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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옹수 Aug 28. 2019

사랑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공자]

"지배층의 화목이 사회 전체의 화목을 가능하게 한다."

마테오리치 Matteo Ricci (1552~1610)

기독교가 처음 동양에 들어왔을 때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마테오리치 Matteo Ricci (1552~1610)와 그의 책 ≪천주실의 天主實義≫였다. 당시 유학 사상을 신봉하던 동양 사람에게 기독교는 이질적인 사유 전통일 수밖에 없었다. 유학 전통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살아 있을 때 이상적인 인격, 즉 성인 聖人이 될 수가 있다. 그렇지만 기독교는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상적인 인격에 도달할 수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은 신의 감시와 심판을 받는 열등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유학 사상 사이의 이런 간극을 미봉하기 위해서 마테오 리치 때문이다. 기독교와 유학 사상 사이의 이런 간극을 미봉하기 위해서 마테오 리치는 기발한 전략을 선택한다. 그 핵심은 기독교의 핵심 범주인 '사랑'을 '인仁'이란 유학 개념으로 번역했다는 데 있다. 동양 사람에게 공자와 그의 어론인 ≪논어≫는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하고 있다는 현실적 판단 때문이었다. 마테오 리치는 공자의 권위를 빌려 기독교를 선교하려고 했던 것이다. 바로 이 순간 '인'이란 유학 범주에 '사랑'이란 의미가 강하게 덧 씌워지게 된다.


하지만 과연 '인'이란 용어는 '사랑'이란 개념으로 번역 가능한 것이었을까?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는 ≪논어≫에서 '애인愛人'이란 말이 어떤 용례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먼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공자가 말했다. "천승의 국가를 다스릴 때에는, 일을 공경히 하여 신뢰가 있어야 하며, 쓰는 것을 절약하여 애인愛人해야 하며, 사민使民할 때는 철에 맞게 해야 한다."
≪논어≫, <학이學而>


여기서 우리는 공자가 인간을 가리키는 2 종류의 개념을 별도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애인'이라고 할 때의 '인'이고, 다른 하나는 '사민'이라고 할 때의 '민'이다. 자전을 넘겨보면 '人'이란 한자는 '사람 인'으로, 그리고 ''이란 한자는 '백성 민'으로 풀이되어 있다. 따라서 이에 근거하면 '애인'이란 표현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이 되고, '사민'이란 표현은 '백성을 부린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공자의 의식 속에는 2 종류의 사람이 구분되어 있었던 셈이다. 하나가 '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로서 마땅히 사랑받아야만 하는 존재라면, 다른 하나는 '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로서 다른 이에게 부림을 받아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와 같은 공자의 차별적 인간관은 그가 살았던 춘추시대 春秋淹城의 문헌들을 살펴보면 너무도 당연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당시 몇몇 문헌들을 살펴보면 '노민 魯民' '진인 晉人' '제인 齊人'이라는 용어들은 각각 '노나라의 지배층' '진나라의 지배층'을 가리키고 있다. 반면 '노민 魯民' '진인 晉人' '제인 齊人'이란 용어들은 각각 '노나라의 피지배층' '진나라의 피지배층' '제나라의 피지배층'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각 국가에서 '인' 계층들은 자신들 스스로를 '국인國人'이라고 불렀다. 지배층이었던 국인들은 제후를 필두로 해서 국가의 군사, 제사, 외교 문제 등을 장악했고, 아울러 그 국가의 민과 토지를 모두 지배하고 있었다. 민은 국가의 토지를 경작하는 직접 생산자였는데, 사료를 살펴보면 민과 토지는 이미 국인의 소유물로 간주되고 있었다. 이처럼 각 제후국은 '인人'이 '민民'을 지배하는 차별적 정치구조를 분명한 형태로 실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방금 읽어본 ≪논어≫ <학이>편에 등장하는 구절, 즉 "쓰는 것을 절약하여 애인해야 하며, 사민할 때는 철에 맞게 해야 한다"라는 공자의 말은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쓰는 것을 절약하여 국인들을 사랑해야 하며, 민중을 부릴 때는 철에 맞게 해야 한다." 결국 공자가 강조한 '애인'이란 우리가 예상하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을 의미했던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가 강조했던 것은 '지배층 내부에만 국한되는 특수한 형태의 사랑'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인과 애인 사이의 관계를 더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서 공자와 번지樊遲라는 그의 제자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잠시 읽어보도록 하자.


