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의 스토리텔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독자는 '북산고' 멤버들과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전국제패'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 '전국제패'를 성취하기 매우 어렵다면, 스토리는 제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단어에서 느껴지듯, '전국제패'는 어려운 성취과제다. 전국엔 능남, 해남, 산왕 같은 강호들이 즐비하고, 강한 순서대로 차례차례 북산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등장한다. 여기까지는 그저 어려운 '단체미션'이다. 하지만 북산의 '전국제패'는 매우 매우 매우 어려운데, 이는 '단체미션' 외에도 멤버들 각각에게 부여된 '개인미션' 때문이다. 우린 이제부터 '장애물'을 '갈등', '단체미션'을 '외적 갈등', '개인미션'을 '내적 갈등'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그리고 <슬램덩크>를 탁월한 성장물로 만든 그들의 '내적 갈등'에 대해 살펴보자.
그 녀석들의 '내적 갈등'
풋내기 '강백호' (출처 : 슬램덩크 10권, 12권, 20권) 자신을 '천재'라고 믿는 강백호는 풋내기 실력 때문에 구멍 취급을 받는다. 그는 '천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풋내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기중심적 플레이어 '서태웅' (출처 : 슬램덩크 13권, 29권) 어려서부터 에이스의 길을 걸어온 서태웅은 져본 적이 없어서 자기중심적이다. 그는 '고교 넘버 1 플레이어'임을 증명하기 위해,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자기중심적인 플레이를 벗어나야 한다.
비운의 주장 '채치수' (슬램덩크 18권, 20권) 톱클래스의 실력을 갖추고도 팀 동료가 약해 빛을 못 본 남자 채치수. 그는 '전국제패'를 위해 오랜 시간 뭐든 혼자 해냈어야 했고, 그래서 책임감과 중압감에 짓눌려있다. '전국제패'를 위해,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채치수는 책임감과 중압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질 체력 '정대만' (출처 : 슬램덩크 21권, 28권) 정대만은 공백으로 인해, 언제나 체력이 발목을 잡는다. 그때마다 자신을 채찍질하는 그는 공백에서 자유롭기 위해,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공백의 부담에서 벗어나야 한다.
콤플렉스 '송태섭' (출처 : 슬램덩크 23권, 25권) 송태섭은 단신이라는 콤플렉스와 다혈질이라는 핸디캡을 갖고 있다. 그는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자신을 믿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해야 한다. 이외 오리지널 판에서는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고 느껴질 만큼 그의 이야기가 적다. 그래서 작가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송태섭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외적 갈등'인 상대팀은 매번 바뀌지만, '내적 갈등'인 '개인미션'은 마지막까지 변치 않고 그들을 괴롭힌다. 그리고 산왕 같은 끝판왕 '외적 갈등'을 클리어하려면, 멤버들은 '내적 갈등'을 극복해 각자의 알을 깨고 레벨업 해야 한다. 레벨업은 말 그대로 성장이다. <슬램덩크>는 표면적으로 '외적 갈등'과의 싸움인 전국대회를 그리지만, 멤버 각각의 '내적 갈등 극복 과정'에 포커스를 맞췄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고뇌와 극복의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캐릭터를 심화시켰다. 그래서 단순 스포츠물이 아닌 '성장물'이 될 수 있었다.
그 녀석들의 '성장법'
성실러 '강백호' (출처 : 슬램덩크 14권, 16권, 22권) 강백호가 풋내기를 벗어나기 위해 하는 방법은 의외로 꼼수 없는 정석이다. 바로 훈련을 통한 극복이다. 그는 이 지난한 과정을 불평 한번, 포기 한번 없이 수행한다. 또 이렇게 배운 것들로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는 결국 북산의 히든카드가 되어 팀을 승리로 이끈다.
패스 마스터 '서태웅' (출처 : 슬램덩크 29권) 이미 톱클래스인 서태웅이 자기중심적 플레이를 극복하는 계기는 패배의 경험과 깨달음이다. 산왕의 정우성에게 막힌 그는, 1 대 1도 공격 기술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패스를 한다. 그렇게 '고교 넘버 1 플레이어'를 향해 한 발을 내딛고, 북산의 진정한 에이스가 되어 팀을 승리로 이끈다.
