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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Sep 25. 2020

관리사무소曰 층간소음 해결을 위한 최후의 방법

관리사무소에서 해줄 수 있는 최후이자 최선의 방법

지금 시각은 오후 10시 34분. 오늘 나는 정말정말정말 오랜만에 평일 오후 9시 이전에 집에 들어왔다. 솔직히 조금은 기대했다. 내가 지금 들어가는 시간도 늦었으니 조용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위층은 역시나였다.


집에 들어온 시간부터 지금까지 윗집은 계속 소음을 내고 있다. 사람 발이 아니라 무거운 추를 떨어뜨리는 것처럼 누군가 걸을 때마다 쿵- 쿵- 거리며 천장이 울렸다. 높은 곳에 올라가 떨어지는지 쿠릉- 콰릉- 하는 소음도 천장을 울렸다. 물건을 떨어뜨리면 쾅- 하는 소음 하나만 날 텐데 사람이 두 발로 착지할 때 왼발과 오른발이 살짝 엇비슷하게 바닥에 닿는 듯한 소리였다. 쇠망치로 쇠못을 두들기는 것처럼 쨍한 쇳소리가 났다. 쇠공이 굴러가는 것처럼 쇠와 쇠가 부딪히는, 쨍그랑 짱그랑 거리는 소리도 간헐적으로 울렸다. 무거운 물건을 들고 있다가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소음도 났다. 이 소음 뒤에는 꼭 우다다다다 뛰는 소리가 들렸다.


가족들이 집에 있는 거실과 부엌과 방들을 꼼꼼하게 오가면서 각자의 소음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각자 열심히 운동을 하는 건가? 누구는 뛰고, 누구는 걷고, 누구는 도구를 바닥으로 내리치면서.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날까. 오랜 시간 끊이지 않고. 지치지 않고.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소음들은 동시다발적으로 들렸다.






저저번 주에 관리사무소에 방문했다. 올해 3월 초에 방문하고 약 6개월 만이었다. 몇 달 전에 층간소음 측정기가 있냐고 여쭤봤던 주민이라고 했더니 그때 말씀을 나눴던 분이 나를 기억 하신다고 하셨다. 우리 아파트 다른 동에 사시는 분이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를 이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잘 해결이 됐는지 궁금해서 왔다고 했다.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간추려서 적자면 다음과 같다.



1. 그 '동'은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를 올해 이용하지 않았다. 작년이나 재작년에 이용했다.


2. 그 집도 주로 아이들 뛰는 소음 때문에 힘들어 하셨나요?

- 그것 뿐만 아니라 여러 소음들이 있었다.


3.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 연락을 하면 그 위층과 관리사무소 동의를 받고 소음 내는 층을 발생하는 걸로 안다.

- 그렇게 진행되는 게 맞다.


4. 센터에서 나온 사람들과 관리사무소도 같이 방문을 하나요?

- 관리사무소는 두 집 사이의 의견을 전달하는 역할만 했다. 같이 방문하지는 않았다.


5. 해결이 됐나요?

- 이후에 따로 연락 온 건 없다.


6.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까지 진행했는데 당일에는 알았다고 한 후에 관련자들이 떠나간 후 소음이 줄어들지 않거나 더 오래 뛰거나 더 심해진다면 어쩔 수 없는건가요?

- 어쩔 수 없다.



으악. 어쩔 수 없다니 너무 충격이었다. 결론은 이사구나. 이사가 최선이죠? 물으니 이사가 최선이란다. 마음속에서 센터에 연락했던 집이 층간소음에서 멀리 달아나기를 바랐다. 그래서 연락하지 않은 것이기를. 최선의 최선까지 시도했는데 어쩔 도리가 없어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힘들게 지내고 있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최선의 최선을 알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그런 답변을 들으니 슬펐다. 우리 집 상황을 간략하게 말씀드렸다. 이후에 관리사무소에서 조언해 주셨던 것까지 했으나 효과는 없었고 오히려 아래층이 보복 소음을 당하고 있다고. 너무 괴롭다고. 계단에 있다고. 우리 가족이 힘들다고.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장문의 편지로 마음을 표현했으나 효과는 미비했다고. 방송이 나오면 오히려 더 소음을 만들어 낸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도저히 모르겠다고. 얘기를 시작하니 눈물이 나왔다. 누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목이 꽉 막혔다.






관리사무소에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이자 최후의 방법은 '삼자대면'을 추진하는 일이라고 하셨다.


위층에 연락을 취해서(연락을 받지 않거나 거부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감정이 격해져 있을 테니 관리사무소 소장이 있는 자리에서 서로 대화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그럼 또 안 했다고 그러면요? 여태 저희 집에 했던 행동들을 본 결과, 부정하면서 예민하다고 그러면 어떻게 하나요?

... 어쩔 수 없다고 하셨던 것 같다.


각 가정에서 어른 두 명 정도 나와서 서로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푸는 자리라고 하는데 위층의 만행을 겪어본 결과 벌써부터 속이 답답하다. 우리 집이 선뜻 신청할 것 같지는 않다. 신청하지 못한다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편지를 쓴 이후에 엘리베이터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층간소음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고 오히려 웃으면서 인사도 드렸는데 소음이 더 심해졌는데, 이후에 또 만나면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물음에는 계속 그렇게 하는 게 최선이라고 하셨다. 이사를 당장 가지 못하니까 힘들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척, 층간 소음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고 상냥하게 대하는 게 최선이라고.


관리사무소에서 해줄 수 있는 최후이자 최선의 방법




대화를 끝내니 관리사무소 분들이 퇴근하기 전에 이야기할 시간을 염두에 두고 올해 처음으로 일찍 퇴근해서 찾아간 거라 시간은 오후 6시 전이었다. 지금 집에 가면 어차피 뛰고 있을 텐데 여기 잠깐만 있다가 가도 되냐고 여쭤봤다. 안타까워하시면서 감사하게도 다른 사무실 공간을 내주셨다.


거기서 시간을 조금 보내다가, 마음 같아서는 평소 퇴근시간까지 있고 싶었는데, 그러면 또 민폐니까, 층간소음 때문에 죽을 것 같아서 왔는데 내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 반대로 내가 진상이 되면 견디기 어려울 것 같으니까, 적당히 있다가 나왔다. 고요한 공간이 참 좋았다.


동대표 관련된 사람들의 명단도 적혀있었는데 아는 분들이라면 한 명 한 명 붙잡고 도와달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나와서, 거기서 나와서, 밖으로 나와서 바로 눈앞에 있는! 1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서성거리며 시간을 죽이다가 늦게 들어갔다. 물론, 웬만큼 늦게 들어갔으나 그날도 뛰는 소음이 우리 집 천장을 강타하고 있었다.




어떤 증거가 되지 않을까 해서 중간중간 녹음을 했다. 들어보면 지금 적은 것보다 더 상세한 이야기를 적을 수 있겠으나 다시 들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층간소음으로 고통받고 있으면서 또 다른 고통을 스스로 얹는 기분이라 재생 버튼을 도저히 누르지 못하겠더라..


날씨가 추워지고 있다. 희한한 꼬린내가 진동하고 희미한 페인트 냄새가 아직도 남아있는 아파트 계단을 대피처로 삼기에는 이제 많이 지친다. 월화수목금금금. 주말에도 출근을 하거나 어딘가로 도피하고 있는 생활 속에서 내 몸이 언제까지, 어디까지 버텨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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