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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옹수 Aug 27. 2019

사랑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공자가 주장했던 사랑은 보편적인 것이었나?

타자와의 소통은 기본적으로 나와 타자 사이에 간극이 있음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나와 타자를 가로막고 있는 깊은 간극을 이해할 때 비로소 타자와의 소통이란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타자 사이를 가로막은 심연을 건너뛰려는 결단과 용기를 갖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타자에게로 건너가려는 자신의 시도가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어느 경우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에 소통이라는 개념이 함축하는 심각한 의미가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자 孔子 (BC511~BC479)라는 인물이 중국 철학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게 된 것도 비로 이 때문이다. 그는 나와 타자 사이의 길 道, 즉 소통의 방법에 대해 가장 먼저 진지하게 숙고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공자 孔子 (BC511~BC479)
자공 子貢이 물었다. "평생에 지침이 될 만한 한 말씀이 있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서恕일 것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 己所不慾, 勿施於人!"
≪논어 論語≫, <위령공 衛靈公>


자공 子貢 이란 제자는 공자에게 평생 동안 시금석이 될만한 가르침을 청했다. 그러자 공자는 '서'라는 하나의 행위 원리를 제안한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 서恕 라는 한자를 '같다如'와 '마음心'의 두 글자로 분석하여 이해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타인의 마음을 나의 마음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곧 '서'의 의미라는 것이다. 인용문에서처럼 공자의 말에 따르면 '서'라는 원리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라는 명령으로 간략하게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보야할 것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 己所不慾"이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 안에는 공자가 강조하려고 했던 주체의 자기반성의 역량이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주체가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즉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먼저 반성해보지 않는다면, 이 요구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주체로 하여금 반성을 하도록 만들었던 타자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타자와 만났기 때문에, 그리고 그에 대해 생각 없이 행동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공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먼저 성찰해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장자 莊子 (BC369~BC289?)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장자 莊子 (BC369~BC289?)라는 철학자가 등장하게 된다. 중국 철학사에서 장자라는 인물의 중요성은 그가 바로 공자 사유의 핵심, 즉 서의 논리를 집요하게 문제 삼았다는 데 있다. 물론 이것은 장자가 관념 속에서 정립된 타자가 아니라, 삶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진정한 타자를 새롭게 이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점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바닷새 이야기'라고 불리는 다음의 에피소드이다.


너는 들어보지 못했느냐? 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서울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음악을 연주해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하였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자기와 같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지 않으 것이다.
≪장자 莊子≫, <지락 至樂>


앞서 공자가 강조한 행위 원리를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남에게 행하라"라는 말로 바꿔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점을 문제 삼으면서 장자는, 가령 공자의 원칙이 타당하려면 '자신이 원하는 것'과 '타자가 원하는 것'이 항상 동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어떻게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도 똑같이 원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왜 내가 타인을 만났을 때 다시 성찰해야 한다고 요구했던 것일까? 어차피 나의 호오 好惡는 상대방의 호오와 동일한 것일 텐데 말이다. 이런 의문점들 때문에 장자는 에피소드 하나를 만들어 공자의 사유를 조롱했던 것이다. 우연하게 만나게 된 바닷새를 노나라 임금은 자신의 가까이에 두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 많은 것을 기꺼이 새에게 주고 경험하도록 했다. 하지만 결과는 오히려 새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데 이르고 말았다. 장자는 만약 공자의 말대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베풀어주어도 이런 비극적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려고 했던 것이다.


장자는 노나라 임금의 경우를 비유로 들면서 공자와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행동 원리를 제안한다. 그것은 공자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는 원리가 아니라 "남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원칙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상대를 대하지 말고 오히려 나는 원하지 않더라도 상대가 정말 원하는 것으로 그를 대우하라는 말이다. 진정한 사랑은 바로 이런 것 아닌가?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비록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그것을 기꺼이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니 말이다. 장자의 비판을 통해 우리는 공자 사상이 가진 가능성과 한계를 아울러 직감할 수 있다. 그의 위대함이 타자에 대한 감수성에 있었다면, 그의 한계는 그가 제안한 행위 원리가 타자에 대한 그의 감수성에 걸맞지 않게 폭력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데 있었다. 그렇자면 공자가 제안했던 최고의 가치, 즉 인仁이란 덕목도 결국 이런 한계를 가지고 있는 개념이 아니었을까?


흔히 공자가 강조한 인 개념은 보편적인 사랑을 의미한다고 이해되어왔다. 예수 Jesus Christ (BC 4?~30)의 사랑이나 싯다르타 Gautama Siddhārtha (BC563?~BC483?)자비 慈悲, maitri-Karuṇa와 상호 비교되면서 말이다. 이 때문에 공자는 예수 그리고 싯다르타와 함께 인류 3대 성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공자의 인 개념을 엄격하게 비판하면서 등장한 묵적 墨蹟 (BC470?~BC390?)이란 철학자의 주장을 함께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그는 겸애 兼愛, 즉 "모든 사람을 사랑하자"라는 슬로건으로 유명했던 사상가였다. 만약 공자의 인이 당시에 이미 보편적인 사랑을 의미했던 것이라면, 묵적의 슬로건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멍청한 자의 주장에 불과했을 것이다. 바로 얼마 전에 모든 사람을 사랑하자는 의미의 인을 주장한 공자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왜 다시 동일한 슬로건인 겸애를 주장하면서 공자의 한계를 비판하려고 했겠는가? 이런 의문을 가져본다면 오히려 당시 공자의 인 개념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맥락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해볼 수 있다. 그렇기에 묵자라는 인물이 공자가 주장한 덕목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보편적 사랑으로서 겸애를 주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공자의 인이라는 개념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고, 묵자는 공자 주장의 어떤 점을 문제 삼았던 것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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