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 무렵 더욱 기승을 부린 더위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딥페이크’의 현재에 분노가 들끓는 시간이었다. 딥페이크란 인공지능 AI 심층학습을 의미하는 딥러닝(deep learning)과 거짓, 가짜를 의미하는 페이크(fake)의 합성어로 AI 기반 인간 이미지 합성 기술을 의미한다. 따라서 딥페이크 기술 자체는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인류의 문제고 그 안의 폭력이 문제다.
우리나라가 2024년 8월에 이 사건으로 발칵 뒤집히기 전, 같은 해 3월에 프랑스 신문 ‘르 몽드’는 “한국은 오랫동안 ‘불법 촬영 공화국’으로 불렸지만 이젠 ‘딥페이크 공화국’이 되었다…. 한국에서 수년 전부터 문제였으며, 이미 일상적이 일이 됐다.”라고 보도했다.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는 기사들을 읽으며 그중에 추려서 정리해 보았다. 표제를 대충 짜깁기 하면 이렇다. “외신도 짚은 한국 딥페이크, 여군 벗겨서 망가뜨릴 것, 텔레그램 이전엔 트위터 ‘지인 능욕’, 성적 매력 인정 받은 것, DM으로 내 딥페이크 사진이 왔다, 엄마 민증 공유하고 여동생 신상 유포, 딥페이크 성 착취물에 취약한 나라도 성 착취물에 등장한 인물도 한국이 1위, 등장인물 53%가 한국인 99%가 여성, 학교생활 함께한 범인” 지나치게 자극적인 것을 제외하고 딥페이크 영상에 분포된 내용과 분석 및 2차 가해 등, 사실만을 가져왔는데도 이 표제나 부제 속에서 직장, 학교, 연인, 가족의 가해자를 찾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졸업앨범이나 사진관에서 도용한 경우도 허다한데도 여성이 조심해야 한다는 댓글도 수두룩하다. 사람을 하나의 인격을 바라보지 못하고 무조건 성적 대상화하는 말들이 범람한다. 성 착취의 이유가 성적 매력 탓이라는 저 언의 폭력성에 치를 떤다.
딥페이크 불법 성 착취 영상 및 사진이 연일 보도되자 일부 남성 위주 커뮤니티에서는 이중 가입 등의 이유로 실제 가입자는 밝혀진 22만 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중에 모 국회의원도 이에 가세했다. 그는 과장된 숫자로 인해 불안이 과장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 했다. 그의 말대로 22만 명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경우라 하더라도 이것은 불법이며 성폭력이며 강력범죄이다. 역설적으로 이에 힘을 얻은 목소리가 높아지며 이 셀 수 없는 사건‘들’을 무마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자 바로 다음 사건이 터졌다. 22만(일부 남성 위주 사이트에서 분노할 숫자) 딥페이크 텔레방에 이어 40만(어떡합니까 줄이려 했는데 더 늘어났습니다.) 유사 텔레방 확인됐다는 것이다.
“수만 명의 여성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강간이나 구타를 당하고, 불구가 되고, 학대당하거나 살해되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여성혐오에 기름을 끼얹고 부채질할 목적으로 남성 커뮤니티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여성혐오를 적극적으로 조상하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이런 증오가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듯 인종주의적 분노와 뒤섞여서 나타나는 세상을 -중략- 당신은 그런 세상을 상상할 필요가 없다. 지금이 이미 그런 세상이기 때문이다.”( 로라 베이츠 저, 성원 역, 인셀 테러 , 위즈덤하우스, 전자책 11p-12P 중)
마치 우리나라 딥페이크 성 착취를 지목해서 쓴 것 같은 글이다. 공교롭게도 저 글대로 여성혐오는 인종 혐오도 함께 끌고 온다. 혐오의 기저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후 밝혀진 딥페이크 베트남 여성 박제방이었다. 한국은 변태의 나라라는 명예로운 오명을 뒤집어씌운 여성혐오와 인종차별을 제대로 버무린 작품을 이 나라의 소위 한 줌의 22만 ± 40만의 남성들이 저질렀다. 누군가는 신생아 연간 탄생인 23만 명인 것과 비교해 놓기도 했다. ‘딥페이크’라는 기술 아래 일어난 수백수천 수만 건의 기록이 모조리 각각의 사건이다. 태어난 생명이 23만에 묻힐 수 없듯이 인권이 각자 존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의 존엄이 폭력으로 훼손된 각각의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이 각각의 사건은 중첩되며 하나의 정치적 상징이 된다.
남성들을 중심으로 몇몇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여성들을 성 착취 폭력을 몇 년간 지속해 온,
지속적인 집단 폭력 사건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돌아보자. 대다수 선량한 한국 남성이 기분 나쁠까봐 우리나라에서는 집게손가락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게 됐다. 비슷하면 기본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 여성들은, 강간이나 살해나 스토킹 같은 범죄가 남성의 기분과 비교당하는 실정이다. 성폭력 범죄 사건을 이야기할 때도 가해자가 저질렀다는 표현보다 피해자가 성폭력을 당했다, 옷이 어땠다, 직업이 무엇이었다, 시간이 언제였다, 술을 마셨다 등등을 나열하게 한다. 그리고 그 고독하고 고립된 불쌍한 남성의 실수와 범죄는 대다수의 선량한 남성과 다르다고 반드시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 딥페이크같이 수십만의 민낯이 동시에 드러나도 마치 한 개의 사건인 것처럼 지나쳐야 한다. 집게손가락은 매번 각각, 파렴치할 뿐 아니라 너무 모욕적이어서 있을 수 없는 거대한 사건이 된다. 행위자는 직장에서 잘리고 정직 처분당하고 사죄해야 하고 기업은 대국민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해야 한다. 딥페이크에서는 어떠한가. 절반이 집행유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미국에선 최대 20년 형이 가능한 중죄로 처벌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사과조차 들은 적 없다.
추석이 지나며 점점 사건이 사그라드는가 싶었는데 기가 막힌 뉴스가 떴다. 여성성 상품화와 여성혐오 이슈로 공중파에서 물러난 상태로도 여전히 지속 중인 ‘미스코리아’에서의 질문이 문제였다. “딥페이크 영상 속 내가 더 매력적이라면 진짜 나와의 갭은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요?” BBC는 우리나라 딥페이크 불법 영상 사건들이 터져 나오자, 표제를 이렇게 썼다. “South Korea faces deepfake porn 'emergency'(한국, 딥페이크 포르노 ‘비상사태’ 직면)”. 시민의 한 무리가 다른 무리에게 증오와 경멸을 품고 집단 폭력을 가하면 우리는 그것을 테러라고 한다. 포르노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의 성적 행위를 묘사한 소설, 영화, 사진, 그림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타인의 모습을 불법으로 촬영, 자기만족을 위해 강간하고 착취하고 단체적으로 모욕 주는 행위는 따라서 포르노가 맞다. 생활은 언어에 영향을 끼치지만,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이 집단적 성 착취 행위를 “딥페이크 포르노”라 부르고 그들을 “테러 집단”이라고 정직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적어도 유구한 여혐의 역사를 지녔지만 68회나 이어온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네가 폭행당한 이유가 성적 매력 때문이라는 2차 가해 언어와 기저가 동일한, 소위 무해한 남성들의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질문 하나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