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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택 Feb 10. 2024

출연자를 움직이는 방법

감정이입을 위한 동기 설정

<슬램덩크>의 스토리텔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독자는 '북산고' 멤버들과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전국제패'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 ‘전국제패’를 성취하기 매우 어렵다면, 스토리는 제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녀석들은 왜 그리 힘들고도 어려운 '전국제패'를 향해 달리는가. 우리는 그 이유를 기꺼이 보고 들을 준비가 됐다. 그런데 그 녀석들이 이렇게 답한다면?


 "이유는 무슨! 이기고 싶은데 뭔 이유가 필요해!"

 '이 자식들이...'

 

 <슬램덩크>가 이랬다면...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새 단행본을 몇 달간 오매불망 기다렸던 우리는... 감정이입이고 나발이고, 있던 호감도 날아가고, 배신감에 치를 떨며 그동안의 단행본을 모아 불 싸질러버릴 것이다. 하려는 이유, 즉 '동기'가 없다는 건 이렇게나 위험하다.


 북산고 모든 멤버가 '전국제패'를 원하지만, <슬램덩크>는 각자의 '동기'를 다르게 설정한다. 첫 등장부터 순도 100%로 '전국제패'만을 원하는 건 채치수뿐이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바가 있고, 그걸 얻기 위해 '전국제패'라는 목표를 향해 돌진한다.


전국제패 성애자 '채치수' (출처 : 슬램덩크 2권)

 채치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전국제패'를 외쳤다. 환경이 어떻든 변치 않는 굳은 의지의 사람, 어딘가에 한 명 정도 있을 수도 있다.


NO 1. 성애자 '서태웅' (출처 : 슬램덩크 26권)

서태웅은 '전국제패'를 통해, '고교 넘버 1 플레이어'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언제나 톱을 노리는 이런 사람도 주변에 있을 수 있다. 채치수 같은 타입보단 많이 봤다.


'불꽃남자' 정대만 (출처 : 슬램덩크 8권, 21권, 28권, 30권)

 정대만은 '전국제패'를 통해, 좋아하는 농구를 다시는 포기하지 않 '불꽃남자'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과거를 반성하며, 현재에 충실한 사람. 채치수, 서태웅보다 많다.


문제아 1 '강백호' (출처 : 슬램덩크 1권, 30권, 31권)


문제아 2 '송태섭' (출처 : 슬램덩크 7권, 27권)

 강백호와 송태섭이 사랑 때문에 뛰어든 농구는, 문제아였던 그들의 진짜 결핍을 충족해 준다. 농구에 제대로 빠지게 된 그들은 이제 '전국제패'를 통해, 각자 '천재'와 '넘버 1 가드'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꿈 없이 나이만 어 뛰어든 사회에서 인정받는 경험을 하고, 결핍이 충족되고, 일이 좋아지고 더 잘하고 싶은 강백호와 송태섭 같은 사람들. 채치수, 서태웅, 정대만 보다 많지 않을까. 나도 그랬다.


이렇게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뛰지만, 같은 목표를 가졌다. (출처 : 슬램덩크 30권)


 모두 한두 번은 주변에서 봤을 만한 평범한 동기를 가진 친구들인데, 눈여겨볼 것은 강백호와 송태섭이다. 그들의 동기는 발전한다. 처음부터 '전국제패'나 '고교 넘버 1 플레이어' 같은 거창한 동기 없더도, 일련의 계기들로 인해 그들에겐 '전국제패'라는 불이 붙는다. <슬램덩크>는 이 과정을 통해, 그들의 성장 과정을 담아낼 수 있었다(특히 강백호).


 처음부터 거창한 동기를 가진 출연자에게선, 변화의 모습을 큰 폭으로 담아내기 어렵다. 그들은 처음부터 우직하게 목표를 향한 외길만을 가기 때문이다. 이들의 목표를 벗어난 행동은 '일탈'일 뿐이다. '전국제패'가 꿈이었던 정대만의 방황이 '일탈'이었던 것처럼.


