙소를 찾아갔다.


 "아! PD님! 안녕하세요! PD님 오셨어~"

 "안녕하세요!" 모두 나를 반겼다.

날 처음 맞아준 멤버가 말했다. 지금은 유튜버로도 성공한 브루스 리, 신규상이었다.

 "아~ 숙소가 좀 너저분해서요. 괜찮을까요? 아~ 정리 좀 하자니까~"

 "아, 괜찮아요. 예예."


 놀랐다. 너저분하다기보단 좁았다. 그 좁은 곳에서 세계 최고인 '갬블러크루' 멤버들이 북적댔다. 괜찮나?... 하지만 그들은 1도 개의치 않았다.


 숙소는 그저 자는 곳일 뿐, 그들의 관심은 온리 '춤'이었다. 세계 최고라는 '갬블러크루' 멤버들은 언제나 연습실에 있었고, 언제나 땀 흘렸다. 저마다 안 됐던 기술을 계속해서 연습했고, 성공하면 멤버 모두가 환호했다. 어렵고 위험한 동작들에 작은 부상들이 이어졌지만, 그들에겐 그게 일상인듯했다. 숙소 마냥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몰두했다.


 더 놀랐던 건 대회 진행을 하면서다. 대회엔 전국 각지의 여러 크루들이 참가했다. '진조크루', '퓨전MC', '리버스크루' 등 모두가 세계 대회 우승을 차지한 팀들이었다. 그런데


 '똑같구나. 이 친구들은...'


 배틀 전, 야외 대기실 거친 아스팔트 바닥에서도 이 친구들은 연습을 이어간다. 모두가 즐거워 어쩔 줄 몰랐다. 홍대 한복판에 설치된 무대에서, 그렇게 연한 기술들을 선보였고, 사람들은 환호했고, 비보이들은 행복했다.

 반짝인다. 그 반짝이는 눈들이 잊히지가 않는다. 다들 내 또래였다. 그동안의 프로그램들을 거치며 난 지쳐갔지만, 이 친구들은 지치질 않았다. 도 100%의 열정. 다들 누군가에게 주장할 생각도, 설득할 생각도 없었지만, '정말 좋아합니다. 거짓이 아니라구요'가 전해졌다.


슬램덩크


 학창 시절, 선생님 몰래 교과서 안에 숨겨 봤던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같은 대사를 했다. 그리고 난 수업 시간에 눈물을 흘려버렸다. 갑자기 그 기억이 났다. 난 그때 왜 울어버렸을까.


 그렇구나. 뭔가를 좋아하는 거, 그거에 몰입하는 거, 그래서 변해가는 거. 성장하는 거... 나 그런 거 좋아하는구나. 이제 알바 시절, 처음 같이 밤을 새웠던 PD님의 물음에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슨 영상이 만들고 싶은데?"

 "성장에 관한 이야기요!"




 대회가 끝난 후엔 <특집 다큐멘터리, 1318 사랑의 열매 캠프>에 참여했다. '1318 사랑의 열매 캠프'는 MBC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개최하는, 청소년 자원봉사 캠프였다. 이 자원봉사 캠프에 참여하는 청소년 중에, 사연 있는 친구들을 취재해서 다큐를 만들었다. 나는 제주 권역을 맡아, 6미리와 촬영 대본을 들고 제주도로 날아갔다.


 촬영 대본을 통해 파악한 제주도의 고등학생 친구는, 집이 어려웠고, 장애가 있는 동생과 함께 살았다. 대본은 어둡고 우울했다. 작가님은 울한 환경의 그 친구가, 봉사 캠프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밝아지는 모습을 그리려고 하시는구나.


 늦은 밤, 비행기에 내려 그 집에 도착했다. 대본에서처럼 허름한 집이었다. 하지만...


 그 안은 밝았다.