번지가 인仁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인人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혜로움知에 대하여 묻자, 공자는 "인人을 알아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번지가 잘 알아듣지 못하자 공자는 말했다.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여 바르지 못한 사람 위에 놓으면, 바르지 못한 사람도 정직하게 만들 수 있다."
≪논어≫ <안연顔淵>


아직도 많은 사람은 바로 이 구절에 근거해서 공자의 인仁이 사람들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을 가리킨 것이었다고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공자가 말한 인人이 한정된 사람들, 즉 지배계급의 특정한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것이었음을 상기하면 의미가 좀 달라진다. 공자의 인仁은 지배계급 내부에서 이루어지던 정서적인 상호 배려라는 정도의 의미를 갖던 것이기 때문이다. 인이 한정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점은, 지혜로움이란 "인人을 알아보는 것"이라는 공자의 말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될 수 있다. 이어지는 부연 설명에서 공자는 자신이 말한 인人이 기본적으로 관직에 등용될 수 있었던 지배계급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민중民은 따라오도록 하면 되지 알게 해서는 안 된다" (≪논어≫ <태백泰伯>)라고 말했던 공자 말의 의미에 대해서도 더 이상 고개를 갸우뚱거릴 필요가 없다. 그에게 민民 일반이란 인人과는 전혀 다른 지배의 수동적 대상을 가리키던 존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자가 당시 강조했던 인仁이란 덕목은 보편적 사랑이 아니라, 귀족계급 내부의 애정 혹은 상호 간의 배려 정신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점은 인仁이란 글자의 부수로 귀족계급을 상징하는 인人이란 글자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되는 것이다. 한편 인仁과 함께 공자 사상의 핵심인 또 다른 개념, 즉 는 개념에도 귀족계급을 편애하는 공자의 속내가 유사하게 반영되어 있다. 공자의 추종자들이 예의 종류와 그 의의를 기록해두었던 ≪예기禮記≫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구절 하나가 등장한다.


예는 서민들에게까지 적용되지 않고, 형벌刑은 귀족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예기≫, <곡례曲禮> 상편


공자가 이상으로 숭배했던 주周나라는 단순히 예만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했던 것은 아니었다. 주나라에는 수많은 형벌도 합께 존재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예가 지배 귀족 사이의 위계질서를 유지하고 통치계급 내부의 분열을 막기 위해 사용된 것이었다면, 형벌은 평민을 비롯한 피지배층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던 것이었다. 형벌은 결국 육체적인 형벌로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피지배층이 사회질서를 어지럽혔을 때 지배층은 그들에게 매우 잔혹한 육체적 형벌을 가했던 것이다. 그 육체적 형벌에는 죄의 경중에 따라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것, 코를 자르는 것, 생식기를 잘라내는 것, 발뒤꿈치를 잘라내는 것, 아니면 사지를 찢어 죽이는 것 등,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온갖 종류의 가혹한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었다. ≪예기≫에 따르면 피지배층들이 육체적 형벌을 받는 조항은 무려 3,000가지 이상이나 되었다고 한다.


공자에게는 문화와 문명의 상징으로 간주된 주나라에 이처럼 반문화적이고 반문명적인 육체적 형벌들이 다수 존재했다는 점이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공자가 강조했던 예는 이와 같은 잔혹한 육체적 형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지배 귀족 내부에는 군주와 신하, 부모와 자식, 형과 동생 간의 위계와 서열이 있었고, 이에 따라 의복, 음식, 거주, 상례, 결혼 등에 적용되는 '예'라는 행위규범이 다양하게 실행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어떤 귀족이 '예'를 어겼을 경우, 그에 대한 처벌은 단지 정신적 형벌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신적 형벌은 말이 형벌이지, 사실상 동료 귀족들의 나쁜 평판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수치심을 느끼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예'를 어기는 경우 귀족에게는 처벌이랄 것도 없는 경고와 개인 반성 정도의 조치가 취해졌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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