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우울은 숨겨야 한다.
대한민국은 1964년 유엔무역개발회의가 설립되고 최초로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된 나라이다. 고개를 들어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를 둘러보았다. 고용주들은 여전히 더 빨리 , 더 많이를 외치고 있고 노동자들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노동환경과 불안한 미래에 대해 두려워한다. 삶의 질 지수는 어떠한가? 2017년 22위에서 2021년 42위로 하락했다.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은 왜 더 불행해진 것일까?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같은 시간 동안 두배의 양을 생산해 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우리의 사고는 더불어 성장하지 못했다. 사실 우리의 사고는 변함없이 과거에 머물러있다. ‘노력’과 ‘생산성’, 경제성장의 바탕이 되어 개도국이었던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만든 단어이다. 무한 경쟁과 노력 끝에 마침내 안정이 있을 거라는 말 뒤에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얻은 것은 더 많은 노동과 피로, 박탈감과 번아웃뿐이었다. 대중들은 경제성장을 이룩해온 ‘생산성’의 가치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태된 사람이라 함은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즉, 일을 못하는 사람이다. 삶의 질 지수가 하락한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남들에게 행복하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으로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번아웃을 공식 질병으로 인정하고, 번아웃을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그들을 수용하진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는 우울하고 무기력한 사람들까지 수용할 만큼 자애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안과 우울을 숨긴다. 나의 우울감이 드러나는 순간 나약하고 도태된 사람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을 남몰래 집 앞으로 우울증 약을 처방받기를 원한다.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가는 길에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신병원 진료 이력이 알려지면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을까 봐 불안하기 때문이다. 일을 하기 위해 미친듯이 노력하고 달려온 결과 번아웃이 찾아왔고, 사회는 번아웃을 수용하지 못했다. 일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때면 “내가 무엇때문에 일을 하고 있나” 한탄 한다. 즉, 직업과 계층에 상관없이 생산성에 대한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중들의 생산성에 대한 의구심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잡히지 않는 미래를 불안해하기보다 작고 소박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트렌드코리아 2022』에서 ‘러스틱라이프’를 2022년 트렌드 키워드로 언급했다. ‘러스틱라이프’란 자연과 시골로 떠나 소박하게 안정을 누린다는 것이다. 사실 전국적으로 캠핑 열풍이 불고, 귀농귀촌은 전부터 자리 잡은 라이프스타일이다. 하지만 러스틱라이프가 뉴노멀(New Normal)로 자리 잡았다는 것은 정신건강의 해소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것이다. 대중들의 정신건강과 불안의 대리 해소가 자연으로 향한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러스틱라이프를 실현한다. 어떤 이는 산책로를 걸으며 자연의 소리를 듣거나, 어떤 이는 한 달 동안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다. 어떤 이는 지방에 거점을 두고 평일은 도시에서 생활하고 주말은 지방에서 휴식하는 ‘오도이촌’을 통해 러스틱라이프를 실현한다. 사람들은 왜 러스틱라이프를 실현할까? 우리가 미친 듯이 일하고 잠을 포기해가며 공부하는 이유는 편하게 놀고 잘 살기 위함이다. 즉,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이다. 죽어라 일만 하는 것이,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깨졌기 때문이다.
쉰다는 것은 게으름 피운다는 것이다. 게으름 피운다는 일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스트레스와 불안을 털어내고 일상으로 돌아와 보다 나은 삶을 살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러스틱라이프를 실현한다. 이 말은 곧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안과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불안을 드러내자. 불안을 직시하고 삶을 재건하자. 숨길수록 더 드러나는 것이 불안이다.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의 삶의 질 지수가 하락한 것은, 물질적으로는 과거보다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으로는 가난해졌다는 것이다. 경제가 저성장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불안을 숨기며 노력 또 노력을 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신화가 깨졌다고 느끼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부모세대나 혹은 그 부모의 세대가 일구어온 경제성장의 신화에 의구심을 품는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인 일이다. 진정한 위기는 위기 속에 있어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경제성장이 없어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