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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옹수 Aug 28. 2019

사랑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묵자]

"일체의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아끼고 도와야 한다."

맹자 孟子 (BC372?~BC289?)

공자를 추종했던 유학자들, 특히 맹자 孟子 (BC372?~BC289?)와 같은 유학자는 공자의 사상을 인의仁義라는 말로 정리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인이 지배계급 내부의 상호 배려로서 '애정'을 의미한다면 의는 지배계급의 관습적 에티켓인 예절禮에 맞는 행위들의 '합당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배계급 내부에서 인과 의는 각각 정서적 유대의 측면과 형식적 예절의 측면을 나타내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특정 계급에 한정되어있던 인과 의라는 슬로건을 계급 구별을 넘어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확장시킬 수 없을까? 우리가 살펴볼 묵적이라는 철학자, 즉 묵자 墨子의 속내는 바로 이 점에 있었던 것이다. 그가 '겸兼'과 '교交'라는 글자를 수없이 반복해서 사용했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글자는 공자가 말한 차별적인 애정에 대해 모두 '차별이 없음', '두루 아우름' 혹은 '상호 관계'등의 의미를 부각하려고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강자는 반드시 약자를 핍박할 것이고, 부자는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며, 신분이 높은 자는 비천한 자를 경시할 것이고, 약삭빠른 자는 반드시 어리석은 자를 기만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전란과 찬탈과 원한이 일어나는 까닭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반대하면 무엇으로 그것을 바꾸겠는가? 묵자가 말했다. "서로 사랑하며兼相愛 서로 이롭게 하는 交相利 원칙으로 그것을 바꾼다."
≪묵자≫, <겸애> 중편


묵자는 모든 전란, 찬탈, 원한이 발생하는 이유를 '서로 사랑하지 않는'사태에서 찾으려고 했던 사상가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묵자 철학을 상징하는 '겸애'라는 개념이 의미심장하게 대두한다. <겸애> 상편을 보면 겸애를 외치는 묵자의 절절한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여 남을 자기 몸처럼 아낀다면, 어찌 불효자가 있을 수 있으며, …… 어찌 자비롭지 못한 자가 있겠는가? 남을 내 몸처럼 본다면, 누가 (또한) 절도를 할 것인가? …… 따라서 도적이 ㅇ벗을 것이고, 또한 귀족이 남의 봉토를 침입하고 제후가 남의 나라를 침입하는 일이 있겠는가? 남의 나라를 내 나라로 보면 누가 공격을 하겠는가?"
≪묵자≫, <겸애> 상편

결국 묵자가 강조한 겸애는 남의 집을 내 집처럼, 남의 아버지를 내 아버지처럼, 나의 국가를 내 국가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간단한 원리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래서 몇몇 학자들이 묵자의 사랑을 "원수마저 사랑하라"라는 예수의 사랑과 종종 비교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이처럼 그에게 '겸애'라는 표현은 표면적을 볼 때 '차별이 없는 사랑' 혹은 '상호 간의 사랑'을 의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묵자의 '겸애'가 기독교적 사랑과 유사한 '평등박애'를 의미했던 것이라고 속단해서는 안된다. 묵자의 '겸애'는 현존하는 정치적 질서나 위계적 구조를 긍정하는 토대 위에 실현 가능한 사랑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묵자는 공자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가족제도나 정치질서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따라서 묵자가 주장했던 '겸'은 단지 '나'와 '남'의 차별을 없애자는 것이었지, 부모, 집안, 도읍, 국가라는 정치적 단계나 구별을 없애자는 것은 아니었다. 이 점에서 묵자의 '겸애' 또한 '평등 박애'였다기보다는 '불평등한 박애'를 의미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묵자의 사랑과 관련해 한 가지 더 주목해볼 점은, 그가 말한 사랑이 정서적 유대감을 넘어 물질적인 상호부조로까지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묵자는 사랑이 아끼고 배려해주는 단순한 감정을 넘어서 물질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묵자는 항상 '겸애' 혹은 '겸상애 兼相愛'라는 표현을 '교상리 交相利'라는 표현과 함께 사용했다. 참혹한 살육으로 점철된 전국시대 민중의 삶이 고통 그 자체였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묵자는 이 당시 민중의 고통을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정리했다.

