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로 <뽀뽀뽀> 메인 PD님은 본인과, 나와, '골방의 왕'이었던 조연출과의 과거를 깔끔하게 청산하셨다. 그건 이미 7년도 더 지난 과거였고, <뽀뽀뽀> 메인 PD님은 이제 <TV 속의 TV> 메인 PD님이 됐다. 그리고 <해피타임>에서 방출된 내게 콜을 보냈다.
출처 MBC
합류한 팀엔 세 명의 후배들이 있었는데, <뽀뽀뽀> 조연출을 보내버린 작은 여자아이도 있었다. 이거 <뽀뽀뽀> 사단이구나. 하지만 세월은 흘렀다. 뉴요커 마냥 시크했던 메인 PD님은 다정해지셨고, 말씀도 조금 많아지셨다. 그리고 나는 PD님의 뒤를 이어 두 번째, 그 아이는 세 번째 경력자가 됐다. 감회에 젖었다.
하지만 그 감회는 급속 건조됐다. <TV 속의 TV>는 옴부즈맨 프로그램이었다. 옴부즈맨 프로그램은 자사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와 비평을 하는 방송사 의무 프로그램인데, 사실상 홍보에 힘썼다. 그래서 난 다시 6미리를 들고, <TV 완전정복>에서 그랬던 것처럼, 혼자서 남의 촬영장을 전전하게 됐다.
PD님은 내가 담당한 코너를 '흡족'까진 아니지만 '쏘쏘' 하셨고, 모두가 여자아이들인 후배들은 착했다. PD님도 여자니, 나 외엔 모두 여자인 팀이었다. 하지만 곧, PD님은 날 찾을 때는 늘, 후배들에게 '영택이 언니, 어딨니?'라고 하셨고, 그렇게 난 언니가 돼서 <TV 속의 TV>는 완전한 여자팀이 됐다.
담당 작가님과 나눴던 '남의 촬영장을 전전하는' 촬영 구성안 메일.
다른 팀들에서처럼, 희한한 스트레스도 없었고, 무난한 1년이 흘러갔다. 매주 촬영하고, 편집하고, 내보내고, 업데이트 중단된 방송 기계로 안주했다. 그래도 성인방송 채널과는 업무 레벨 자체가 달라서, 제작 일정만 소화해도 한주, 한주가 금방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MP에서부서 전체 회식을 했다. 프리랜서 조연출들까지 불렀다. 부장님께서 술잔을 나누며 말씀하셨다.
"너희들도 맨날 이렇게만 지내면 안 돼. 메인도 해봐야지. 기획안을 좀 써서 갖고 와봐."
"!!!"
충격을 받았다. 그건 일하는 동안 어떤 PD님들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이미 우린 모두 아는 낡은 사실이었다. 내용은 충격이지 않았으나, 그 말이 부장님 입에서 나왔다는 게 충격이었다. 여기서도 '프리랜서에게 기회를 주겠다'라는 선언을 하셨구나.
다음날부터 뭔가에 홀린 것처럼 프로그램 기획안을 쓰기 시작했다. 촬영이 끝나도, 편집이 끝나도, 휴일에도 썼다. 디자인 일을 하던 한 명뿐인 친구를 집에 앉혀다가, 디자인 작업까지 부려 먹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엔 이가 흔들리고, 얌전히 매복해 있던 사랑니에 염증까지 생겨서 뽑아냈다. 지옥을 맛봤다.
친한 작가에게 보여주고, 코멘트도 받고, 수정도 하고, 그렇게 한 달 동안 일곱 편의 기획안을 완성했다. 그리고 한밤중, 메모와 함께 부장님 책상에 올려놨다. 극내향인 나로서는 낮에 직접 드릴 수가 없었다. 부장님께 가려면 정직원 PD님들 자리를 뚫고 지나가야 했는데, 그건 마법의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하러 가는 길처럼, 내겐 험난했다. 그 시선들과 '그게 뭐냐?'며 혹시라도 있을 질문들을 받아내는 건, 그때의 내겐 무리였다.
다음 날, 부장님께는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못 보셨나? 또 도둑놈처럼 모두가 퇴근한 밤에 염탐하니, 흔적이 있었다. 봤네, 봤어! 하지만 그다음 날도, 그다음 주도 부장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애가 탔다. 메모가 날아갔나? 못 봤을 수도 있어. 메일을 보냈다.
'읽지 않음'
이제 난, 도둑놈이 아닌 스토커가 돼서, 수신확인 창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헤어진 애인에게 '자니?'란 카톡을 보내놓고, 카톡창에 1이 언제 없어지나 신경 쓰는 꼴이었다. 그 집착은 부장님이 메일을 확인한 다음 날에서야 끝났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도, 리액션은 없었다.
