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룽설의 집으로 씽씽이를 타고 가던 길에 새삼스러운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매일 한두 시간씩 집 근처로 산책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자주 성당을 지나쳤다는 생각이. 집 주변으로는 행운동 성당, 남성역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는 사당5동 성당, 또 친구와 자주 만나는 곳인 방배동 성당까지, 딱히 그곳에 가려고 간 게 아니었는데 걷다 보면 우연히 만나게 되는, 그런 곳들. '내가 자주 성당을 만났구나'라는 자각을 뒤늦게 하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 어딘가 한편으로 고즈넉한 여유로움이 스며들어왔다.
내가 만난 성당들의 특징은 지역의 중심지에서 조금 비껴 나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다고 찾아가기 힘들만큼 구석진 데는 아닌 곳에 있었다. 둘째도 있는데, 성당이 위치한 오묘한 거리감(떨어져 있으면서도 너무 떨어진 것은 아닌) 덕분에 주변 지역의 분위기와는 별개로 성당만의 독특한 '공간적 정서'가 물씬 배어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셋째는 또 둘째와 연관되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길을 걷다가 우연히 성당을 보면 그곳의 정서에 절로 젖게 되면서, '이곳이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성당이구나'라는 인식과 함께 이상한 위로를 받기도 한다는 것. 넷째, 성당의 건물은 대체로 위압적이지 않고 적당한 크기로 겸손하게 서 있다는 것.
이런 특징들에게서 왜 나는 이상한 위로를 받았던 걸까, 를 생각해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때로 초월은 범박한 일상에 가만히, 그리고 조용히 스며들어있구나, 라는 생각을. 굳이 고개를 올려다보거나, 본능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초월을 경험해보고자 애쓰지 않아도, 초월은 오히려 일상에 이미 내려와 있었던 것이라고 성당은 고요히 내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굳이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교회 건물의 면모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어떤 교회는 앞서 말한 성당의 네 가지 특성과 정반대의 특징을 띈 것 같다는 슬픈 생각과 함께. 지역의 중심지에 위치하고자 애쓰는 교회, 위압적으로 거대해서 주변 지역의 공간감(건물, 자연 등)마저 자신의 풍채로 흡수해버리는 교회, 그렇게 스스로의 존재를 끊임없이 확장하려는 교회.
내용이 있어 형식이 주조되는 게 아니라 형식이 있어 내용이 고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면, 건물을 일종의 형식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생각했다. 건물이라는 형식에 고인 예수의 복음이라는 내용을 생각한다면, 성당의 형식은 어떤 교회의 형식보다 조금 더 예수의 내용을 닮아있었다. 형식은 그리고 건물만이 아니라 개인의 인격에도 적용할 수 있을 터. 그런 면에서 '나'라는 개인의 형식은 예수의 내용을 얼마나 담고 있는가, 라는 반성도 함께 들었다. (2020. 6.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