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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택 Dec 09. 2023

흑화

 <파이널 어드벤처>가 끝났지만, 재충전도 안 된 그때, MP의 한 특집 프로그램에서 콜이 왔다. 사무실에 가서 얘기를 들었다. 3분의 1 정도 말아주면 된단다. 마지막엔 페이 얘기가 나왔다. 그동안 주는 대로 받았지만, 난 아직도 비공인 '불공정 판별사'였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었다. 그 팀의 외부 연출이 나보다 연차가 낮은데도, 페이가 세다는 사실을. 그 팀의 계약직 선배는 역시나 내게, 외부 연출보다 낮은 페이를 던졌다. 이 선배는 정규직도 아니고 계약직 PD인데, 이 상황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은 들겠지.


 "선배님... 그 친구가 저보다 연차가 낮은데... 그래도 그 친구만큼은 받아야 될 거 같은데요."

선배가 바로 답했다.

 "안 되지."

 "네?"

 "그 친구는 자기가 받던 페이가 있잖아. 너도 여기서 받던 페이가 있는데, 그렇게 달라고 하면 안 되지."


 업무량이 같은데, 안 돼? 더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안 돼? 그동안 싼값에 굴러줬는데, 그게 내 가치라고?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어김없이 떨리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그 선배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싫으면, 너도 나가서 몸값 좀 높여 오지 그랬어?ㅋㅋ"


 웃어? 결국 난 이딴 말 들으려고, 프리랜서란 놈이, 이렇게 회사에 충성했나. 사실, 누가 충성하라고 강요한 사람도 없었다. 그냥 내가 이곳을 사랑해서 그랬던 거지. 그 사랑과 비례해 증오도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도 관심 없었지만, 이 조직은 내게 애증 관계가 됐다. 그리고 난 흑화했다.


'그래. 미친 듯이 높여올게. 여기서 딱 기다려'


 <파이널 어드벤처>는 특수 상황이라 논외로 쳤고, 선배는 그곳에서의 내 가치는, 마지막 했던 프로그램의 페이라고 했다.


 "너, 회당 55 받았잖아~"

<TV 속의 TV>의 페이였다. 10년 차, 회당 55만 원. 한 달에 방송 4회, 풀로 나가면 월 220만 원.


 2013년. 그래, 그래, 그래. 220만 원부터 시작이다... 그리고 난 그곳을 떠나 밖에서 구르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회당 55만 원에서 회당 120만 원까지 높였다. 월 220만 원에서 월 480만 원을 받게 됐다. <파이널 어드벤처>가 끝난 2013년 8월부터 2015년 3월까지, 정확히 1년 8개월 걸렸다.




 사실 나는 흑화만 했을 뿐, 어쩔 도리가 없었다. 혼자서 씩씩대며 그 선배의 콜을 거절한 게 다였다. 그때 <파이널 어드벤처>에서 함께한 편집감독님이 손을 내밀어줬다.


 "혹시 리얼리티 물 같이 해볼래요?"


 편집감독님은 '딜의 여왕'이었다. 감독님은 내 연차를 밀어붙이며, 나 대신 제작사와 딜을 쳐줬다. 그리고 내 페이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단박에, 회당 55만 원에서 회당 90만 원으로 뛰었다. 하지만 난 죄송하게도, 그녀에게 보답하지 못했다. <파이널 어드벤처>의 번아웃 상태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흑화의 각오가 부끄러울 정도로 유리 멘탈이다. 당시 투입된 프로그램은, CJ XTM 채널에서 방영된 '강철부대' 같은 군대 리얼리티 물이었는데, 겨우겨우 1회를 마치고 얘기를 꺼냈다.


 "저... 감독님. 저... 진짜 죄송한데요... 못할 거 같아요..."

 "아... 진짜요?..." 그리고 우리 둘은 말이 없었다. 침묵을 깬 건 감독님이었다.

 "괜찮아요. 여기 처음에 얘기했던 거랑 말이 계속 달라져서 저도 나가려고요. 같이 나가요."


