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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택 Dec 05. 2023

단란주점 도우미

학교로 돌아갔다


 KBS로 떠난 조연출 형의 조언대로, 9개월간의 <TV 완전정복> 조연출 생활을 끝내고, 복학했다. 휴학한 지 1년 6개월 만이었다. 학교는 삭막했다. 그나마 알던 신방과 동기들은 모두, 일반 대기업 공채나 공무원 고시 준비를 했다. 낯설었다. 학교는 다른 세상이었고, 나 역시 다른 세상에 살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곧 <해피타임> 팀에서 콜을 받았다.


  <해피타임>엔 MBC의 예전 드라마를 압축 편집한 <명작극장>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주말 동안 <명작극장> 코너의 1차 편집을 맡아달라고 했다. 월급은 100만 원이었다. <뽀뽀뽀> 8개월간 FD로 월 80만 원, <TV 완전정복> 9개월간 조연출로 월 120만 원을 받았고, 다시 100만 원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촬영도 없이 주말만 일하고 100만 원이라니. 그리고 계속, 이 세계 사람들과 연을 이어갈 수 있다니.


<해피타임 명작극장> 방송 리스트.


 "이번 주 드라마는 뭐예요?"

 "응... <인어아가씨>인데... 테이프는 빌려놨어." 정우 형이 말끝을 흐렸다.

 "헉!"


 미니시리즈는 보통 16부작이었다. 하지만 <인어아가씨> 같은 일일드라마는 기본 100부작이 넘었다. 편집실에 들어가니 247권의 <인어아가씨> 테이프가 쌓여있었고, 정우 형은 구성안과 수고하란 말과 씁쓸한 미소를 남기고 쉬러 갔다. 내가 맡은 1차 편집이란 건, 작가님의 구성안을 참고 삼아 그 테이프들을 러프하게 줄이는 것이었다. 내가 주말 동안 90분짜리 디지베타 테이프 한두 권으로 줄여놓으면(1차), 다음 타자인 조연출 정우 형이 그걸 30분 정도로 줄였다(2차). 그리고 그걸 또 메인 PD님이 15분 정도로 줄여 완성했다(최종).


 편집실 지박령이었다. 학교를 파한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혹은 월요일 새벽까지 편집했고, 월요일 강의는 갈 수 없는 날이 많았다. 나중엔 출석 일수 때문에 학점이 펑크 나서 졸업도 간당간당했다. 그래도 좋았다. 한밤중에 정우 형은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나 삼각김밥 같은 주전부리를 사 들고 자주 찾아왔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받아놓고,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둘이 TV를 보며 얘기를 나누는 시간도 좋았다.


 "아휴, 저게 뭐냐."

 TV의 케이블 채널에선, 핫한 탤런트 '김태희'에 대해 취재하는 방송이 나왔다. '김태희'를 찾으러 서울대에 갔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다. 실패! 그녀가 자주 출몰한다는 장소에 가봤는데, 저것은! '김태희 부동산'이라고 적힌 간판. 가봤지만 아무 관련이 없었다!


 "저런 것도 방송이라고 나온다..." 형과 나는 한탄했다.     

 MP에서 공중파 방송을 제작하는 건, 시사의 기준이 높았다. 조연출이 편집한 영상들엔 지적과 수정이 끊이질 않았다. PD님들은 '말 편집'을 했고, 직접 행하는 건 조연출들이었다. 하지만 보상은 달랐다. 정직원 PD님들은 근무 외 수당을 올렸고, 프리랜서인 조연출들은 그보다 배 이상의 시간을 일해도 정해진 급여뿐이었다. 조연출 모두, 일한 시간만큼 벌면 재벌 됐을 거란 얘기들을 씁쓸히 나눴다.


 더 씁쓸한 건, 이곳에서 프리랜서는 메인 PD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당시 상황 그랬다). 흡사 진골, 성골이었다. 기획과 제작은 프리랜서가 하더라도, 메인 PD라는 왕관은 경력 상관없이 정직원 차지였다. 잘 나가는 성 PD님조차도 <TV 완전정복>에선 세컨 PD일 뿐이었다. 대부분 방송사가 그랬다.

