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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택 Feb 10. 2024

출연자에게 호감 주는 방법

감정이입을 위한 준비

<시나리오 가이드>라는 책에선, 좋은 스토리텔링의 기본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만약 관객이 '누군가'와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데, 그 누군가는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 무엇인가를 성취하기가 매우 어렵다면, 스토리는 제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 시나리오 가이드|D.하워드·E.마블리 공저


 <슬램덩크>의 스토리텔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독자는 '북산고' 멤버들과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전국제패'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 '전국제패'를 성취하기 매우 어렵다면, 스토리는 제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감정이입'을 시키는가?


 <슬램덩크>는 제대로 된 스토리를 위해서, 가장 먼저 독자들을 '북산고' 멤버들에게 '감정이입' 시킨다. 우선 <슬램덩크> 1권에서 강백호와 채치수의 등장씬을 보자.


'완벽한 인간'의 등장인가? (출처 : 슬램덩크 1권)


 출연자에게 '감정이입' 시키기 위한 1단계. 일단 출연자를 '신'이 아닌 우리 같은 '사람'으로 친근히 느끼게끔 만들어야 한다. '신'과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신'은 완벽하지만, '사람'은 넘치거나 모자란 점이 있다. 딱지 맞은 강백호와 엉덩이 깐 채치수의 등장도 '사람'답게 한참 모자라다.


 '사람'답게 만들어 줄, 출연자에게 넘치거나 모자란 점은 무엇인가? 그것이 드러나는 행동은 무엇인가? 멤버들을 우리 주변에 있을법한 '사람'으로 느끼게끔, <슬램덩크>는 극 초반에 무엇을 보여주는가?


에이스인 서태웅은 농구 외 일상생활과 대인관계에 서툴다. (출처 : 슬램덩크 2권)


송태섭은 강백호처럼 문제아지만, 사랑에 약하다. (출처 : 슬램덩크 6권, 7권)


농구가 하고 싶은 정대만은 반항아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출처 : 슬램덩크 7권, 8권)


 강백호, 서태웅, 채치수, 정대만, 송태섭. 이 모자란 다섯 명이 <슬램덩크> 9권에서야 한 팀이 된다. 1권부터 8권까지는, 독자들이 각 멤버를 우리 주변에 있을법한 '사람'으로 여기게끔 만드는 데 주력한다. 강백호의 농구부 입부, 능남과의 연습시합, 농구부 폭력 사태 등의 사건 속에서, 우리 같은 '결함이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고, 서로의 관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여기서, 각 멤버의 과거나 성격이 이렇고 저렇고, 작가가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오직 '사람'다운, 넘치거나 모자란 점이 드러나는 '행동'을 통해 보여준다.


 각 개인의 넘치거나 모자란 점을, 다른 말로 '캐릭터'라고 부른다. <슬램덩크>는 전권의 4분의 1을 할애해, 멤버들의 기본 캐릭터를 구축했다. 이로써 얻게 된 가장 큰 효과는 개연성이다.


 "북산고 그 아이들. 진짜 우리 주변에 있을지도 몰라!"


 이젠 고교생인 그들이 NBA급의 묘기를 부려대도, 독자들은 '이게 말이 돼?'라며 책장을 덮지 않는다. 그들은 진짜 우리 주변에 있을지도 모를 녀석들이고, 이제 우린 그들을 잘 알게 됐으니까. 마치 친구가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렀는데, 이렇게 답하는 것처럼.


 "내 친구라 잘 아는데, 걔라면 그럴 수 있어!"


 우리는 사람같은 녀석에게만 호감을 가진다. 북산고 멤버들의 친구가 돼버린 독자들은, 이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왜 그리 원하는지 기꺼이 보고 들을 준비가 됐다. '감정이입'을 위한 튼튼한 발판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은 멤버들을 움직이는 '동기'를 강화하고, '캐릭터'를 심화해,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시킬 차례다.




<슬램덩크>에서 훔친 것들


 눈앞에서 부모가 살해당한 어린 브루스 웨인(배트맨)처럼, '가족, 연인, 친지의 복수' 같은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다면, 바로 출연자에게 감정이입 시킬 수 있다. 즉,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다면, 그 사건이 감정이입의 시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의 촬영본엔 그런 사건이 없을 확률이 높다. 인생은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슬램덩크>처럼 처음부터 차근차근 이야기를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극 초반 '감정이입'을 위한 준비 단계를 보자.


출연자에게 감정이입이 쉬워지도록, 출연자를 '인간적'으로 느껴지도록 만들자.


그 방법은, 보통 사람보다 넘치거나 모자란 점이 드러나는 '행동'을 찾아 보여주는 것이다.


그 '행동'은,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사건 속에서 찾자. 강백호와 채치수의 첫 만남인 1대 1 농구 대결에서 그들의 캐릭터는 강하게 각인된다. 흥미진진한 사건을 통해 독자들을 집중시킨 결과다. 따로 캐릭터 설명할 구다리를 만들 필요가 없으니, 분량도 줄일 수 있다.


'인간적'이라는 의미는 좋은 인간, 나쁜 인간을 모두 포함한다. 첫 등장부터 출연자 모두가 호감일 필요는 없다. 나쁜 인간이라도 도덕적 갈등의 행동을 보여주면, 시청자는 친근함을 느낀다. 정대만은 비호감으로 등장했지만, '범죄를 저지르고 싶다'가 아닌 '농구가 하고 싶다'라는 도덕적 갈등을 통해 호감으로 변했다. 그 도덕적 갈등을 과거 서사와 눈물 고백이라는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얻은 결과다. 도덕적 갈등이 깊고 심할수록, 시청자는 같이 고민하며, 결국 그 출연자에게 더 빠져들게 된다.


포인트는 과거 서사든 현재든, 사건 속에서 '행동'이 드러난 컷을 찾아 붙이는 것이다. 출연자의 무엇이 넘치거나 모자란 지, 캐릭터를 내레이션, 자막으로 직접 설명하지 말자. 자신이 만드는 영상에 자신 없는 이들이, 내레이션이나 자막에 기대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이제 우리는 출연자를 호감이나, 비호감으로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차가운 도시 남자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한' 출연자가 있다고 치자. 비호감으로 만들고 싶으면 '내 여자에게 따뜻한' 컷들을 걷어내면 된다. 또 다른 예로 '엄친아' 출연자가 있다고 치자. 그를 호감으로 만들고 싶으면, 뭔가 모자라 보이는 컷을 추가하자. 부끄러우면 얼굴 빨개지는 '안면홍조' 컷이라도 찾아 붙이면, 귀여워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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