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가치
본가 액자에 적혀있는 가훈을 바라보다 초등학생 때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내가 생각난다. 가훈을 적어오라는 숙제에 ‘착하게 살자’라고 적었다.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하기도 귀찮았고, 사실 무슨 말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줄곧 이름의 가치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스스로를 업신여기면 남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면 남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는 사소하지만, 남이 보기에는 큰 차이로 느끼게 된다.
잊고 지내던 가훈을 한참 바라보다 생각에 잠겼다.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성공이 무엇인지 모른다. 대학생 때는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학생회장’을 자처했다. 사회에 나와서는 돈을 벌고 싶어서 평일엔 ‘회사원’이었다가 주말에는 ‘아르바이트생’이 되었다. 쇼핑몰을 준비했을 때 낮에는 ‘사원’ 퇴근 후엔 ‘사장님’이 되었다. 출판 계약을 하자 사람들은 나를 작가님, 선생님이라 불렀다. 작가 구본형은 자신의 책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에서 회사의 직위 담긴 명함을 제외하고 스스로 만든 명함을 만들어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만든 명함을 지갑에 간직하고 있다가 자신과 말과 꿈이 통하는 사람에게 건네주라는 것이었다. 나의 별도 명함에는 이름과 전호번호만 적혀있을 것 같다. 해마다 변하는 직위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칭찬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 ‘자기 애’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말한다. 자기애를 통해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만족과 성취를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게 되면 나에 대해 감탄해주는 곳은 줄어든다. 사회와 미디어로부터 ‘어제의 나’는 반드시 넘어서야 하는 존재로 받아들인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사회적 활동을 뜻하는 ‘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에게조차 내세울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무기력’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존재가 조직, 혹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낀다.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이름’을 사회에 알리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공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좋아하는 일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좋아하는 것을 ‘경제적인 관점’에 중점을 두고 찾기 때문이다. 성공에 대한 열망은 가득하지만 무엇이 성공인지도, 어떻게 해야 성공을 할 수 있을까 불안해한다. 자신의 이름이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이름이 쓰이는 곳에서 만족감을 얻는지 생각해보자. 자신이 이름이 적힌 곳에 만족을 하지 못한다면, 불안해하자. 불안을 느낀다는 것은, 스스로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는 것이다. 불안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게 되고 뚜렷하게 행동하게 된다.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고 불안과 더불어 성장해야 한다. 불안은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름의 ‘위치’와 ‘가치’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