그 후, 정직원 후배 조연출 책상 앞에서 얘길 나누다, 우연히 그 친구가 쓴 기획안을 봤다. 너도 벌써 기획안 쓰는구나? 개편 때마다 기획안 제출이 정직원 업무 중 하나라고 했다. 그걸 보고 벙쪄 버렸다. 그냥 워드로 쳐서 낸 그 짧은 기획안엔, 뭐가 부족한지, 뭐를 보완하면 좋을지, 그런 부장님의 코멘트들이 달려있었다. 야, 이거 봐라... 아주 빨간펜 선생님이셔. 공사다망하셨네.
"잘 봤다. 고생했네."
피드백까진 황송하고, 아무리 개판인 기획안이라도, 그냥 이 말 한마디 듣고 싶었다. 당연히 처음 쓴 기획안이 통과돼서 메인 PD가 될 거라곤 1도 생각 안 했다. PD로 스크롤에 올려줄 거란 생각도 안 했다. 난 그렇게까지 순진한 놈은 아니었다. 그냥, 가장 높은 분에게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조연출 나부랭이 중에, 이런 거 쓸 줄 아는 애도 있구나. 프리랜서 애들, 그냥 나부랭이는 아니네'
뭐, 그런 거였다. 또 얼마 후엔, 그 정직원 조연출 후배에게 이런 얘기도 들었다.
"선배님, 최 PD님한테 뭐 밉보인 거 있으세요?" 뭐지?
"응? 아니? 뭐 없는데? 왜?"
"선배님 쓰신 기획안 있잖아요. 사무실 어디서 보시고 이거 어떤 작가가 썼냐고 그러시더라고요."
응? 작가? 최 PD님이 그걸 봤다고? 내 기획안이 사무실에 굴러다녀? 후배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영택 선배가 썼다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후배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걔가 이런 걸 어떻게 쓰냐고. 작가가 썼겠지라고..."
하아... 그러고도 최 PD님은 내게 '네가 쓴 거 맞냐'는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불공정한 더러운 세상... 기획안에, 이름 석 자, 궁서체로 아주 오바로크를 쳐놓을걸.
피드백이 없어 다른 부장님께 드렸던 기획안 메일. 역시나 리액션은 없었다.
점점 '불공정'이란 거에 미쳐가기 시작했다. '이건 공정한가, 아닌가'를 뒤지고 다니며 '씩씩'대는 불공정 판별사가 됐다. 이런 내게 걸렸던 가장 큰 불공정은 '연출' 크레딧 문제였다.
코너 입봉을 하고도 조연출 딱지를 떼지 못하던 형들은 이제 모두 연출로 스크롤에 올라갔다. 업무와 직함의 일치를 이뤄냈다. 하지만 난 아니었다. 코너 입봉을 한 지 오래지만, 이제 방송 경력 9년 차가 된 난, 아직도 조연출 딱지를 떼지 못했다. 본의 아닌 조연출 최고참이었다.
당시 프리랜서가 '연출' 크레딧을 다는 건, 체계가 없었다. 군대가 병사 육성하는 것처럼 도제 시스템이었지만, '너, 8개월 버텼으니까 상병 해!, 너, 18개월 버텼으니까 전역해! 이제 연출해!' 이런 게 없었다. 그리고 다른 모든 회사처럼 당연히, 프리랜서들에겐 인사고과나 승진시험도 없었다. 인력의 70%를 프리랜서로 굴리는데도, 프리랜서들에겐 객관적인 기준으로 계급 상승할 장치가 없었다. 대신 주관적인 기준이 있었다. PD님들과 친해지거나, PD님들과 친한 사람들의 추천을 받는 것이었다. PD님과 술 한잔 거나하게 걸친 다음 날, 어떤 형은 '연출'이 돼 있었다. 나는 그런 외향인의 능력이 매우 부족했다.
기분의 문제도 그렇지만 '연출'이 된다는 건 또 다른 의미로 중요했다. 페이의 차이였다. 프리랜서에게 당연히 연봉협상 따위는 없었다. '조연출'은 팀마다 다른 제작비나 업무강도에 따라 페이가 찔끔찔끔 조정되기만 했고, '연출'에게만 페이 협상의 명분과 자격이 생겼다. 보고, 듣고, 겪어온 게 그런 거라, 이런 상황은 이 바닥에선 당연하고, 내가 아직 조연출인 건 나의 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여겼다.
MP는 잘 나갔다. 특집 등 신규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외부 프리랜서 PD들이 들어왔다. 그동안 나 같은, 기존 프리랜서 내부 인력을 돌려가며 제작하는 데 한계가 온 것이다. 이들과 작업하며 깨달았다.
"야... 이건... 불공정하다."
성 PD님 후, 처음 같이 하게 된 프리랜서 PD님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분들은 MBC 자회사라는 온실이 아닌, 툰드라 마냥 거친 야생에서 살아오신 분들이구나. 기대했다. 그리고 실망했다.
외부 프로덕션에서 '연출' 크레딧을 얻고 들어온 그들은, 촬영이든 편집이든, 나보다 그닥 나은 게 없었다. 그렇다고 경력이 나보다 많은 것도 아니었다. 후배인데 '연출'이고, 나는 '조연출'이다. 그리고 '연출'이라 나보다 페이도 세다. 하지만 '연출'이었던 그들보다 '조연출'인 내가 방송 분량을 더 많이 말고 있다. 이게 뭐지...