 그건, 프로그램에 문제가 생기면 프리랜서가 아닌 직원만이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인데, 20대인 그때는 그게 보이지 않았다. 편협했다. 내가 만들어도 다른 사람 이름이 메인으로 나간다고? 불공정해! 그리고 우매했다. 어떤 영상을 만들겠다는 고민도 없이, 그저 메인 PD라는 타이틀에만 눈이 멀었다. 어쨌든


 "영택아, 정직원이 최고다." 정우 형이 덧붙였다.

 "채널 가진 방송사 정직원이 최고다. 본사 비위 안 맞춰도 되고."

동감했다. 그렇게 내겐 잘못된 환상이 자리 잡혔다. 그리고 그 환상을 좇기 시작했다.     


 '일단 뭐가 됐든, 채널 가진 방송사의 정규직 PD가 되어야 한다'




 <해피타임> 일을 계속하며, 지도교수에게 사정해 겨우 졸업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종교방송에 지원했다. 난 무교였지만, 독실한 신자로 가장했다. 그리고 시험과 면접을 봤다. 그리고 붙었다. 난 정규직 PD가 됐다.


 "너, 이력서 보니까 MP에서 일했더라?" 종교방송의 본부장님이 말씀하셨다.

 "지금 부장 있지? 그전 부장이 나였어."

 "아!! 예예."


 본부장님은 내가 MP에서 일했다고 하니, 예전 생각나서 뽑았다, 경쟁률이 130대 1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정년이 없어 좋다고 말씀하셨다. 60살이 됐든, 70살이 됐든, 일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으니 걱정 말라는 말과 함께. 난 거듭 감사했다. 그리고 제출할 서류들을 떼러 의기양양하게 MP에 갔다. 조연출 형과 누나들은 물론, 정직원 PD님들도 축하의 악수를 건넸다.


 "그 형, 나랑 같이 일했었어.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PD님."


 그렇게 모두의 축복 속에 첫 출근을 했다. 한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었고, 몇 개의 스튜디오까지 있었다. 이제 여기가 집이야. 설렜다.


 "오늘부터 함께 할 정영 씨입니다." 본부장님이 전체 회의에서 모두에게 날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정영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20대 후반의 남자를 소개받았다. 내 사수라고 했다.

 "MBC에 있다 왔다며?"

 "MBC 프로덕션이라는 자회사에 있었습니다."

 "그래? 잘하자."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님."


 오후엔 스튜디오 녹화 견학을 했다. 부조에서 컷팅 중이신, 아직은 누군지 모를 선배님 뒤에서 녹화를 지켜봤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컷을 넘기게 되겠지. <뽀뽀뽀> 녹화일이 생각났다.     


 "투 컷! 원 스탠바이! 원 컷!"


 <뽀뽀뽀> PD님은 컷을 외칠 때마다, 기깔나게 손가락을 튕기셨다. 멋있었다. 누가 보면 부끄러우니까, 남몰래 PD님을 따라 소리 없이 손가락을 튕기곤 했다. 그리고 그날, 그 부조에서도 그랬다. 어느덧 퇴근 시간이 됐고, 제작팀에선 신입사원 환영회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난 계속 그분들이 주시는 소주를 마셔야 했고, 집에 오는 택시 안에 토를 했고, 정신을 잃었다.


 "무슨 종교방송이 그렇게 술을 먹인다니."

10만 원의 세차비를 변상하셨다는 어머니께서 다음 날 아침, 나를 깨우시며 말했다. 겨우 정시에 출근하니 사수 선배님이 일을 맡겼다.


 "이거 편집 좀 해놔."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숙취로 깨질듯한 머리와 뒤집히는 속을 달래 가며, 한 컷씩 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컨디션만큼 속도는 나지 않았다. 반 정도 붙인 9시 무렵, 모두 퇴근한 줄 알았던 편집실에 선배님이 왔다.     


