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 깨진 안경알 너머 세상 17
1.
오랜만에 평일 오후의 카페에 들렀다.
늦은 오후 약속 시각까지 시간이 남아서이다.
카페에 남자들 천지다.
남자들의 수다, 여자들의 수다 못지않다.
2.
스님은 화내는 거 아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화내는 거 아니다.
허락 없이 경내에 들어와 사진 좀 찍은 일이 화를 낼 일인가.
아니 화가 날 수도 있는 일이어도 스님은 화내는 거 아니다.
혹 내가 스님의 털 달린 검정고무신이 탐이나 몰래 훔쳤다고 해도 스님은 화내는 거 아니다.
남자스님도 여자스님도 그냥 스님이고, 나이 든 스님도 어린 스님도 그냥 스님이기에.
구분 없이 내가 또 사람들이 합장을 하고 목을 숙이는 한 스님은 화내는 거 아니다.
오늘 내가 만난 사람은 스님인가 중인가?
3.
얼마 전 구입한 총천연색 양말 세트에 보라색 양말이 있어 신고 나왔더니 몇몇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본다.
‘왜 쳐다보지?’
‘아하!~~ '보라돌이'가 생각나나 보다.’
이런~ 세상에 대한 편견이라곤 1도 없는 맑고 순수하고 자유로운 영혼들을 봤나.
이러니 가짜 뉴스가 자유롭게 날갯짓하는 것 아닌가.
주는 대로 막 받아 처먹으니 개념 없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지.
습득에는 편견 없고 내뱉는 생각에는 편견이 가득하니.
막막하기 그지없네.
이를 우짤꼬...
4.
낮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식당에도 편의점 앞에도, 홀로 또는 둘이,
술병을 아무리 기울인다 해도
술잔을 아무리 비운다 해도 고통까지 비워지지 않을 건데..
5.
아침 엘리베이터.
방금 누군가 바쁜 출근을 한 모양이다.
제대로 씻지도 못한 심연의 일상 침몰이 하나 있었나 보다.
그가 남긴 짙은 향수 냄새 뒤에 감추어진 똥구린내.
낯선 향과 냄새가 만들어낸 즉흥변주곡.
잘 좀 씻자.
6.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너 살 되어 보이는 윗집 애기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저게 뭐야?'하고 지네 엄마에게 묻는다.
'저게'라고라? 사람 보는 눈치가 어른 못지않구나.
이제부터 너는 애기가 아니고 어른사람 대접해 주마.~~
7.
아파트 헬스장에 매일 나오는 청년이 있다.
스펙트럼장애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에 대한 친화력이 만렙이다.
여자는 모두 누나고, 남자는 모두 형님이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다.
나하고는 정반대다.
8.
아침 출근길 지하주차장,
불법주차 차량이 내차를 막고 있다.
연락처도 없다.
관리사무소에 연락하니 한참 만에 차주가 내려온다.
죄송하단다. 늦게 들어와서 그렇단다.
사과를 받았는데 화가 사그라 들지 않는다.
왜 화가 난 더러운 기분은 나만의 몫인가?
상대는 죄송하다는 말 말고 마땅히 내게 할 말이 없지 않은가?
9.
사람이란 참 신기해.
나 아닌 사람은 모두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