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 Jeongseon Oct 08. 2024

죽은 평화의 섬, 제주

경칩이 지났다. 꽃샘추위가 무색하게 가파르게 기온이 상승해 완연한 봄날이 들이닥쳤다.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것은 계절만은 아닐 것이다. 인류가 탄생하고 문명이 탄생하고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기후 변화에 기민했었다. 날씨와 관련된 수많은 전설과 신화만 살펴보더라도 인류는 단 한 번도 태평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요즘 더 유난하게 반응한다. 특히나 급변하여 재앙에 가까울수록 기록을 남겼던 인류에게 그 기록이 잦고 있다는 것을 탐지하고 이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는 것은 비 내리기 직전 새의 지저귐만큼이나 요란하다. 인류는 단 1만여 년 만에 새로운 지질학적 명칭을 스스로 부여할 만큼 달라진 시대를 살아가게 됐기 때문이다.



홀로세에 이어 인류는 대가속의 시대,
대멸종의 시대에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시대를 ‘인류세’라 부른다.


처음 저 용어를 들었을 때는 인류가 지구환경에 지불해야 하는 세금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인가 생각했다.  여기저기 논의와 비판과 연구를 거듭하고 있지만 낯선 사람들이 많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결과적으로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인류가 만들어낸 새 지질학적 시대는 인류 스스로가 지불해야 할 가장 큰 결과를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자본이 아니라 생명의 멸종, 즉 인류를 포함한 다양한 생명들의 영원한 단절, 죽음이라는 점이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인류는 인류가 생성한 새로운 지질시대에서 인류가 원인이 된 재앙을 인해 인류가 멸종함으로써 마무리될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기후위기는 아마도 지구 존속과는 상관이 없다. 인류의 삶과 죽음이 걸려있고 인류 때문에 다른 종들이 멸망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자연이 재앙이라 하면 지구 입장에서는 억울할지도 몰겠단 생각이 든다. 그 어떤 지질 시대에도 그 시대 대표 종 때문에 그 시대가 열리고 닫힌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걸 인류가 해내고 있으니 정말로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인류세라는 말을 회자하고 널리 알린 파울 크루첸에 따르면 “인간이 지질학적 힘이 된’ 시대, 지구 환경에 새겨진 인간의 흔적이 매우 크고 인간의 활동이 대단히 왕성해져 지구 시스템 기능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력이 자연의 거대한 힘들과 겨룰 정도가 되었다”(https://naver.me/F9nZA9ij 에서 부분 참조 인용)라고 할 정도다.


그럼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우리’는 겸허히 떠나면 될 일인가? 천만에, 인류 외에 다른 종의 종말을 자행하는 오만을 떨면서, 그것도 선택한 적 없는 환경에 처해서 서서히 고통받아 멸종할 미래의 인류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이 상태를 유지하고 내버려 두는가. 그게 바로 우리의 자녀, 우리의 조카, 우리의 손자가 겪을 일들이고 그들의 자녀, 조카, 손자가 겪을 일이지 않는가. 칼과 총을 쥐어주고 심장에 방아쇠를 당기도록 장치해 두고 나는 잘 살았으니 너는 알아서 살아내라며 우리의 생존 설정값을 기본으로 만들어 놓는다면 네, 감사합니다 할 수 있는 사람 있겠는가. 그것도 내 일가족, 친인척, 하다 못해 옆집 사람 중에 더 오래 살았다는 사람이 그 상황을 기획하고 방치한다면. 우리가 지금 내팽개치고 하는 행위가 모두 저렇다. 극단적이라고? 글쎄 기후 위기는 이미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범위를 지나쳐 가며 가속화 진행중이다. 몇십 년 전만 해도 낙천적일 수 있었으나 지금은 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한 만큼, 딱 그만큼 나빠졌기 때문이다. 휴대폰의 발전 속도에 맞춰 성장한 것은 바로 전쟁 무기들의 발전이다. 우리는 이제 지구 전체도 망가뜨릴 수 있는, 놀라운 기술을 손에 넣었다. 따라서 앞서 말한 지구 존속은 상관없는 시대라는 말을 바로 변경해야 한다.