가자미 '채치수' (출처 : 슬램덩크 28권) 채치수가 책임감과 중압감을 극복하는 계기 역시 패배의 경험과 깨달음이다. 산왕의 신현철에게 막힌 그는, 변덕규의 조언으로 북산은 '채치수 원팀'이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자신의 역할을 깨닫는다. 팀 동료들을 진정 신뢰하게 된 그는, 궂은 역할을 맡음으로써 팀을 승리로 이끈다.
아기 '정대만' (출처 : 슬램덩크 28권, 30권) 체력의 한계에 달한 정대만을 지탱하고 되살리는 건 팀 동료들에 대한 신뢰와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공백의 부담을 신뢰와 결의로 극복하고 팀을 승리로 이끈다.
인정욕구 '송태섭' (출처 : 슬램덩크 25권, 28권, 30권) 송태섭에게 자신감과 마음의 평정은 자신을 믿고 인정해 주는 사람들로부터 얻어진다. 그들에게 받은 자신감을 팀 동료들에게 불어넣으며,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팀을 승리로 이끈다.
또 하나, <슬램덩크>가 '그저 그런 성장물'이 아닌 '탁월한 성장물'이 된 이유는, 각자의 '내적 갈등 극복'이 서로의 관계를 통해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산속에서 혼자 도 닦아 이겨내는 게 아니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는 갈등들로 설정돼 있다. 그래서 이들 중 누구 한 명이라도 빠지면 변화할 수 없는, 서로에게 모두 필요한 존재가 된다.
이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자신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내외부의 어려운 '갈등'과 힘들게 싸우는 녀석들.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은 강하다. (출처 : 슬램덩크 30권, 31권)
<슬램덩크>에서 훔친 것들
시청자는 '주인공은 이긴다'라는 뻔한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이길지 질지 궁금해서 보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이길지 궁금해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겨야 할까? 어렵게 이겨야 한다. 그 과정이 어려워야, '감정이입'해서 지지하는 출연자를 응원하며 몰입할 수 있다. 과정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엔진이 바로 '갈등'이다.
'갈등'을 강하게 하려면 '외적 갈등'에 '내적 갈등'까지 섞는 것이 좋다.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의 효과가 난다. 목표를 여러 개 설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목표는 '전국제패' 하나이며, '전국제패'를 향한 '장애물'들을 섞는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강한 것만 섞을 수는 없다. <슬램덩크>는 '외적 갈등'을 강하게 하려고 NBA 팀과 북산을 싸우게 하지 않았다. 또, '내적 갈등'을 강하게 하려고 대인기피증 환자로 만들지도 않았다. 고교생이 NBA 팀을 어떻게 이길 수 있으며, 대인기피증 환자가 어떻게 수많은 관중 속에서 경기할 수 있을까. 갈등도 일단 말이 돼야 하고, 목표도 매우 어렵기는 하지만 성취 가능해야 한다.
'내적 갈등'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효과는 '캐릭터 심화'다. '캐릭터 심화'라는 건 좀 더 '사람'답게 느낄 수 있게끔 만든다는 말이다. 원래 사람들은 이런저런 고민이 많으니까, 출연자도 이런저런 고민을 해결하려는 행동들을 보여주도록 하자. 강백호 역시 이런저런 고민이 많고 애쓴다. 풋내기에서도 벗어나야 하고, 채소연의 사랑도 얻어야 하고, 서태웅도 견제해야 하고, 재활훈련도 해야 한다. 참 입체적인 캐릭터다.
다수의 출연자가 나올 경우, 그들이 서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갈등을 설정해 보자. <슬램덩크>만큼 이상적으로 관계가 형성되긴 힘들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함께 헤쳐 나갈 목표, '미션' 같은 '외부 갈등' 요소를 던져주고, 거기서 일어나는 '내부 갈등' 요소를 캐치해서 다듬는 것도 방법이다. <삼시세끼>도 '삼시세끼 해서 먹기'라는 '외부 갈등' 요소만 던져주고, 출연자 사이에 일어나는 '내부 갈등'을 관찰했다. <나 혼자 산다> 마저도 이제 혼자가 아닌, '팜유라인' 같은 관계를 형성해 '식도락여행' 같은 미션 수행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