 "뭐야. 이거밖에 못 한 거야?"

 "네... 죄송합니다."

 "따라와."

선배님을 따라간 곳은, 웬 허름한 단란주점이었다. 입구에서 선배님에게 말했다.


 "선배님, 죄송한데 속이 너무 안 좋아서... 오늘 술은 못 마실 것 같습니다."

 "따라와, 이 3끼야." 그는 내 목덜미를 움켜쥐고, 나를 질질 끌고 단란주점으로 내려갔다.

맞다. 질질 끌고 갔다. 뭔가 잘못됐다.




 단란주점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의자에 나를 쑤셔 앉히고, 앞자리에 다리를 꼬고 앉아 담뱃불을 붙이며 말했다.


 "MBC에서 왔다며? 근데 그거밖에 못해? 별 X도 아닌 게 건방지게."

 "!!!"

뭐지? 뭐지? 뭐지? 무슨 상황이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거지?

 "예?..."

 "여기가 만만하냐, 이 3끼야?"

 "...아닙니다."

 

 그때부터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다시 이등병이 된 것 같았다. '아닙니다'란 대답만 반복했다. 그곳은 어두웠고, 시계도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감히 핸드폰을 꺼낼 수도 없었다. 핸드폰에 전화도 오는데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이번엔 30대 중반의 남자가 한 명 더 왔다. 사수가 벌떡 일어났다.


 "선배님, 오셨습니까!"

그분은 사수 옆자리에 털썩 앉더니, 역시 담뱃불을 붙여 내게 연기와 욕지거리를 함께 뱉었다.     


 "이 3끼, 너 녹화 때 부조에서 손가락 튕기더라?"

 '네? 그게 왜요?'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로 나오진 않았다.

 "이제 신입인 3끼가 벌써부터 부조에 앉아있고 싶은가 보네?"

 '아... 그거 잘못된 행동인 건가...'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전 회사에서 습관이 돼서..."

새로 온 남자가 비아냥댔다.

 "들었냐? 거긴 그따위로 가르치나 보네? 응?" 옆자리의 사수가 거들었다.

 "이 3끼, 아까 편집하는 거 보니까 가관이더라고요. 아주 부장님이 편집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새로 온 남자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너 이 3끼, 앞으로 90도로 앉아서 편집해."


 그리고 갈굼이 계속됐다. 그리고 여자 두 명이 그분들 사이사이에 앉았다. 마담들이었다. 수컷들의 자기 과시 마냥 갈굼의 강도 세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담 중 한 분이 말했다.


 "오빠, 그만해~ 좋은 데 와서 왜 그래~"

 "아니, 이런 건방진 3끼는 처맞아야 돼." 30대 남자가 재킷을 벗으며 말을 이었다.


 "꼬우면 계급장 떼고 맞짱 뜨던가, 이 3끼야."


 상스럽다. 정말 상스럽다. 언제 적 계급장이고, 언제 적 맞짱이던가. 이번엔 나이가 더 있어 보이는 마담분이 말했다.

 "그러지 말고 나랑 한잔해~ 이러다 애기 도망가겠어~"


 아. 그래... 그렇지... 도망이 있었지... 그래도... 영택이 정직원 됐다고 기뻐하던 조연출 형과 누나들, 축하 악수를 나눴던 PD님들, 취업해서 한숨 돌렸다는 어머니가 떠올랐다.


 "야 이 3끼야. 술맛 떨어지니까, 나가서 춤이나 춰."

 "탬버린도 갖고 나가. 이 3끼야." 사수가 덧붙였다.


 그래서 그분들과 마담분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을 췄다. 탬버린을 흔들었다. KBS로 떠난 <TV 완전정복> 조연출 형은 노래하고 춤을 춰서 방송사 정직원이 됐는데, 나는 단란주점 도우미가 됐다.


 고마워요. 를 애기라 불러준 마담 누나. 저 도망칠게요.     