 나 부담 주지 않으려고 그런 결정을 하셨다... 동갑이지만 정말 대인배구나... 너무 죄송하고 고마웠다. 그 후, 감독님과 함께하진 않았지만, 감독님은 계속해서 일을 연결해 주셨다.


 "영 피디님, JTBC에서 패션 디자이너들끼리 서바이벌하는 프로그램 있는데 해볼래요? 지금 방송 나가고 있는데, 마지막 두 편만 말아주면 된대요. 페이도 회당 100만 원이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제가 딜 쳐놨어요. 한번 가셔서 얘기라도 들어보세요."


 나는 한마디도 안 했는데 알아서 몸값을 높여주신다. 게다가 내 비루한 지구력까지 고려해서, 짧은 맞춤형 일감들을 연결해 주신다. 정말 엄청난 은인이다. 그래서 MP에서 나온 초반에는, 편집감독님이 소개한 일들로 외부 프로덕션에서 리얼리티 물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당시 난, <성공의 비밀>과 <파이널 어드벤처>를 함께한 중호와 둘이서 팀을 이뤄 다녔다. 그런데 일부분만 말아주기를 원하는 현장은, 역시 문제가 있었다. 열악한 환경으로 PD들이 도망가거나, 편집이 노답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내가 장거리 선수보단 단거리 선수라 다행이다. 금세 지쳐버렸지만, 환경이 열악하든 어쩌든 NO 상관이었다. 단기간이라면 미친 듯이 불태웠다. 중호와 나는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리얼리티 예능물 중에서도 어렵고 더러운 일에 트레이닝 됐고, 어느새 갑자기 들어와서 치고 빠지는 게릴라 특공대 팀이 됐다. 그 와중에도 MP에선 꾸준히 콜이 왔다. 그러다 날 흑화시킨 그 선배에게도 콜이 왔다.


 "요즘 잘 나간다며? 프로그램 하나 있는데 사무실 한번 와라."

 "네, 알겠습니다." 그래, 얘기나 들어보자.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얘기 후, 이윽고 페이 얘기가 나왔다.


 "요즘 얼마 받니?"

 "100이요. 회당 100만 원."

 "!!!" 선배는 말을 잃었다.


 "...몸값 높여오라고 하셨잖아요?"

 "그렇긴 한데... 널 그렇게 줘버리면, 여기 계속 있었던 네 선배들은 뭐가 되냐..."


 야아아~ 이건 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냐~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냐~ 누군 계속 거기 없던 사람이었냐~ 높여 오래서 높여 왔더니, 이젠 형평성 문제를 걸고넘어진다.

 어쨌든 이제야, 공정해졌다. 1년 걸렸네. 어차피, 나보다 연차 많고 친한 형들보다 많이 받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 선배 얘기나 들어보려고 온 거니까, 목적은 달성했다. 그리고 말했다.     


 "안 할게요."




 그 이후, SBS <SNS 원정대 일단 띄워>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SBS 교양국에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맞춰 기획한 'SNS만을 이용해서 해외 여행을 할 수 있을까?'의 답을 찾는 여행 리얼리티 물이었다. 외부 인력으로 성 PD님이 투입됐는데, 연출팀으로 함께 하자고 콜이 왔다. 게릴라 특공대가 아닌, 1회부터 종영까지 맡게 된 리얼리티 물은 이게 처음이었다.


출처 SBS


 브라질로 2주간 출장을 갔다. 두바이를 거쳐 이틀 가까이 날아가 도착한 브라질 공항에서, 현지 코디분이 주의사항을 말했다. 카메라를 들고 혼자 다니지 말 것, 강도의 표적이 된다고 했다. 처음엔 겁났다. 실제로, 양손에 카메라를 든 촬영감독이 차고 있던 금목걸이를, 소매치기가 매처럼 낚아채 간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고된 촬영이 계속되니 두려움도 무뎌지고, 난 그곳이 너무나 좋아졌다.