이 놀랍도록 다채롭게 대재앙을 이끌어올 기후위기에 떠오르는 샛별은 무엇이 차지했을까? 개인? 다국적 기업? 놀랍게도 바로 ‘군사 활동’에 있다. 2020년, 영국 기후학자인 스튜어트 파킨슨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 산업분야의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항공 1.9%, 해운 1.7%, 철도 0.4% 등에 불과하지만 군사 활동에 따른 배출량은 전체의 5~6%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1997년 교토의정서 체제에서는 군사 활동의 배출량은 자동면제 대상, 2015년 파리협정에서 역시 군사부문 배출량을 감축할 의무도 명시되지 않아 각국의 국가배출량 통계에 군사분야의 배출량을 정밀하게 확인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렇게 불투명하고 불완전한 측정만으로도 수치가 저 정도라면, 전쟁에 따른 탄소 배출량과 그에 따른 기후위기의 심각성은 상상의 경계를 넘을지도 모른다. 이미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인한 탄소배출량은 인종청소에 가까운 재앙을 불러일으켰다고 알려졌다. 전쟁은 끝이 불분명하다. 국가 간 다툼이 끝났다 하더라도 파묻힌 전쟁 잔해로 인한 지속되는 사상자의 출현, 파괴된 환경으로 인한 셀 수 없는 위험과 재건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발생되는 폭력이 생명을 위기에 불어넣는다. 그러니 전쟁의 반대급부에 평화가 있다면, 평화가 지속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 기간은 군사 활동이 세련돼지는 작금의 현실에서는 그만큼 평화로운 환경을 생성하지 못하게 밀어내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인류가 이동에 지불하는 탄소 배출량에서 솟구치는 샛별은 무엇일까? 이동의 자유를 가진 만큼 책임도 져야 종차별에서든 인류 내 차별에서든 당당할 수 있지 않은가. 2014년 ‘혁신적 도시 이동 계획’(TUMI) 자료를 인용해 발표한 유럽환경청에 따르면  88인승 비행기 승객 1인당 1km 이동 시 285g, 자동차는 1.5명이 탔을 경우 같은 거리를 이동할 때 158g, 156명이 탄 기차는 14g을 배출하는 것으로 밝혔다. 놀랍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비행기’에 발생하는 탄소발자국이 제일 크다는 연구결과다. 비행기를 덜 타고 적게 타는 것이 바로 기후위기에 대비한 기본 예의라는 것이다. 하물며 수많은 전투기 이동만 생각해도, 군사 훈련은 상상 그 이상의 결과를 내어놓음을 이로써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제주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로 강정마을 강정천에 대형 교각이 설치되었다. 그 과정에서 인근 주상절리대가 붕괴했다. 주민들이 공사중단을 요구했으나 모두 무시되었다. ⓒ엄문희




제주도민 입장에서는 감사하게도 <평화의 섬, 제주>에 굳이 세계 자연유산 구럼비를 폭파하고 ‘해군기지’가 들어섰고 이제는 국토부 장관이 앞장선 프로젝트가 환경부를 통과해 ‘제2공항’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군사 훈련 기지가 참으로 다채롭게, 환경파괴 이동수단은 참으로 위험한 지역에, 강압적이나 표면적 ‘평화’를 유지하며 안착하고 안착할 예정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전쟁의 반대급부가 평화라면 그 평화를 저해하는 원인이 전쟁이라면 그 전쟁에서 가장 위험한 요소가 비행과 관련된다면, 전쟁에 지원될 모든 근거가 제주에 마련된 셈이다. 차라리 죽음을 부르는 섬, 제주가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아, 지금 생존 세대는 아슬아슬하게 연명하며 살아낼지도 모른다. 그러니 <죽은 평화의 섬, 제주>가 정확한 지칭이 돼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은 "프레시안"과 "제주투데이"에 공동 게재되었습니다.

이전 10화 딥페이크 사건이 아닌 딥페이크 포르노 테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