"굶주린 자가 먹을 것을 잊지 못하고 추운 자가 옷을 잊지 못하며 수고하는 자가 휴식을 얻지 못하는 것, 이 세 가지가 민중의 커다란 환난이다.
≪묵자≫, <비악非樂> 상편

이에 준해본다면 당시 군주들이 민중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었다. 반드시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하고, 추운 자에게 옷을 주어야 하며, 노동이나 병역으로 지친 자에게 휴식을 제공해야만 백성을 아끼는 군주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 안에서 민중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민중에게 가장 유효한 이익을 제공해줄 수 있는 자는 바로 다름 아닌 군주 자신이다. 그렇기에 묵자는 '윗사람을 높이 받들며 따라야 한다尙同'는 독재론마저 피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묵자의 무리들이 독재를 지향했던 전체주의라서가 아니라, 군주야말로 국가 안에서 유일하게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이익을 제공할 수 있는 실질적 재력과 권력을 지닌 존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묵자≫에 등장하는 다음 4가지 주장 또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전쟁을 금지해야 한다 非攻."
"재정 지출을 절제해야 한다 節用."
"장례를 절제해야 한다 節葬."
"음악을 금지해야 한다非樂."

겸애를 실천하는 군주는 민중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주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군주는 허례허식에 드는 비용을 줄여야 하고, 재정 지출을 절제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민중의 삶 자체를 고통에 빠뜨리는 전쟁도 수행해서는 안 된다.


결론적으로 볼 때 묵자는 지배계급에게만 한정되어 있던 공자의 인仁개념을 겸애로 확장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정서적 유대의 원칙으로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 나아가 의義라는 행위 규범도 실질적으로 상호 간에 이익을 제공하는 교상리交相利의 원리로 확장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묵자가 보편적 사랑이나 이익의 공유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위계적 정치제도 그 자체에 대해선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표방한 사랑의 철학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거의 법가法家의 절대군주에 버금가는 독재 군주를 주장하는 자충수를 두었을 뿐이다. 가령 그들이 기대한 독재 군주가 사랑의 철학을 실현하지 않을 때 묵자는 그것을 제지할 수 있는 장치까지 생각해두었던 것일까?


천자는 천하에서 가장 귀한 사람이며 천하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그리고 부하고 귀한 사람은 마땅히 하늘의 뜻을 따라서 순종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하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며 서로를 이롭게 해 주기 때문에 반드시 하늘의 상을 받을 것이다. 하늘의 뜻에 반하는 사람은 서로를 미워하며 서로를 해쳐서 반드시 하늘의 벌을 받을 것이다. ≪묵자≫, <천지天志> 상편


동중서 董仲舒 (BC176~BC104)

가령 독재 군주가 보편적 사랑이나 이익 공유의 정책을 실시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위험성을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묵자는 바로 상제上帝라고도 불리는 하늘과 귀신의 의지를 긍정하는 초월적 공교론을 피력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늘과 귀신은 사랑의 철학을 실현하는 군주를 도와주고, 그렇지 않은 군주에게는 재앙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묵자의 종교론을 수용할 군주가 당시 몇 명이나 있었을까? 묵자가 제안했던 사랑의 철학이 현실적으로 무기력한 이상에 불과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독재 군주를 통제하기 위해서 '하늘의 뜻 天志'을 설정하고자 했던 묵자의 생각이 후대에 천인감응 天人感應의 형태로 동중서 董仲舒 (BC176~BC104)에 의해서 다시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동중서의 천인감응론은 군주가 어진 행동을 하는지 그렇지 않는지의 여부에 따라 하늘이 그에 상응하는 복과 화를 내린다고 본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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