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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식 Jul 26. 2019

나를 반가워하지 않는 동창에 대해

무심한 표정 앞에서, 나는 결코 무심해질 수 없다.


나를 반가워하지 않는 동창에 대해



  ‘좋은 하루 보내’와 ‘좋은 하루 돼’의 차이에 대한 글을 적어볼까, 생각했다. 5분 전만 해도.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안 적으면 안 되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내려간 구미의 한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목이 약간 뻐근해 고개를 들었는데, 건너편 테이블에 중학교 동창이 앉아있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지는 10년이 지났고, 소식이 끊긴지는 6년이 다 되어가던 오래전 동창. 조금 놀랐고, 많이 반가웠다. 잠깐 망설이다 아는 체를 하려고 다가갔다. 동창은 모든 신경을 핸드폰에 쏟고 있느라 내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혹시 OO 맞지?”

“아, 어. 안녕.”

“정말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구미에서 계속 지내는 거야?”

“응. 너도 여기에 있어?”

“아니, 난 서울에서 지내. 주말에 잠깐 내려온 거야. 이제 내일 다시 올라가려고.”

“그렇구나. 그래, 안녕.”

“아, 반가웠어 정말. 잘 가!”


  순간 바쁘지 않으면 조금 더 이야기하자,라고 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동창의 표정이 먼저 대화의 문을 닫고 있었으므로, 나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닫히는 문에 손을 넣어 다시 여는 뻔뻔함을 나는 갖추진 못했다. ‘안녕’이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잘 가’라는 인사가 내 의식보다 먼저 튀어나와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만났고, 아주 짧게 대화했다. 그것이, 10년 만에 만난 동창과의 대화의 전부다. 그게 전부다.


  동창을 보내고, 어딘가 마음이 헛헛해서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이미 떠난 동창의 잔상이 그림자를 길게 내 의식 속으로 드리웠다. 표정, 그것이 가장 어른어른거렸다. 이질적이었다. ‘10년 만에 친구를 만난 사람의 표정’이라고 전혀 볼 수 없는, 그 맥락과 어울리지 않는 표정을, 동창은 내게 숨기지 않고 지어 보였다.

  나는 그런 표정을 본 적 있다.


  7년 전, 지하철에서 나는 옛 연인을 마주쳤다. 이별한 지 9개월 정도 되는, 그래서 어떤 앙금이나 아픔 같은 것들이 전부 가라앉았던 상태였으므로, 나는 자리를 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반갑게 인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깐 서성이다가 인사했다. 오랜만이네. 그리고 궁금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묻고 싶었다.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아, 어 안녕’을 끝으로 황황히 뒷걸음질하다가 사라졌다. 나는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게 전부다.

   카페에서 만났던 동창의 표정이 그녀의 표정 위로 겹쳐 보였다.


  10년 만에 만난 친구와 인사하는데, 왜 나를 반가워하지 않은 걸까. 반가움이 서로 엇갈리게 되면 더 반가워한 쪽은 씁쓸해진다. 반가운 마음이 하늘로 올라갔다가, 순식간에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그 서늘한 낙차에서 느끼는 먹먹함이 쓰다. 동창은 왜 옛 연인 같은 표정을 지었던 걸까. 나는 동창과 각별했던 연인 사이가 아니었다. 중학생 때, 서로에 대한 호감을 확인하긴 했지만, 연인 사이로 발전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를 진학한 탓에, 친구를 통해 그녀에 대한 소식을 건너들었고, 때로 날을 정해서 몇 달에 한 번씩 종종 만났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내가 다니던 교회에 그녀도 나오게 돼, 우리는 매주마다 반가워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몇 달에 한 번씩 주고받던 소식도, 1년에 한 번씩으로 줄어들었다. 모든 기억을 동원해봐도 그녀가 원한을 가질만한 행동을 나는 하지 않았다. ‘실망’이라든가, ‘절교’ 같은 단어는 우리 사이에 더더욱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녀는 당혹스러워했을까.


  오래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일이 엄청난 상처가 되지도 않았다. 다만, 동창의 표정은 내 기억에 균열을 일으킨다. 나도 모르게 놓쳐버렸을, 아무 의식 없이 저질렀던 실수, 무례 같은 것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있던 것은 아닐까, 같은. 그러니까, 그녀가 나를 보면 마땅히 그런 표정을 지을 정도의 잘못을 정말 나는 하지 않았나. 그런 반성. 이런 일은 나도 모르게 나의 선함을 굳게 믿는 내 삶을 덜컥거리게 만든다. 네 주변의 사람들을 한번 돌아봐. 너는 정말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니. 악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마땅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으로 네 잘못으로부터 애써 고개를 돌리는 건 아니니. 네 무례함을 스스로 외면하진 않니. 그 표정은 아주 무심하게 그런 질문을 내게 건넨다. 나는 무심한 그 표정 앞에서 결코 무심해질 수 없다. 그렇지 않다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땅히 그럴 수 있다’라는 생각은 종종 무례함도 거뜬히 소화시켜버린다. ‘많은 경우, 마땅할 순 없다’라는 생각이 보수적이지만,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서는 차라리 섬세한 생각일 것이다. (2019.7.26.)


* 부기. 그날 만난 동창을 '친구'라고 처음 적었다가, 전부 지우고 '동창'으로 고쳐 적었다. 그게 더 정확한 표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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