 10곡 정도 춤을 추고 노래 부른 후, 사수에게 말을 건넸다.

 "선배님. 저 아까 못 끝낸 편집을 하러 돌아가 봐도 될까요." 이미 마담분들과 술 좀 들이켠 사수가 말했다.

 "그래, 너 이 3끼. 내가 이따 새벽에라도 갈 테니까, 다 끝내놔."

 "알겠습니다."


 그리고 난, 부활한 좀비처럼 지상에 나왔다. 핸드폰을 꺼냈다. 어머니께 부재중 통화가 3통 와있었고, 지하철은 막차 시간이었다. 그리고 난 집으로 돌아가는 막차를 탔다. 지하철에선 아무 생각이 안 났다. 그저, 차창 밖을 바라봤다. 지상 노선 불빛들이 반짝이며 흘렀지만, 현실감이 없었다. 이 모든 상황이 현실감이 없었다.




 환영회의 숙취가 풀리기도 전인, 정규직 PD가 된 이틀 만에, 난 잠수를 탔다. 사정을 알게 되신 어머니는 '아들부터 살려야지'라며 잘했다고 하셨고, 난 멍한 상태로 천장을 바라보며 내 방에 누워있었다. 전화를 받지 않으니 사수에게 문자가 왔다.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네가 이렇게 안 오면 내가 뭐가 되냐. 일단 와서 얘기하자'라는 내용의 문자였다. 씹었다. 그러니 한 시간 후엔 상반된 분위기의 문자가 왔다.


 '이 바닥 좁은 거 알지? 너 언젠간 만나게 돼 있다. 내가 너 지켜본다'


 씹었다. 상스럽다. 그래도 MP 정직원분들은 배우신 분들이었구나. 역시 언론고시 패스자들이야. 교양이 있어. 못 배운 것들은 상스럽기가 한이 없구나.

 숙취로 쓰린 배를 부여잡고 컴퓨터를 켰다. 그래도 본부장님께는 연락을 드려야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전화를 하게 되면, 난 영영 그곳에서 발을 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 얘기 없이, 갑자기 퇴사할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다고, 정말 죄송하다는 메일을 드렸다. 그리고 알겠다는, 사정을 묻지 않는 간단한 답이 왔고, 그리고 그렇게 끝났다.


 다른 방송사나 프로덕션에 가도 이럴까? 공중파 레벨이 아니라면 이렇겠지? MP의 조연출 형과 누나들이 그리웠다. 하지만 그렇게 축하를 받고 나왔는데, 다시 돌아갈 용기가 없었다. 뭔가 모두의 기대를 저버린 대역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며칠 후엔, 잘했다고 했던 어머니께서 '정년 보장도 해준다고 했는데, 그래도 그냥 참아보지 그랬어'란 말씀까지 하셨다. 맙소사.


 정말 아무 데나 들어가야겠다. 하지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그래도 가능하면 채널을 가방송사가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집에서 10분 거리인, 연봉 1900만 원의 한 케이블 채널, 정규직 편성 PD로 입사했다. 편성 경험은 없었지만, 그 회사는 성인방송에 거부감 없는 자를 찾고 있었고, 난 이미 야동에 면역된 경이 있었다. 성인방송 케이블 채널이었다.

 아이들 전문 <뽀뽀뽀> 하다가, 이젠 어른들 전문 '본격 야동 채널'을 한다. 인생 참 극단적이야.     


 그리고 이 바닥 좁다며 협박했던 그 사수는, 2007년부터 지금까지 '이 바닥'에서 본 적이 없다. 그 후로도 내게 그런 말을 던졌던 사람들은 '이 바닥'이든 '저 바닥'이든 볼 수가 없었다. 카이저 소제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 바닥은 생각보다 넓다. 나도 도태됐지만, 그런 협박을 하는 사람들은 도태가 아니라 광탈 수준으로 '이 바닥'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니 행여나,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불안해할 필요도 없고, 화낼 필요도 없다. 그저 모두,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븅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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