 가족 모두는 서로를 따뜻하게 챙겼다. 장애가 있는 동생은 사랑스러웠고, 주인공인 그 친구는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하며 동생을 웃게 했다. 그 아이에겐 장애인 동생이 아닌, 그저 그냥 동생일 뿐이었다. 어떤 그림을 찍을지 비행기 안에서도 줄곧 생각했던 난, 당황했다. 대본대로 가려면 전부 연출을 해야 하잖아... 하지만, 조연출의 덕목은, PD와 작가가 합의한 대본대로 찍어와 편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본에 적힌 첫 그림은 '동생을 간호하며 안쓰럽게 바라보는 주인공'이었다. 머뭇거리며 말했다.


 "동생 분이 좀 누워주시면..."

 "네? 왜요?" 다른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간호하는 모습을 찍어야 해서요..."

 그 친구는 거동이 불편한 동생을 부축해 자리에 눕히고, 동생과 밝게 얘기를 주고받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저... 죄송한데, 말씀... 조금만 줄여주시면... 그리고, 수건으로 동생 분 손을 좀 닦아드릴 수 있을까요?..."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게 뭐지...

 "아... 예..."

 부탁대로, 그 친구는 수건을 가져와 성실히 동생의 손을 닦았다. 그 눈빛은 따뜻했다. 결국 난 그 아이에게, 또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뱉어버렸다.


 "저... 잠시만요..." 그리고 동생이 듣지 못할, 작은 소리로 내뱉었다.

 "정말 죄송한데요... 혹시, 조금 동생을... 안쓰럽게 쳐다봐 주실 수 있을까요..."


 그동안 이런저런 거짓말들을 잘해왔던 나였지만, 이번에는 말도 못 할 자기 혐오감이 밀려왔다. 왜 나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왜 나는 밝고 사랑스러운 집을, 어둡고 우울하게 만들려고 하는 거지? 이건 조작인데? 이게 연출인가?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잘하면, 연출을 잘하는 건가?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지?...


 촬영이 끝난 후, 그 친구의 집을 도망치듯 나와서도 이런 일들은 계속됐다. 봉사활동 촬영을 한 제주도 다운증후군 센터에서도, 원래 밝던 센터의 친구들은 어두워야 했으며, 1318 친구들이 오면 밝아져야 했다. 뒤이어 참여한 <고맙습니다. 작은 도서관>이란 프로그램에서는, 그들은 행복했던 다문화 가족을 - 작은 도서관이 생기자 행복해지는 - 그런 식으로 그려야 했다.


 <1318 사랑의 열매 캠프>와 <고맙습니다. 작은 도서관>은 시청자 모금 방송이었다. 팩트가 어쨌든, 불쌍한 그림을 봐야 시청자들의 지갑이 열려서였던 건가. 크게 보면, 이분들을 발판 삼아 그게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어서고, 그게 기획 의도라서 그랬던 건가. 애써 이해를 했지만 자기혐오는 사라지질 않았다. 그리고 생각하게 됐다. 나는 '어떤 연출을 하고 싶은지'


 이때의 경험들 이후로, 참여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가 즐겁지 않은, 그런 연출은 '조작'이라고 여겼다. 촬영장에서 '조작'을 지시하면, 촬영이든 편집이든 간단히 끝내버리고 과를 낼 수 있다. 유혹이 산재했다. 하지만 그런 유혹에 넘어가면, 언제나 정신적·신체적으로 대미지가 왔다. 그래서 내게 '연출'이라는 건, 이전과는 다른 레벨로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대본과 다르더라도, 촬영장에서 '조작'을 줄여 진실을 더럽히지 않으면서, 어떻게 '기획 의도'를 지가며 더 재미있게 편집할 수 있을까. 그래야 PD님도, 작가님도 설득할 수 있을 텐데. 그때부터 편집실에서 새우는 밤이 더 늘어났고, 촬영 영상들과 편집본들은 PD님과 작가님들에게 깨졌으며, 답답함에 서점 들락거렸다. 하지만 오랫동안 답은 찾을 수 없었다(훗날 얻은 제 나름의 답은, 브런치북 '예능 편집 기본기'에 담았습니다).


 그렇게 특집 프로그램들을 전전한 난, 다시 레귤러 프로그램인 <해피타임> 팀에 들어가게 됐다. 이번엔 <명작극장>이 아닌 <해피타임머신>이라는 신설 코너를 맡게 됐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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