 하지만 사소한 동기에서 점점 발전해 큰 목표를 갖게 된 출연자를 통해선, 시청자를 뒤흔들만한 변화를 담아내기 쉽다. 평소와 다른 행동을 일탈이라 한다면, 정대만은 2년, 강백호는 4개월을 일탈했지만, 아무도 강백호의 '농구 인생 4개월'을 일탈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 4개월간, 처음엔 작았던 '동기'라는 캔버스를 점점 크게 펼쳤고, 커지는 캔버스에 목표를 향한 캐릭터의 변화를 꽉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변화는 처음과 비교해 너무나 커서 '일탈'이 아닌 '성장'으로 불린다. 그리고 강백호에게 그 4개월은 '영광의 시대'다.


강백호의 '영광의 시대' (출처 : 슬램덩크 31권)


 '이기고 싶다'는 이유는 모든 인간의 욕망이지만, 그건 '가위바위보'에서나 먹힐 이유다. '전국제패'라는 성취하기 매우 어려운 목표를 설정하고 이야기를 길게 풀어나가고 싶다면, 반드시 <슬램덩크>처럼 각자의 출연자에게 동기를 부여하자.


 이야기를 움직일 엔진도 스파크가 튀어야 움직인다. 스파크가 '동기'다. 그리고 엔진이 점점 커지면, 스파크도 점점 크게 튀어야 한다. 강백호가 농구를 시작하는 동기로 채소연의 사랑은 제격이다. 하지만 단지, 채소연의 사랑을 얻기 위해 치명적인 등 부상을 외면하면서까지 '전국제패'를 한다는 건 설득력이 없다. 강백호가 농구를 정말 좋아하게 만들지 않는다면, 짠하게도 순애보 청년이 아닌 부담스러운 변태 스토커로 기억될 것이다.


 또 하나, 이처럼 동기의 변화가 크다면, 그 이유도 다시 한번 짚어줘야 한다. <슬램덩크>는 강백호가 진정 농구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짚었다.


농구 선수로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 강백호. (출처 : 슬램덩크 27권)

 출연자를 움직이고 싶다면, 목표를 설정하고, 그걸 이루고 싶은 이유, '동기'를 부여하자.





<슬램덩크>에서 훔친 것들


출연자가 그냥 하는 일은 없다. 무엇을 원하고,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시청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동기가 드러나는 연출이 필요하다. '뭐야? 저거 왜 하는 거야?'라는 궁금증이 생기도록 동기를 사건 후에 배치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반드시 배치는 해야 한다. '떡밥을 뿌렸으면 회수하라'는 얘기와 같은 결이다. 총을 꺼냈으면 왜 꺼냈는지 보여주자.


처음에는 사소한 이유에서부터 시작해도 된다. 하지만 연출과 편집을 하면서, 출연자의 동기가 지금의 행동을 설득할 수 있는지 늘 생각하자. 조커는 동기 없는 파괴적인 행동만 일삼아 대혼돈의 미친놈이 됐다. 하지만 일반적인 출연자를 모두 조커처럼 만들 수는 없다.


동기도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사건 속에서 찾아 보여주자. 이 역시 강한 각인과 분량을 줄일 수 있는 이유다. 그럴 수 없다면, 따로 구다리를 만들든, 인터뷰를 넣든, 내레이션을 넣든 보여주자. 이건 어쩔 수 없다. 출연자를 미친놈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넣자.


이제 우리는 출연자를 미친놈으로 만들 수 있다. 어떤 행동의 동기가 있는 컷들을 날려버리면 된다. 시청자는 이 출연자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되고, 그래서 출연자를 욕하기 시작한다. 이런저런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나는 솔로>, <고딩엄빠>같은 프로그램이 동기를 날려버리는 짓들을 잘한다. 이슈를 만들기 위해선데, 이들은 동기 부분을 날려, 출연자를 미친놈 만드는데 거리낌이 없다. 노이즈 마케팅을 하려면 동기를 날리자. 그게 가장 쉽고, 빠른, 효과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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