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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eongseon Oct 14. 2024

순수하고 공정한 경기였을까

인생의 아름다운 찰나 자체를 깨달으며 온전히 만끽하는 것은 얼마나 축복인가. 여느 해보다 무덥고 찌는 듯한 시간 속에서도 이번 팔월은,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고 울고 웃었다. 뜨거운 햇볕은 상관없다는 듯, 거의 평생을 걸쳐 자신을 걸고 다져온 선수들이, 매 순간이 인생의 절정인 듯 경기를 펼쳐 나갔다. 그걸 지켜보는 관중들 역시, 생애 자주 없을 그 절정의 장면에 매료되며 감동하였다. 적어도 페어플레이 정신이 생생한 삶의 장면은,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로 인해 삶 전체를 털어 빈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 순수한 열정에 마음이 쏟아지곤 하는 듯 보였다.



2024년 8월,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오프닝 행사부터 다양한 실험적 장면과 연출, 어이없는 실수들이 연발되는 속에서 누군가는 지나친 PC가 공연을 망쳤다고 하고 누군가는 그로 인해 무해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양한 밈이 매일 쏟아져 나오면서 툴툴대는 사람도 낄낄대는 사람도 상관없이, 이번 올림픽이 양성해 내는 재미를 즐기는 듯 보였다. 물론 와중에 나처럼 올림픽 보이콧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모든 사람이 북적이며 나누는 올림픽 이야기는 대체로 흥겨워 보였다, 적어도 성별 문제가 대두되기 전까지는.



언제부턴가 유독 여성 선수의 경우에만 주목되는 이 염색체 논의는 올림픽의 고정 뉴스가 되는 실정이다. 남성적으로 보이는 모습의 선수거나 기량이 뛰어나다 싶은 선수의 DNA를 추적해 XY 염색체가 뜨면 목소리 높여 남성이 속이고 여성 경기에 난입해서 난장판을 만들어 메달을 훔쳐냈다는 식의 보도가 줄을 지었다. 이번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국제복싱협회(IBA) 입장과 달리 여성 정체성을 지닌 선수의 참여를 인정했다. 해서, 마치 남성이 여성을 때렸다는 식의 자극적이고 과열된 보도가 이어지기도 했다.    


 

‘초남성’이론이 있다. Y염색체가 남성 성별을 결정한다고 알려진 이후 이를 하나 더 가진 경우 남성적 특징이 집중적으로 높아진다는 연구이다. 영국의 세포유전학자 퍼트리샤 제이컵스는 폭력적 정신질환 입원 환자의 3.5%가 XYY염색체를 가졌다는 사실을 근거로 <네이처>에 비정상적인 공격 행동을 일으킨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기나긴 성소수자 혐오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될 역사의 시작이었다. 이후 연구에 따르면 XYY염색체를 가진 남성 환자의 공격성이 차이가 없으며 97%가 범죄 이력조차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2000년에 이르러서는 남성의 성별, 생식과 관련된 유전자가 오히려 여성 염색체로 알려진 X에 모여 있다는 게 밝혀졌다. 인간은 성염색체라 알려진 것이 어떻게 드러나도 남성이 아닐 수도, 남성일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성별을 결정하는 것은 성염색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참조: 숙명여자대학교 글로벌거버넌스연구소 연구교수 임소연, , 한겨례 2020. 09. 08. 기사)



사람의 몸은 이처럼 남성과 여성 두 개의 성별로만 나눠지지 않는다. 인터섹스도 있고 성호르몬 시술이나 성전환 수술을 통해서 성별을 바꿔나가기도 한다. 공정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어 설명하기에는 거칠게 양성으로 구별 지어 구획하는 것은 폭력적이다. 섬세하고 정확한 과학적 근거로 논의 되어야 한다.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은 염색체 검사만으로는 남녀 구별이 불가하기에 외모로 남녀를 판단하는 사람 또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커서 신뢰할 수 없는 단체의 명예췌손 캠페인에 의해 희생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번에 크게 문제가 된 알제리 복서는 국가 정책상 성전환 시술도 수술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트랜스젠더도 아니다. 트랜스젠더가 되어도 지속적으로 여성의 신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해지는 수많은 의학적 시술로 인해 남성과 유사한 정도의 파워를 갖기도 어렵다. 그는 고안드로겐증을 앓아 XY 염색체가 혈액 내에 존재할 뿐이다. 여성의 신체로 태어나 여성으로 평생을 살아왔고 선수 생활 동안 다른 여성 선수에게 9번의 KO패도 당했다. 세상은 왜 그간 그가 무참히 당한 9번의 완패는 기억하지 않을까.



며칠 전에는 교토국제고등학교가 고시엔(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전 경기가 토너먼트 형식이라 단 한 번의 실패에도 결승에 이를 수 없는 승부의 세계, 일본의 국민 스포츠라 칭해지며 전국 4,000개 고등학교 야구부의 경기라는 점에서, 뜨거운 청춘의 꿈으로 그려지는 것이 바로 ‘고시엔’ 경기이다. 말 그대로 고시엔은 성지에 가깝다, 오죽하면 경기 후 승패 관계 없이 고시엔의 흙을 수집해 가겠는가. 그곳에 전체 학생 160, 선수 61명의, 야구 시합 연습을 하기엔 터무니없이 작은 운동장을 가진, 한국계 국제고등학교에서 기적 같은 승리를 거머쥐었다. 외국계 학교가 고시엔 우승도 처음이다. 결승전 연장 10회 이사만루 투아웃의 상황에서 승리를 끌어내고 교가가 한국어로 울려 퍼졌을 때 눈물 흘렸다는 사람들의 글이 SNS에 넘쳐났다. 일제 식민지의 경험을 가진 한국인의 울분과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 감성도 한몫했을 것이고 여러 가지로 열악한 환경에서 최선의 최선을 다했을 구단 모두의 열정에 감동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 감동의 순간에 아이러니하게도 선수 중 3명만이 한국 국적이고 나머지는 일본 국적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여러 소셜미디어 및 뉴스를 오가며 관찰해 본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한국계라 하더라도 일본 국적 취득이 용이하거나 유리하다 판단했을 사람들도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궁금한 것은 그래서, ‘알고 보니 일본인 선수’라는 이 사실이 감동을 삭제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마치 9전 10기의 여성 권투선수가 알고 보니 XY 염색체도 가졌다더라 해서 인권을 짓밟고 모욕하던 것과 비교해서 말이다. 한민족이 아니라서 성소수자라서 혹시 감동이 흔들리는가. ‘순수’하고 ‘공정’한 ‘아마추어 정신’의 산물인 고교 야구와 올림픽에서 순수하지도 공정하지 못한 이들은 누구인지 반성해 볼 일이다.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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