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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eongseon Oct 12. 2024

게으른 상상력이 부른 위험한 세상

불과 며칠 전 추석을 앞두고 태풍이 몰아쳐 왔다. 뉴스는 연신 역대급 태풍이라 말했고 이에 대한 재난 안전 수칙을 알려주고는 했다. 과거 큰 피해를 줬던 태풍 사라나 매미에 견주며 언론이 들썩였고 사람들은 겁을 먹었다. 태풍은 대만과 오키나와는 물론이고 제주 곳곳을 침수시키고 정전시키면서 울산 바다 근처 도로를 뒤집고 포항을 물바다로 만든 후 사라졌다. 국내의 경우 제주와 영남에 재앙에 가까운 피해를 입혔다. 반면 수도권은 그전 폭우로 침수와 정전을 겪었던 공포가 컸던 만큼 안심하는 마음도 컸던 것 같다.


안심하고 무관심해지는 마음은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른다. 중앙 중심적인 각종 미디어는 지방에서 발생한 자극적인 태풍 피해를 며칠 잠깐 보도하고 사건은 잊혀 갔다. 명절을 앞두고 물가가 올랐다는 소식과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과 영국 여왕의 사망 사건으로 태풍으로 인한 피해는 묻혔다. 이기적인 마음 한구석은 늘 자신의 안위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기에 무관심조차 이해하려 했다. 누구나 자기 손에 찔린 가시가 구체적으로 아픈 거니까. 문제는 태풍과 관련된 조롱에 있었다.


태풍 힌남노가 수도권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기예보에 대해 ‘역대급 허풍’ 등의 비난이 이어지고 모 래퍼는 ‘힘안남노’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가 내렸다. 딴에는 재치 있는 말장난 정도로 여겼을 터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롱은 태풍의 피해 당사자들이 겪을 상처나 고통에 대해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은 게으름의 작동이다. 공감 능력의 필수 조건이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다 못해 언어폭력이 각종 매체로 실시간 오르내리는 작금의 시대는 바로 인류의 게으름이 얼마나 큰지 알려주는 바로미터가 되곤 한다. 상상력도 부지런한 마음과 알뜰한 관심에서 비롯되기에 바로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물질적 정신적 고통들은 부지런히 관심을 보내는 마음의 능력, 상황을 상상해 내는 능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을 쓰고 상상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다만 게으름과 이기심이 이를 방해할 뿐이다.


자연재해가 닥치면 가장 낮은 곳에 처한 존재들에게 가장 크고 무서운 피해를 남긴다.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아동‧노인‧질병인‧장애인 등의 사회적 약자들, 나무가 베어지고 산맥이 끊겨 숨을 곳을 찾지 못하거나 인간의 이기심으로 유기되었거나 인간 중심의 도심에서 살아내야 하는 각 동물들, 바닷가 근처 저지대에 살거나 낡고 허물어져 가는 집을 수리할 비용이 없는 빈자(貧者)들, 각종의 이유로 내몰려 거리가 집이 되어버린 거리의 사람들은, 자연이 일으키는 거대한 힘 앞에서 그저 무력을 자각할 뿐이다.


갑자기 불어나는 물에 급하게 피하느라 매어놓은 비인간동물들이 손쓸 수 없이 익사할 때, 집에서 나오지 말고 태풍의 피해에 각종 안전 조치를 취하라 하지만 거대한 해일이나 폭우에 집 자체가 안전하지 못할 때, 물이 불어나는 것을 보면서도 움직일 수 없는 중증 장애인과 노인이나 아동이 있을 때, 모든 것을 풀어내어 공들여 농사지은 논밭이 흙탕물로 뒤덮여 버리는 장면을 눈앞에서 보고만 있어야 할 때, 코로나라는 역병으로 그간 힘겹게 버티며 지탱해 온 가게가 정전으로 인해 냉장고 냉동고의 각종 식재료가 썩어 들어가는데도 그간의 버팀이 썩어가는 바라보아야 할 때, 배가 파손되고 양식장이 뒤집어지고 갇힌 바다생물들이 죽어가는 것을 멀리서 넋 놓고 바라봐야 할 때, 그들에게 안전한 곳은 어디인가. 그들이 받은 상처와 피해는 얼마만큼의 크기인가. 풍성하고 넉넉하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란 속담이 무색해진 추석, 그들이 받을 상대적 박탈감은 얼마나 쓰린 것인가.


“세상은 살기에 위험한 곳이다. 사악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이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말이다.”라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여기서 사악한 사람이란 반드시 범법자만을 말하지 않을 듯하다. 수시로 이기심과 교만에 빠지는 인류 모두가 사악할 수 있고 인류 모두가 사악한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마침내 세상은 살기 위험한 곳이라는 말이 아닐까. 그의 말대로 힌남노라는 태풍은 이 세상이 얼마나 살기 위험한 곳인지 역설적으로 알려주었다. 태풍이 휩쓸어 상처 난 그 자리자리에 내리 꽂히던 조롱의 언어와 무관심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도 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멈추고 내리는 중에 침수됐을 지역들의 주민들이 건조되지 않는 공간에서, 다시 비 새는 걸 바라보면서 버텨야 할 시간에 대해 우리는 더 상상해 볼 수 없을까. 다시 태풍 난마돌이 북상하고 있으니 수해 복구를 위해 애쓰는 모든 사람들과 재난민들의 힘겨움을 상상해 볼 수는 없을까.




마지막으로 개인 SNS에 올린 글을 여기에 옮긴다. “제주는 이렇습니다. 더 처참한 제주 현재 상황을 보도하기도 하지만 이 기사는 담담하게 피해와 복구 사항을 나열 보도하고 사진도 자극적이지 않아서 가져와 봅니다. 물론 제 글을 싣는 곳이기도 하니 지역 뉴스는 <헤드라인제주>로 봅니다. 더불어 경남과 포항 쪽 피해가 매우 큰 걸 보면서 이후의 삶을 생각하니 지역 피해자들의 고통과 고달픔이 와닿아 마음이 아픕니다. 상처를 두고 조롱하는 말들은 삼가는 건 당연합니다. 그 당연한 걸 종종 잊기도 해서 굳이 적습니다. 제주는 대부분 건천입니다. 화산지형이라 비가 내리면 대부분 재빨리 지하로 스며듭니다. 기사 내 하천의 모습은 강수량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깊게 텅 비었던 하천이 땅 가까이 흙탕물을 실어 나르는 광경은 제주가 얼마나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알려주는 지표입니다.”





이 칼럼은 헤드라인제주, <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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