브라질의 초승달


 남반구의 누워있던 초승달이 기억난다.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해방감에, 해변의 타국인들처럼 웃통 벗고 혼자 거닐었던, 코파카바나 해변이 기억난다. 중호와 파도 소리를 들으며 누워있던, 코파카바나 백사장이 기억난다. 좋아했던 노래 <이파네마 소녀>를 틀어놓고 봤던, 이파네마 해변의 노을이 기억난다. 아무도 없던 밤, 중호와 함께 얘기를 나누며 걸어왔던, 조금은 무섭지만 흥분됐던 브라질 그 거리가 기억난다. 배우 김민준 님이 '저기서 먹으면 끝내준다'며 같이 가자고 해주신 숙소 1층 테라스에서, 아침 바다를 바라보며 만들어 먹었던 샌드위치가 기억난다.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숙소에서 촬영 데이터를 백업받던 밤이다. 매일 밤 여러 대의 노트북을 켜놓고 그날의 촬영본을 백업받으면서, 누자베스의 <Aruarian Dance>와 <After Hanabi>를 틀어놨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 노랫소리, 덥지도 춥지도 않았던 온도, 오늘도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감과 노곤함, 그 모든 것들이 뒤섞인 방에서, 아무 말도 없이 각자 널브러져 있던 나와 중호와 SBS PD님. 이상하게 이국땅의 멋진 풍경들보다, 그게 더 기억이 난다. 그립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선 <파이널 어드벤처>의 악몽이 그대로 재현됐다. 성 PD님이 세팅했던 편집팀은 1회 편집 후 사라졌고 <파이널 어드벤처>처럼 촬영만 약속했던 중호와 난 편집에 투입됐다. 성 PD님은 하루 동안 안 보이시더니, 어디선가 에디우스를 배워 오셨다(SBS 교양국은 NLE 프로그램으로 에디우스를 썼다). 그리고 우리 셋은 편집을 나눠했다.

 하지만 성 PD님은 본인 부분을 또 <파이널 어드벤처>처럼 만드셨고, 작가님들은 난리가 났고, 수정이 넘쳐났고, 성 PD님은 반박했다. 작가들 말은 틀렸다, 그러면 안 된다, 뭘 몰라서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의 수정을 죽어가던 우리에게 넘겼다. 종영까지, 듣기 싫은 시사엔 참석하지 않고, 중호와 나만이 있었던 한밤중에 슬쩍 와서 편집하시고, 동이 트기 전 가버리셨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했다. <파이널 어드벤처>에서 NLE 할 줄 모른다며 '모두의 마블'에 매진했던 그 선배와는 역시 격이 달랐다. 나이도, 경력도 훨씬 많은 대선배인데도 여건이 안 되면, 본인이 직접 책임지는 모습이라도 보이시려고 했다.


당시 짰던 <SNS 원정대 일단 띄워> 후반작업 스케줄


 어쨌든 결국, 마지막 날은 왔다. 중호와 나의 역할은 2차 편집까지였고, 최종회의 2차 편집본을 넘겼으니 이젠 끝난 거다. 다 털었다. 어김없이 번아웃이 왔다. 중호에게 말했다.     


 "중호야, 난 내일 일본 갈 거야."

 "네?"

 "도피 겸 여행 겸 여친이랑 오사카 가기로 했어. 우리 할 일은 끝났으니까, 혹시 SBS에서 뭐 해달라고 연락 와도 하지 마. 그럼 방송 날까지 계속 끌려다니게 되니까.”

 그리고 당연히 SBS와의 연은 끊겼다. 이런 사람과 누가 같이 일하고 싶겠어. 나 같아도 안 할 거다.



P.S. SBS PD님, 전화해 주셨는데 일본 지하철 안에서 받아 죄송해요. 지금 생각하면 브라질에서 함께한 추억도 있었는데, SBS 주차장에서 밤낮없이 제 온갖 푸념도 다 들어주셨는데... 그땐 제가 한계였어요. 죄송합니다. 미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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