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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Sep 28. 2020

살아가기 위해서 하는 합리화

이번 명절은 어떻게 보내게 될까? 고요하게 지낼 수 있을까?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다. 주말과 공휴일 그리고 연휴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처럼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 우리 가족도 그랬다. 쉬는 날이 다가오면 당일이 되기도 전에 설레하고 기뻐했다. 밥상 위에 매달아 놓은 굴비를 보기만해도 배불렀다던 어느 가족처럼, 달력에 빨간 날이 많으면 학업이나 일터에서 벗어나 벌써 휴식을 취한 것처럼 좋아했다.


위층이 이사오고 몇 십, 몇 백 번의 휴일이 지났다. 몇 천 번일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유독 빨간 날이 길어질 때면 걱정이 앞선다. 달력을 쭉 훌어보고 휴일 세면서 이 날을 핑계로 얼마나 더 많은 소음을 낼까 염려되는 것이다.


몇 년 전, 명절 연휴가 주말까지 포함해 꽤 길었던 적이 있다. 위층은 거리낄게 없다는 듯 최대치의 소음을 만들어냈다. 새벽부터 밤 11시가 넘어가는 시간까지 쉬지않고 뛰는 소리가 종일 우리 집 천장을 울렸다. 마라톤이라도 하는 걸까? 본인들도 나가지 않았으면서 아래층은 지금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연휴를 핑계로 누가 놀러왔다고 말하면 되니 뻔뻔하게 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에휴- 으아- 낮은 한숨을 뱉거나 작은 탄식을 하며 가족들이 깨는 걸 듣고 있으면 쿵- 쿵- 울리는 발망치 소리와 함께 마음 속 어딘가가 무너진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하고 나약한 내가 싫어지면서 단지 아래층에 산다는 이유로 우리 가족은 언제까지 이런 고통 속에 살아야 하나 싶다.


소음은 주로 아이들 뛰는 소리가 주를 이루는데 뛰지 않으면 엄청나게 큰 소음을 내며 걷는다. 쿵쿵. 도대체 뭘 하면 저런 소리가 날까 의문이다. 두 소음과 다른 소음들이 섞여 겪고 싶지 않은 불협화음을 내는 경우도 많다.


층간소음을 겪으면서 합리화를 참 많이 하게된다. 이해하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명절에 뛰면 명절이니까 뛰겠지. 친척들이 왔나보네. 신나서 뛰나보다. 아래 층이 비어있다고 생각하나보다.


주말에 뛰면 주말이니까 뛰겠지. 실컷 뛰나보다. 부모님도 놀아주나보다. 자제시키지 않나보다. 아이들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나보다.


새벽에 뛰면 일찍 일어나네. 아이들이 저렇게 뛰는데 저 소음을 듣지 못할 정도로 위층 부모님들은 아직 일어나기 전인가보다. 아래 층 사람들도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서 말리지도 않는가 보다.


아침에 뛰면 분주하게 준비를 하나보다. 지치지도 않는지 아침 운동을 하는 건가.


점심에 뛰면 낮이니까 이 정도로 뛰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나보다. 아래층은 빈 집인줄 아나보다.


저녁에 뛰면 자기 전에 뛰나보다. 퇴근해서 놀아주나보다. 이 시간까지 뛰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나보다.


온 집안을 미친듯이 뛰면서 특정 시간대에 화장실 부근에서 우다다다 달리는 소리가 들리면 씻기 전에 뛰나보다. 땀을 쫙 빼고 깨끗하게 씻으려나보다. 씻고 나와서 신나서 뛰나보다. 아침 점심 저녁 쉬지도 않고 샤워를 하는 건가. 씻기 전후 루틴인가보다. 화장실에 있으면 웅- 웅- 거리는 말소리와 애들이 꺅! 꺄아아악! 와악! 소리 지르는 것도 가끔 들린다. 애들 이름 부르는 어른의 목소리도. 두 눈으로 다 보면서 절대 제재하지 않는 듯 싶다.


애매한 시간대에도 뛰면 이 정도 뛰는 소음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나보다. 잠깐 뛴다고 생각하는건가.


그 외에 가구 끄는 소리, 바퀴 굴러가는 소리, 쿵쾅대며 걷는 소리, 무거운 운동기구를 퉁- 퉁- 놓는 듯한 소리, 높은 곳에 올라가 바닥으로 착지하듯 떨어지는 소리, 줄넘기를 하거나 마을 빻는 기구를 사용하는 것처럼 일정하게 바닥을 찧는 소리 등이 쉬지 않고 들린다. 아주 가끔 악기 연주하는 소리도 시간에 상관없이 들리기도 한다. 돌아가면서 소음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괴롭고 고통스러우나 살기 위해 저렇게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다.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시간대와 소음들이지만 말이다.


위층은 무슨 생각으로 우리 가족이 받는 고통과 소통의 메시지는 모두 무시한 채 소음을 만들고 있는 걸까.


이번 명절은 어떻게 보내게 될까? 고요하게 지낼 수 있을까? 연휴가 꽤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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