이런 기현상은 당시, 외부 프로덕션 상황 때문이었다. 방송판은 어디나 고됐지만, 그나마 MP는 온실이 맞았다. 배차팀도 따로 있고, 부족한 물품도 필요한 만큼 나왔다. 반면, 외부 프로덕션은 촬영을 하러 가도 자차로 가야 했고, 물품도 아껴야 했다. 인력 이탈을 막기 위해, 외부 프로덕션에선 FD라는 게 없었고 바로 조연출이었다. 그렇게 1~2년 버티면 입봉 시켜 '연출' 크레딧을 달아줬다. MP는 자회사라 공중파 시스템을 반영했고, FD부터 기어 올라가야 했고, 9년 차 조연출이란 나 같은 것들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불공정이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내 레이더망에 걸린 또 다른 불공정은, 팀 간 페이 차이였다. 당시 나는 <TV 속의 TV> 세컨으로 제작비 정산을 맡고 있었다. 우리 팀은 MP 내에서 제작비가 가장 적었지만 또 가장 많이 남는, 가성비 넘치는 프로그램이었다. 비용이 적게 드는 6미리나 자료 편집 위주의 코너들이라서 가능했다. <TV 속의 TV>에서 남은 제작비로, 제작비가 많이 드는 <서프라이즈> 같은 프로그램이 유지됐다. 효자 프로그램이었지만, 인건비는 불효막심 패륜아였다.
<서프라이즈> 같은 말도 안 되게 빡쎈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우리 애들이 다른 팀 애들보다 덜 힘든 게 아니었다. 나는 MP 내, 이 팀 저 팀 다 겪은 장돌뱅이라서 비교 가능했다. 예를 들어, 촬영 없이 편집만 하던 <해피타임> 조연출 애들보다 우리 애들이 밤을 더 새웠고, 그 와중에 6미리 들고 시청자 거리 인터뷰는 물론, 전문가 인터뷰까지 따왔다. 그렇다고 편집 난이도가 그 팀보다 낮았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 애들은 그 애들보다 페이가 적었다. 착해빠진 우리 애들은 그걸로 내게 불만을 표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이미 외부 PD 문제 등 일련의 사건을 겪어온 내 속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PD님과 딜을 쳐야겠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짜기 시작했다. 내 협상 능력은 덜 떨어졌기 때문에, PD님의 예상 답변들을 생각하고, 혼자 리허설하고, 독대를 신청했다.
"안 돼, 영택아~ 우리 팀이 제작비가 없잖니."
PD님이 말했다. 예상 답변이다. 주섬주섬 책상 위에 프린트한 자료를 깔고, 우물우물 말했다.
"그런데 이거 한 번만 봐주시면... 여기 보시면... <해피타임> 팀은 저희보다 많이 안 남는데도, 조연출들 페이가 더 높거든요..." 자료를 훑어보신 PD님이 말했다.
"네 페이가 낮네... 올리려면 너를 올려줘야 할 것 같은데. 회당 10만 원 올려줄게. 어때?"
PD님이 공을 넘기셨다. 하지만 이 또한 예상했다. 회당 10만 원이면 한 달에 40만 원.PD님으로선 세 명 올리는 것보다 한 명 올리는 게 낫겠지. 이제 거짓말을 할 차례다.
"그것보다도요... 요즘 애들도 좀 불만이 쌓여가는 것 같아서요."
"그래?" 행여나 인력들이 빠져나가는 건 곤란한 문제다.
"그래서 그런데... 혹시 말씀하신 40만 원을 나눠서, 애들 조금씩 올려주는 건 어떨까요?"
잠깐 생각의 시간을 가지신 PD님이 말했다.
"...그럼 너는 어떻게 하니?" 그래, 이제 다 왔다.
"전 상관없습니다. 근데 혹시..." 그리고 준비한 카드를 꺼냈다.
"...다음 회부터 '연출'로 올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어거지로 9년 만에 '연출'이 됐다. 그 똑똑하신PD님은 얄팍한 내 계략을 알고도 속아주셨고, 그것도 모자라조연출 애들은 물론, 내 페이까지 올려주셨다. 죄송합니다, PD님.거짓말해서요. 미안하다, 얘들아. 내가 '연출'되려고 너희들을 팔아먹었어.
9년 만에 연출로 올라간 첫 방송. 출처 MBC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프로그램 말미에 흐르는 스크롤에 내 이름이 연출로 흐르는 걸 보면서도, 아무 감흥이 없었다. 기쁘지도, 감격스럽지도 않았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달려왔나... <해피타임> 팀에서 정우 형이 연출 됐을 때 그랬었지.
"형, 축하해요. 좋으시겠어요."
"그냥... 뭐... 모르겠다." 그때 정우 형의 웃음은 썼다.
'연출' 직함을 단 이후에도, 우린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그저, 그동안 해오던 일을 계속할 뿐이었고, 그렇게 1년 11개월을 <TV 속의 TV>에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