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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Aug 20. 2020

층간 소음이 가족 관계에 미친 영향

살면서 배웠던 배움들이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퇴근 후 유일하게 가족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에 던지는 질문이 축소되었다. 나의 일상을 공유하고 가족의 일상을 듣는 일이 사라졌다. 소음을 피해 최대한 늦게 집으로 들어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었으나 가장 큰 이유는 질문의 빈도가 줄어들었다.


오늘은 특별한 일 없었어요? 무슨 일 있었어요? 오늘은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어요, 오늘은 어땠어요, 와 같은 호기심 짙은 물음과 나의 하루가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일이 점차 사라졌다. 걷잡을 수 없는 소음이 지속되고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가 가족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로 압축되었다.


"오늘은 어땠어요? 견딜만했어요? 많이 시끄러웠어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크게 변하지 않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가족과 말하지 않았고 소통하지 않았고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가족 관계는 서서히 단절되었다.


나는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관리 사무소에 연락해보고, 경비실을 통해 연락해보고, 쪽지를 위층에 직접 남겨봤지만 변화는커녕 더 끔찍해져 가는 소음을 막을 수 없는 내가 너무너무 미웠다. 내 존재가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느껴졌다. 살면서 배웠던 배움들이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스스로를 열심히 미워하다가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나는 가족을 미워했다. 나는 힘없는 나를 괴롭히다가 지쳐버렸다. 그래서 부끄럽게도 가족을, 정확하게 말하면 부모님을 원망했다.


미친 듯이 뛰는 소음을 피해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꼬릿꼬릿한 냄새가 가득한 복도 계단에 앉아있으면 위층 가족들이 외출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문 여는 소리와 말소리와 발소리가 들렸다. 옹기종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그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왜 하필 우리 집이지? 왜 그럴까? 우리 가족의 고통을 무시하는 거지? 지금 나가면 언제 올까? 우리 집은 언제까지 고요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지금 집으로 들어가면 고요할까? 나는 몇 걸음만 더 올라가면 그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가만히 앉아 있는 일이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그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나는 또 생각했다. 왜 나는 이러고 있어야 할까? 왜 우리 집은 이사 가지 못하는 걸까? 왜 우리 집은... 왜...


'왜?'는 언제나 과거를 향해 갔다. 정해진 현재에 끊임없이 의문을 부여하며 나를 괴롭혔다. 그러면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또 마주하고, 이런 상황이 싫어서 괜히 부모님을 탓하며 애써 현실을 외면했다. 


사실, 부모님이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아주 오랜 인내의 시간을 견딘 후에야 말을 건넨 것. 그뿐이었다. 이게 최선이 아니면 뭐가 최선이었을까. 우퍼 스피커를 사서 울릴 수도 없고, 올라가서 힘겨루기를 하며 싸울 수도 없고, 경찰을 부를 수도 없고. 부모님은 부모님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있는 힘을 쥐어짜서 아래층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으니 말이다. 상황이 급격하게 변하지 않았을 뿐. 이 미친듯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싫었을 뿐. 그뿐이었다.


나는 계단을 올라가지 못했다. 나는 겁쟁이었다. 올라가면 무슨 말을 들을지,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두려웠다. 소음으로 인해 너무 괴로우니 살려달라는 모든 신호를 무시한 채 자신들의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기 고통스러웠다.


그럴수록 나는 내 가족을 더 많이 원망했다. 그럴수록 나는 내가 참 많이 싫어졌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저 위층 사람들이 내 가족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 똑같은 상황을 마주한다면 어떤 행동을 보였을까?


나보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을 마주할 때도 같은 호기심이 머리를 가득 채웠고 그들이 답을 가지고 있다면 제발 알려달라 빌고 싶었다.


힘든 일이 있으면 같은 편끼리 결속을 강화하여 더 강해진다는 말도 있던데 우리 가족은 그러지 못했다. 가족이 아니라 내가 그러지 못한 것 같다. 안팎으로 너무 지쳐버려서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쉽게 원망하고 미워했다. 이 시기를 거치며 똘똘 뭉친 사람들은 우리 가족이 아니라 소음을 유희 거리로 소비한 사람들이려나.


너무나 멀어져 버린,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차단된 가족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 왜 우리 집은 이렇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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