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위한 위로이지만, 자신에 대한 위로가 된다.

3-1. 감정의 위로로 인간을 이해하다.

by 소수지

남을 위한 위로이지만, 자신에 대한 위로가 된다.

‘심성 수련’의 프로그램은 나에게 ‘위로’를 알게 하였다. 위로는 정말 따뜻했다. 위로하는 사람이 아름다웠고 멋있었다.

부끄럼 없이 마구 흘러나오는 눈물을 받아주는 사람은 넓은 바다 같아 보였다. 나도 그런 멋있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위로해 주고 보니, 뿌듯했다. 한 사람의 감정을 공유하고 이해하고, 함께 고민하고 걱정하고 보니 내가 뿌듯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을 느꼈다. 바로 ‘나’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 위로가 곧 나에 대해 위로를 해준다는 것, 나를 깨우치는 것 즉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로를 해준다는 것은 ‘앎’이 있다. 공통된 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은 위로를 해줄 수 없다. 일면식 없는 상태라도 그 감정을 느껴 본 사람이라면 위로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픔을 겪어본 사람이 그 아픔을 안다는 말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사회복지사와 심리 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 아픔이 있어서 치유를 받았던 심리상담 교수의 강의는 정말 이해가 쏙쏙 되었다. 자신의 사례를 통해 그때의 감정들이 그대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위로도 아픔을 안 사람이 그 아픔을 위로해 준다.

나는 남한 사회에서 많은 위로, 격려, 응원을 받았다. 일방적이고 배려하는 사회의 지원과 응원도 있었지만, 인간에게서 받은 위로와 격려, 응원은 따뜻하고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그 계기도 너무 소소하다.

나는 갓 태어난 셋째 아들로 하여 띠 엄마들의 채팅방이 있었다. 맘들의 대화창에서 다양한 양육 방법과 정보로 대화가 쏟아지듯 나왔다. 나도 질문하고 싶었고, 대답을 해주고 싶었고, 어려움을 하소연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휘가 달라서 주춤하였다. ‘돌 생일-돐 생일’, ‘장난감-놀잇감’, ‘잠버릇-태질’, ‘어린이집-탁아소’ 등 어휘들로.

어느 날, 나는 북에서 온 것을 얘기하고 대화의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다른 어휘로 하여 포털사이트에 어휘 검색을 하고 글을 쓴다고 얘기했다. 나의 글을 읽은 맘들은 조금 놀랐지만, 이내 반응해 주었다. ‘괜찮아요, 그래도 잘 알아들을 수 있어요.’, ‘그냥 얘기해요. 이해가 안 되는 거는 우리가 검색해 볼게요.’, ‘그래도 같은 엄마이기에 엄마들의 맘은 다 같아요’.

나는 고마웠다. 그리고 용기 내었다. ‘그래, 엄마의 마음은 다 같을 거야. 어휘가 다른 거는 내 잘못이 아니니깐.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같을 거야.’

위로 한 적도 있다.

위로를 받아보니, 위로를 어떻게 하는지 경험하게 되었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듣는 것,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또 위로하는 과정에 알게 된 것이 그 문제가 나만의 문제만 아니었다. 내가 겪는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니, 문제 해결이 보이게 되었다. 또 그 사람의 문제 해결 방법도 알면서 서로가 공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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