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내면의 감정 이해하기
관계에서 인사는 첫 번째 라포형성 단계이고, 상대방은 감정을 느낀다. 이러한 일상생활에서 평범하게 사용되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 내면의 감정이다.
‘안녕하세요.’로 감정을 배우다.
내면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의 감정이 어떻게 느껴지고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과거의 감정에서 현재 내면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평범하게 사용하는 어휘로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인사이다. 얼굴과 몸짓, 표현 등 태도에서 나오는 감정들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감정의 행동과 표현들은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며, 이것들이 어떻게 자유롭게 표현되는지는 어릴 적에 어떤 감정을 느끼고 배우는가가 중요하고 또 어떻게 표현하는가도 중요하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라고 언어로 표현하든, 머리를 숙여 행동으로 표현하든 말이다.
내가 남한의 공직사회에서 첫 회사의 문을 열고, 매일 출근하는 과정은 벅찼다.
‘내가 감히 여기에 출근해도 될까? 그래도 나는 당돌하게 씩씩하게 걸어 다닐 거야!’ 나는 처음 출근할 때처럼 매일 이런 마음을 가지고 출근을 하였다.
직장 정문에는 항상 아저씨가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가 나에게 인사를 하였다.
‘뭐지? 왜 나한테 인사를 하지? 내가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알아서 신기해서 그런가?’
나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머리를 숙이면서 쓱 지나쳐 2층 계단을 향했다.
다음 날에도 그 아저씨는 ‘안녕하세요?!’하면서 인사를 했다. 아저씨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쳐다봤다. 눈을 마주쳤다. 키가 큰 중년의 아저씨였다.
다음 날에도 그 아저씨는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였다. 나는 무시했다.
며칠 후 회식이 있었다. 한창 회식 중인데, 정문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안녕하세요? 북한에서 왔다지요?”
“네에. 맞습니다”
“이 회사에서 일하는 거 어때요?”
“네에. 좋습니다. 그리고 곁에서 많이 도와줍니다.”
“아, 그렇군요. 워낙 그 부서는 또래 여직원들이 많아서 잘 도와줄 겁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나는 당황했다. ‘무엇을 물어보지? 혹시 결혼했냐고 물어볼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처럼 가족이 함께 왔냐고 물어볼까?’
나의 당황함을 눈치채었는지 아저씨는 조금 뜸을 들이면서 입을 천천히 떼었다.
“북한에서는 ‘안녕하세요?’를 안 하나요?”
북한에서는 ‘안녕하세요’를 자주 사용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과는 ‘안녕하세요’를 더 표현하지 않는다. 나는 ‘안녕하세요’를 위문편지에 많이 썼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면 ‘안녕하십니까’로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안녕하세요.’라는 구두 인사보다도 허리를 굽혀 머리를 숙이는 인사를 더 중요하게 배웠다. 악수는 사회주의 도덕에 어긋나는 인사법이라고 배웠다. 이유는 사회주의 체제, 사회주의 도덕을 우선시하려는 북한의 체제 유지를 위한 전략이다. ‘장군님의 안녕을 지켜’ 등 김 씨 삼부자의 안부 표현으로 사용되기에 더욱 ‘안녕, 안녕하세요’를 일상생활에서 사용 해본 적이 없다.
나는 정문 아저씨에게 미안하고, 앞으로는 인사를 잘하겠다고 말했다.
그다음 날, 아저씨와 나는 눈을 마주치고 빙그레 웃었다.
가끔 걸음을 멈추고 아저씨와 이야기도 나눴다. 그 아저씨한테서 배운 말이 있는데 바로 ‘방콕’이다. 휴가철, 어디에도 가지 않고 방에만 있었다고.
아직도 그 아저씨의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
오해가 쌓여 화가 날 만한데도 다정하게, 상대방이 상처받지 않도록 말을 해준 것이 지금 생각하면 고맙다. 만약 그 아저씨가 나와의 갈등을 해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먼저 손을 내밀어준 아저씨가 고맙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의 문제로 하여, 상대방은 무시당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안녕하세요’는 무시가 아닌 감정의 ‘무지’였다. 나의 감정의 ‘무지’는 배우고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우고 경험하면 바로 반응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질 수 있는 것 또한 감정이다. 정문 아저씨 일처럼, 같이 일도 하지 않는, 이름도 모르는 정문 아저씨에게 왜 인사를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을 뿐, 그 아저씨에게 나쁜 감정이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내 내면의 감정을 이해한 부끄럽지만 좋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